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행수입해 반짝 할인…본사 의뢰하니 “가품” [짝퉁과의 전쟁 ①]

강승연 2026. 3. 3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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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성지’ 성수부터 유튜브·인스타 라방까지
국내외 유명 브랜드 최대 80~90% 할인 판매
직접 구매한 아미·메종·꼼데 제품 ‘가품’ 판정
“정품 맞아요” 인플루언서 공구도 가품 의혹
지난달 14일 서울 동대문구 한 쇼핑몰에서 ‘고별 브랜드 세일’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있다. 박연수 기자

[헤럴드경제=강승연·박연수·김진 기자] “전부 병행 수입으로 들어온 정품입니다. 믿으셔도 돼요.”

지난달 1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쇼핑몰. ‘시즌마감 고별 굿바이 세일’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1층 외관을 도배하듯 휘감고 행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입구에 놓인 가판대에는 아미, 폴로 랄프로렌 등 인기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반팔 티셔츠가 단돈 2만9000원에 판매됐다. 점원은 “병행 수입을 통해 들여온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행사장 안에 들어가니 아웃렛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 다양한 브랜드들이 눈에 띄었다. 폴로 랄프로렌, 라코스테, 아미, 메종키츠네, 캘빈클라인, 칼하트, 타미힐피거 등 인기 캐주얼 브랜드부터 아크테릭스, 알로,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스파이더 등 스포츠 브랜드 제품도 많았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이미스 등 K-패션 브랜드나 골프웨어 브랜드, 명품 시계·가방 매대도 있었다.

곳곳에 붙은 가격표를 보자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 국내 공식 판매 가격이 27만9000원인 폴로 랄프로렌의 케이블 니트는 6만9000~9만9000원이었다. 23만9000원인 스웨트셔츠는 6만9000원에 판매됐다. 하트 와펜이 특징인 45만5000~48만5000원짜리 꼼데가르송 가디건은 12만9000~15만9000원, 17만8000원이어야 할 알로의 크루넥 풀오버는 6만9000원에 불과했다.

아미, 메종키츠네 등 일부 브랜드는 정품 인증용으로 보이는 QR코드가 옷에 달려 있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상품 페이지로 이동했다. 제품 사진과 함께 고유 식별번호인 시리얼 넘버, 공정 단계별 제조국 등을 볼 수 있었다.

정품과 똑같아 보이는 로고와 라벨, QR코드 등 때문에 젊은 소비자들도 “너무 싸다”며 바쁘게 장바구니를 채웠다. 커플 아이템으로 꼼데가르송 가디건 2장을 구매하거나, 선물하고 싶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계산대에서 마지막으로 정품 여부를 묻는 기자에게 판매원은 “짝퉁을 어떻게 대놓고 팔겠냐”며 반문했다. 매장 한편에서 한 상인이 누군가와 통화하며 “내가 알바하다가 짝퉁 걸리면 말이 안 되지”라고 걱정하던 것과 반대로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성수 팝업부터 라방까지…‘짝퉁’의 습격

최근 국내외 유명 브랜드 세일 팝업스토어가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부도 정리’, ‘창고 대방출’ 등 재고를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최대 80~9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병행 수입을 통해 중간 유통 마진을 빼고 가격을 낮춘 정품이라고 홍보한다. 병행 수입은 공식 수입업체가 아닌 일반 수입업자가 국내로 제품을 들여오는 방식이다.

팝업은 올해 들어서도 ‘팝업 성지’인 서울 성수동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의 대형마트·쇼핑몰에서 잇따라 열리고 있다. 보통 업체 서너 곳이 마트·쇼핑몰 유휴 공간을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간 빌려 운영하는 식이다. 팝업이 열리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홍보 글이 올라와 금세 퍼진다. 인기 브랜드를 싸게 구매할 기회라며 정보를 공유하는 식이다.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채널을 통한 라이브 커머스(라방)도 성행하고 있다. 확인한 라방들은 모두 유명 브랜드 물건들로 가득 채운 대형 창고에서 진행됐다. 계약된 병행수입업체가 운영하는 창고라며, 재고 정리 차원에서 대폭 할인해 판매한다고 홍보했다. 취급하는 상품은 폴로, 아미, 알로, 아크테릭스, 온, 호카 등 모두 인기 브랜드였다.

