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9월까지… 사랑은 짧고도 길다[주철환의 음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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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2001)의 명대사다.
연인(이라고 믿었던 사람) 앞에서 미적거리다 수줍게 말문을 연 그 청년(유지태)이 훗날 '왕과 사는 남자'(2026)에서 휘장을 가르며 "저놈이 아직도 지가 왕인 줄 아나 보구나" 포악한 눈빛을 발사할 줄이야.
영화에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질문에 상대(이영애)는 딱 3글자로 응답한다.
사랑이든 사람이든 오래가려면 안전거리, 안전속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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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2001)의 명대사다. 연인(이라고 믿었던 사람) 앞에서 미적거리다 수줍게 말문을 연 그 청년(유지태)이 훗날 ‘왕과 사는 남자’(2026)에서 휘장을 가르며 “저놈이 아직도 지가 왕인 줄 아나 보구나” 포악한 눈빛을 발사할 줄이야. 객석에선 단체로 소름이 돋았다. 아, 사랑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구나.
사랑에 빠지면 해는 안 보이고 달이 춤춘다.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하지만 기쁨은 짧은 게 문제다. 불과 몇 줄 아래 슬픔이 매복하고 있다.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세상 돌아가는 게 다 비슷하다. 달은 태초 그대로인데 달빛 아래서 사람들은 왔다 갔다 (이랬다저랬다) 한다. 민요 ‘달 타령’(원곡가수 김부자)에서도 ‘정월에 뜨는 저 달은 새 희망을 주는 달’이지만 ‘십이월에 뜨는 달은 님 그리워 뜨는 달’이다. 달의 주기에 맞춰 구성된 시가를 월령체(月令體)라고 부르는데 (이를테면 농가월령가) 가장 오래된 건 ‘아으 동동(動動)다리’로 유명한 고려가요 ‘동동’이다. 자신을 자연과 빗대며 탄식한다. ‘정월 냇물은 아, 얼다 녹다 하는데 세상 가운데 나고는 이 몸은 홀로 지내누나’
서양에도 월령체가 있다면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April Come She Will’(1966)이 대표적이다. (노래에 나이가 있다면 올해 환갑이다) 열두 달 전부는 아니고 절반(4월부터 9월까지) 사이에 온갖 연사를 주르륵 펼쳐낸다.
시작(4월)의 정경은 ‘동동’의 정월과 크게 다르지 않다. ‘냇물이 녹아내려 봄비로 가득할 때’(When streams are ripe and swelled with rain) 그녀는 온다. 아니 올 것이다. 이 노래는 시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중학교 영어 시간에 두 개의 미래를 배운 적이 있다. 비가 오는 건 단순 미래지만 님이 오는 건 의지(意志) 미래다. 비는 때가 되면 오지만 님은 이유가 있어야 온다. 이 노래의 서정적 자아는 다분히 일방적이다. ‘그랬어’가 아니라 ‘그럴 거야’로 일관한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니 상대는 의사를 표할 틈이 없다.
문제는 8월에 발생한다. 이번엔 예언이 아니라 확언이다. 뭔가 심상치 않다. ‘그녀는 죽을 거야’(Die She Will)가 아니고 ‘그녀는 죽어야 해’(Die She Must)라니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영화에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질문에 상대(이영애)는 딱 3글자로 응답한다. “헤어져” 무섭다. 나는 문득 임지훈이 부른 ‘사랑의 썰물’이 떠올랐다. ‘차가운 너의 이별의 말이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내 마음 깊은 곳을 찌르고’
‘April Come She Will’은 전주 포함 2분이 채 안 된다. 허겁지겁 사랑을 마무리한 모양새다. 그래서 9월의 여운이 길다. ‘9월이면 기억나겠지’(September, I’ll remember) ‘한때 설레던 사랑도 결국 변해간다는 것을’(A love once new has now grown old) 변하기 전에 미리 상상 속의 그녀를 없애버린 자의 기억은 차가울 만큼 담담하다.

사이먼과 가펑클은 소년 시절부터 친구였다. 처음 이름이 ‘톰과 제리’였다. 티격태격할 때마다 웬만하면 맞춰보라는 주변의 얘기를 들었지만 결국 둘은 팀을 깬다. 결별의 변이 화사하다. “더 이상의 완벽한 하모니를 들려줄 수 없어서” 음악이 아니라 관계의 앙상블이 무너진 거다. 포스터를 다시 보니 제목 앞에 몇 글자가 더 눈에 들어온다.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봄은 다시 또 오지만 한번 간 사랑은 복구가 힘들다. 다시 사랑한다면 과속방지턱을 설치하자. 사랑이든 사람이든 오래가려면 안전거리, 안전속도가 필요하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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