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정의선이 선물한 ‘무인소방로봇’… 화염 속 먼저 뛰었다

권오은 기자 2026. 3. 3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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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기증 4대 모두 현장 배치
충북 음성·대전 공장 화재 때 투입해
소방청 “성과 평가 후 추가 도입 검토”
지난 25일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둔지에서 ‘레디 코리아(READY Korea) 훈련’ 중 무인소방로봇이 전기차 쪽으로 물을 살포한 뒤 소방대원들이 질식소화포를 덮고 있다. /권오은 기자

“화재 발생! 고층 아파트 1층 상가에서 가스 폭발! 사상자 다수!”

지난 25일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둔지에서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인근 고층아파트 단지로 소방차들이 줄지어 출동했다. 소방대원은 물론 경찰, 군인, 보건소 직원 등도 바쁘게 움직였다. 붉은색과 흰색 연기가 피어 올랐다.

39개 관계기관이 함께 진행한 올해 첫 ‘레디 코리아(READY Korea) 훈련’ 현장이었다. 대형·복합 재난에 대비해 민·관이 함께 대응체계를 점검하는 훈련이다.이날 훈련은 고층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바람을 타고 불이 주변으로 번지는 상황을 가정해 진행됐다.

지난 25일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둔지에서 ‘레디 코리아(READY Korea) 훈련’ 중 박종일 영남119 특수구조대 소방위가 조작기로 무인소방로봇을 움직이고 있다. /권오은 기자

◇불길 속 소방 대원 대신 진화·수색 작업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가 폭발하는 상황을 가정한 훈련도 이어졌다. 불이 났을 때 지하 주차장은 연기가 배출되지 않아 시야 확보가 어렵고 소방 인력 진입이 까다롭다. 먼저 투입된 건 로봇개였다. 로봇개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현장 상황을 살폈고 무인소방로봇이 그 뒤를 따랐다.

박종일 영남119 특수구조대 소방위는 콘트롤러(조작기) 화면을 주시하며 무인소방로봇을 불이 난 전기차와 가까운 위치로 이동시켰다. 무인소방로봇 전방의 방수포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가 흩어진 뒤 소방대원들이 질식소화포를 덮었다. 이어 이동식 접이 침수조까지 설치해 전기차의 불을 완전히 끌 수 있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24일 경기 남양주시 수도권119특수구조대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소방청 무인소방로봇 기증식을 마치고 김승룡 소방청장 직무대행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현대차그룹은 올해 소방청에 무인소방로봇 4대를 기증했다. 중앙119구조본부 수도권119특수구조대와 영남119특수구조대에 1대씩 먼저 배치됐고, 이달 경기 화성소방서와 충남소방본부에도 1대씩 배치가 마무리됐다.

무인소방로봇은 이미 실전에도 여러차례 투입됐다. 지난 1월 충북 음성군 공장 화재 현장과 최근 74명의 사상자를 낸 대전 대덕구 안전공업 화재 현장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현대로템에서 무인소방로봇 운용 교육을 받은 박종일 소방위는 음성군 공장 화재 때 무인소방로봇과 함께 출동했다. 박 소방위는 700m가량 떨어진 곳에서도 무인소방로봇을 움직일 수 있는 점을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화재 현장에서 소방 대원이 직접 진입하기 어려운 곳에 들어가 진화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충북 음성군의 한 공장에서 지난 1월 30일 불이 난 가운데 무인소방로봇이 불을 끄고 있다. /소방청 제공

◇수백도 열기에도 무인소방로봇 ‘50도’ 유지

무인소방로봇은 현대로템의 다목적 무인 차량 ‘HR-셰르파(HR-Sherpa)’에 소방장비를 더해 만들어졌다. 밀폐된 지하공간이나 공장과 물류 창고 등 대형 공간에 소방대원 대신 투입해 진화·수색 작업을 한다.

이런 화재 현장은 800도에 달하는 열기를 내뿜는 만큼, 무인소방로봇은 이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자체 분무장치’ 덕분이다. 지름 1.8㎜의 노즐 24개가 분당 약 40리터(L)의 물을 차체 주변으로 분사한다. 화재 현장에서도 로봇 주변 온도를 50도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방수포와 자체 분무장치를 가동해도 15시간가량 진화·수색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무인소방로봇은 고온을 견디는 특수 타이어와 여섯개 바퀴가 각각 독립적으로 구동하는 인휠 모터 시스템을 갖춰 높이 30㎝의 장애물도 넘을 수 있다. 최대 시속도 50㎞까지 나온다. 짙은 연기 속에서 현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AI) 기반의 적외선 카메라 시스템도 적용됐다.

현대차그룹 홈페이지 캡처

◇회복지원차, EV 드릴 랜스… 현대차그룹 기증 릴레이

현대차그룹은 무인소방로봇 이전부터 소방 당국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이어왔다. 2023년에는 재난 현장에서 활동하는 소방대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소방관 회복지원차’ 10대를 기증했다.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전국에 회복지원차가 10대에 불과하고 상당수가 노후화됐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개발을 지시했다.

2024년에는 전기차 화재에 대응하기 위한 장비인 ‘EV 드릴 랜스’도 개발해 소방청에 250대를 지원했다. 이 장비는 전기차 배터리 팩을 관통해 내부에 직접 물을 분사하는 방식으로, 기존 소화 방식의 한계를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무인소방로봇 역시 정 회장이 개발 및 추진 과정을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지난달 무인소방로봇 기증식에서 “사투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소방관분들이 지켜온 ‘안전’의 가치를 함께 실현하고자 로봇을 개발했다”며 “현대차그룹의 기술이 집약된 이 로봇이 위험한 현장에 한 발 먼저 투입돼 대원들의 안전을 지키는 든든한 팀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소방 지원은 선대부터 이어져 왔다. 정몽구 명예회장 시절 설립된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온드림 나라사랑 장학금’으로 2300명 이상을 지원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기술 지원뿐 아니라 소방관 처우 개선과 안전 인프라 확충에도 지속적으로 기여해 왔다”고 했다.

소방청은 올해 도입한 무인소방로봇 4대를 실제 재난 현장에 투입해 성과를 분석한 뒤 추가 도입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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