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대자보 도시'라더니”… 전봇대에 가로막힌 광주 보행로
보도폭 좁은데 가로수 등 지장물까지
시민들 지장물 피해 차도로 안전 위협
지자체 '예산 부족·부서 핑퐁' 무책임
"보도블록 교체할 돈으로 안전 챙겨야"

"대자보(대중교통·자전거·보행) 도시를 만든다고요? 당장 전봇대 피해서 찻길로 걸어야 하는 판국입니다."
광주광역시 도심 곳곳의 보행로가 뜬금없이 세워진 전봇대와 가로수에 가로막혀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은 교통약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조차 통행에 위협을 느끼며 차도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보행로 한가운데 우뚝 선 지장물… 최소 유효폭 '유명무실'
30일 광주 북구 운암동의 한 고등학교 앞. 하교하는 학생들은 보행로 정중앙을 가로막은 전봇대를 피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차도로 내려와 걷고 있었다. 매일 이 길을 오가는 오다연(17)양은 "전봇대를 피하려 차도로 내려갈 때면 혹시 뒤에서 차가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찔끔 예산, 부서 칸막이… 만만한 '보도블록'만 교체?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 2024년 안전신문고 보행 불편 민원 건수만 3만1300여 건에 달한다. 하지만 관할 지자체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예산 감소다. 광주시가 각 지자체에 지급하는 보행로 정비 예산은 2023년 5억4000만원에서 지난해와 올해 3억70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전봇대나 가로수를 옮기려면 많은 비용이 들고 지장물마다 소관 부서가 달라 장기적인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지자체의 항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정된 예산은 유효폭 확보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단기간에 성과가 보이는 '단순 보도블록 교체'에 우선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법적 권한 유명무실… 정책 엇박자 지적
문제는 지자체가 사태를 해결할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행안전법 제15조에 따라 '공공시설물 등 통합설치협의회'를 구성해 타 기관과 지장물 이전을 협의할 수 있고, 교통약자법에 따라 설치기준을 어긴 시설물에 시정명령 및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는 강력한 제재 수단도 있지만 실질적인 활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거창한 '대자보 도시' 구호 이전에, 시민들이 매일 딛고 서는 보도 위 장애물부터 걷어내는 실질적인 행정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유동 인구가 많거나 유효폭이 심각하게 좁은 보행로를 우선적으로 정비하고 있다"며 "예산 등 어려움이 많지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시민들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