라방은 구매 방식도 유사했다. 라방을 보며 댓글로 구매할 상품과 색상, 사이즈를 남기고, 입금한 뒤 카카오톡으로 확인용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이후 판매자는 라방에서 구매자가 구입한 제품을 확인하듯 보여주고, 카카오톡으로 예상 배송일자를 알려줬다. 방송 도중에 “사장님이 인심을 썼다”며 1만~2만원 추가 할인과 2차 구매를 유도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고가의 인기 골프웨어 브랜드는 병행 수입 사이트나 SNS 채널도 많다. 지포어, 마크앤로나, 제이린드버그 등을 취급한다는 한 프리미엄 골프 의류 쇼핑몰에 정품 여부를 물었다. 20만~30만원대 의류를 10만원 안팎에 판매하는 곳이었다. 해당 업자는 “정품과 동일하게 제작한 ‘레플리카(모조품)’와 정품 제품인 ‘정로스’가 있다”며 “정로스는 해외 배송으로 들여와 ½~⅓ 수준으로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쇼핑몰에 열린 팝업스토어에서 폴로 랄프로렌 브랜드 로고가 달린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박연수 기자
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아미 등 유명 브랜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병행 수입으로 들어온 정품이라고 판매했지만, 해당 채널에서 구매한 제품은 가품 판정을 받았다. 강승연 기자
헤럴드경제가 최근 유튜브 라이브 방송, 팝업스토어 등을 통해 구매한 브랜드 의류들. 해당 제품들은 모두 글로벌 본사로부터 가품 판정을 받았다. 강승연 기자
본사 의뢰하니 ‘가품’ 판정…인플루언서 공구도 불안

본지는 팝업과 유튜브 라방 등을 통해 아미, 꼼데가르송, 메종키츠네 의류를 구매했다. 라방으로 구매한 아미 가디건은 11만5000원. 하트 모양과 알파벳 ‘A’가 특징인 아미의 브랜드 로고를 커다랗게 넣은 인타르시아 니트 가디건을 연상케 하는 제품이었다. 해당 제품의 공식 수입 가격은 109만원이다. 팝업에서 구매한 아미 로고 반팔 티셔츠는 2만9000원. 이 역시 공식 판매가(28만5000원)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또 꼼데가르송 하트 로고 가디건은 12만9000원, 메종키츠네 후드티는 12만8000원에 샀다. 공식 판매가는 각각 46만5000원, 43만5000원이다.

구매한 제품을 공식 수입사인 삼성물산을 통해 각 브랜드 본사에 보낸 뒤 정품 여부 확인을 의뢰했다. 1~2주 후 회신한 이메일에는 모두 가품으로 판정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메종키츠네 본사는 “본 제품이 가품임을 확인했다. 로고 자수 처리가 미흡하며, 원단 또한 당사 표준 소재와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아미와 꼼데가르송도 소재와 로고 등이 정품과 다르다고 확인해 줬다.

구매한 아미 티셔츠에 달려 있던 QR코드가 연결해 주는 정품 인증 사이트도 공식 사이트로 위장한 ‘유령 사이트’로 확인됐다. 아미 본사 측은 “아미에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미에서 만든 QR인증 사이트는 제품이 어디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투명하게 보여주고자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지가 라방, 팝업스토어에서 구매한 해외 인기 브랜드 제품을 공식 수입사인 삼성물산을 통해 브랜드 본사에 확인한 결과, 모두 가품 판정을 받았다. 위에서부터 메종키츠네, 아미, 꼼데가르송 본사로부터 회신받은 이메일. 강승연 기자
한 인플루언서가 진행한 공동구매를 통해 구매한 폴로 랄프로렌 스웨터의 로고·지퍼(위쪽)와 공식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같은 제품 상세 이미지 [강승연 기자·폴로 랄프로렌 사이트 캡처]

본지는 40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가 진행하는 공동구매를 통해 폴로 랄프로렌의 쿼터 집업 니트 스웨터도 10만2500원에 구매했다. 정품 인증서를 첨부하고 정품이라고 홍보한 제품이었다. 비슷한 소재의 정품은 29만9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해당 제품을 정품과 육안으로 비교해 보니 로고와 부자재에서 차이가 났다. 로고에 있는 스틱과 말의 다리 두께가 정품에 비해 두껍고, 자수도 투박했다. 지퍼 장식의 바느질도 정품은 촘촘하고 가지런한 반면, 구매한 제품은 엉성했다.

다만 폴로 랄프로렌 의류는 브랜드 본사나 한국명품감정원, 대한명품감정원 등에서 정·가품 판정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백화점 매장에서도 “정품 여부 확인은 어렵다”는 대답이었다. 이 때문에 블로그, 스레드 등에서는 구매한 병행 수입 제품이 정품이 아닌 것 같다고 의심하는 소비자들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본지가 참여한 공동구매를 주최한 인플루언서가 가품을 판매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글도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당국도 가품 의류 단속에 나서고 있다. 이달 초 관세청 인천본부세관은 폴로 랄프로렌 가품 의류를 5만장, 시가 110억원어치를 유통한 일당을 적발했다. 이들은 해외에서 장당 6000원에 들여온 옷에 가짜 라벨을 붙여 17만원에 부풀려 판매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로고, 라벨은 물론이고 진품 QR코드를 복사해 가품 택에 붙이는 사례까지 있다”면서 “인터넷 쇼핑몰, 라방 등을 통해 유통되는 가품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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