징용과 4.3으로 떠난 제주…80여년만 손녀의 ‘조선 클래식’
증조부 비롯한 친척들 4.3 당시 희생, 조부모는 강제징용

북한판 바이올린이라고 불리는 '소해금' 연주가인 재일제주인 3세가 제주4.3으로 희생된 증조부를 비롯한 친척들 대신 고향을 찾아 상징적인 무대를 꾸민다.
재일제주인 소해금 연구자 량성희는 오는 4월 3일 거행되는 '제78주년4.3희생자추념식'에서 바리톤 고성현, 건반 이경민과 함께 추모공연 무대에 오른다.
해금을 북한식으로 개량한 악기인 '소해금'을 다루는 량성희는 이번 추모공연에서 가곡 '얼굴'을 연주하며 분단과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담은 상징적인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처음으로 제주를 찾아 추념식 무대에 오르게 된 량성희는 4.3희생자 유족이다. 증조부와 고모할머니를 비롯한 친척들이 4.3 당시 희생됐다. 조부는 1941년 북해도 탄광으로 끌려간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다.
조부가 끌려간 뒤 조모는 1943년 일본으로 건너갔고 해방 이후 가족들은 일본 오사카에서 힘겨운 삶을 살았다. 조부는 탄광 노역 강제 징용 후유증으로 44살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가족을은 '조선적' 동포로 일본 사회 차별과 분단 영향 아래 살아왔다.
이번 량성희의 방문은 4.3희생자와 강제 징용 피해자인 가족들을 대신한 80여년 만의 귀향이다. 공연 전 가족과 함께 고향을 찾는 량성희는 제주4.3평화재단을 방문해 증조부의 희생 기록을 열람하고 옛 고향도 찾을 계획이다.
이후 4.3추념식 무대에서는 강제 징용과, 재일제주인의 삶, 제주4.3의 기억이 겹겹이 쌓인 가족사를 소해금의 선율로 풀어낼 예정이다.
재일제주인이 많이 거주하는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량성희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계 민족학교 음악 교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음악을 배웠다. 아버지는 재일조선인 교육 기관인 오카야마 조선학교 교장으르 지내기도 했다.
히가시오사카조선중급학교를 입학해 민족기악소조 활동으로 소해금에 입문한 량성희는 오사카조선고급학교 시절 재일조선학생중앙예술경연대회에서 연이어 금상을 수상했으며, 평양음악대학을 졸업했다.
북한 유일 국립 해외 예술단인 금강산가극단에 입단해 11년간 악장으로 활동했다. 북한에서 다양한 상을 받았으며, 현재는 북한에서 발전한 우리식 고전음악 '조선 클래식'을 선보이며 남북 음악 교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량성희는 "총련계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조선(북)을 고국으로, 한국을 고향'으로 부를 때 그 고향이 제주도(제주읍 이호리)였다"며 "그렇지만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듣고 배운 것들이 있어 방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두려움도 있었지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음악을 통해 알리기 위해 지난해 처음 한국에 왔다"며 "뿌리가 되는 고향에 꼭 방문해 음악가로서 귀향 연주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4.3추념식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큰아버지가 4.3 유가족으로 보상을 받고 나서야 유가족임을 알게 됐고 4.3에 대해 공부하며 충격을 받았다"며 "국가가 국민을 학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