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위원장 “대통령이 던진 고용유연성···안전망부터 갖추는 게 순서”
“AI로 얻은 이익, 노동에 분배해야”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노·사 양측에 ‘고용유연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 뒤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노동계가 고용유연성을 양보하는 대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그 비용을 고용 유연화로 혜택을 보는 기업이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고용유연성 확장’을 의제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사회 안전망을 충분히 갖춘 뒤 논의하는 것이 순서”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전망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유연화는 노동자 권리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난 김 위원장은 “(대통령이) 고용 유연화를 갑자기 꺼냈다. 사전에 설정된 의제가 아니었다”며 상황을 전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준비된 발언문 대신 “실제 노동시장은 고용이 아주 경직돼 있지는 않다”며 “한국에서 고용이 유연한 노동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고 그 자리에서 반박했다.
“일부 대기업은 고용이 경직돼 있지만, 전체 노동시장으로 보면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가 많고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미 유연성은 차고 넘쳐요. (사용자가) 해고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생기면 노동자가 복지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노동조합 입장에서 고용유연성은 해고 위기뿐 아니라 자기결정권이나 힘, 영향력을 다 잃게 되는 문제입니다.”
김 위원장은 “사회 안전망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은 한국에서 이른바 ‘덴마크식 유연안정성’ 모델은 실현되기 어렵다”며 “정부가 노사정 대화를 요구하면 참여할 수는 있겠지만, 대안 없는 소모적인 논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AI로 얻은 이익, 노동에 재분배해야”
산업현장에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AI) 기술이 확산되는 것을 놓고서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미 현장 제조업에 로봇이나 AI가 도입되고 있어 급격한 일자리 감소가 우려된다”며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 도입이 개별 기업의 판단에만 맡겨질 경우 고용 충격이 단기간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을 짚으며, “AI는 문명 전환 수준이고 통제와 속도 조절은 정치의 역할”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동이 로봇으로 대체된 이후의 사후 대책이 아니라 사전에 AI가 작업 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평가하는 제도, 도입 속도나 방향을 협의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지난 10일 창립 80주년 기념식에서 AI시대에 걸맞은 노동권 보호체계 구축을 향후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제도가 생겨야 노동조합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판이 마련된다.
김 위원장은 “AI로 경쟁력이 생기고 이익이 발생하면 그 이익을 사용자가 독점하면 안 되고, 노동에 재분배해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데이터나 AI 기술도 결국 사회가 만든 자산이기 때문에 책임도 같이 져야지요. 노동이 갖는 의미가 꼭 소득과 대가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소득은 일정 부분 보전할 수 있어도 노동 자체의 의미가 훼손되는 문제가 생기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사회가 고민해야 합니다.”
일자리 감소 대응 방안으로는 노동시간 단축을 제시했다. 그는 “일자리가 줄어들면 노동시간을 줄여서 여러 사람이 나눠야 한다”며 “한 사람이 장시간 노동을 계속하는 구조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효과 기대 이하…“원·하청 구조 개선이 핵심”

이달 10일부터 시행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두고서는 현장 변화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다”라며 “교섭이 성사된 사례가 아직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에 비해 대기업, 공공부문 등 원청(또는 대기업) 노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하청노조 중에서도 사측과 협상권을 가진 교섭대표노조가 많은 ‘상대적 강자’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은 원청 노조의 역할론에 대해 “원청 노동자의 임금을 10% 올리면 2% 정도는 하청 노동자 몫으로 양보하는 포용적 교섭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의 문제보다 원청 회사와 하청 회사의 격차가 우선적 문제”라며 “원청이 하청의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를 제도로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 노동정책, 노란봉투법 긍정·정년연장 지연 부정 평가
출범 10개월을 맞은 이재명 정부 노동정책은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핵심 과제 지연을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노조법 개정(노란봉투법)과 산재·체불임금,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 등에 대한 인식 제고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정년 연장, 노동시간 단축,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 취약계층과 직결된 과제는 진척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왜 지연되는지에 대한 설명과 소통이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여당은 당초 지난해 연말까지 ‘65세 정년 연장’ 입법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지난 1월 6·3 지방선거 이후로 기한을 연장한 바 있다.
노조 조직률이 정체된 원인으로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지목했다. 김 위원장은 “정규직과 대기업은 이미 조직률이 높은 반면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는 조직률이 낮아 전체 수치가 정체돼 있다”며 “조직률 제고는 결국 취약계층 노동자의 조직화를 어떻게 확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김남희 기자 nam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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