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철인데 부직포·비닐 물량이 없대요”···‘중동 전쟁’ 장기화에 비상 걸린 농가들
나프타 등 부족에 농자재 대란
“1만평 농사에 수백 더 들 지경”

충남 천안에서 벼농사를 짓는 송태성씨(55)는 다음 달 모내기에 쓸 농업용 부직포를 구하려고 최근 공급업체들에 연락을 돌렸으나 허탕을 쳤다. 업체들은 ‘당장 물량이 없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걱정이 커졌다. 재고가 들어와도 가격이 최소 30% 오른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송씨는 “전쟁 이후로 원재료비가 다 올라 이전에 1만평 농사에 500만원 들었다면 지금은 최소 700만원은 있어야 할 지경”이라며 “영세 농가들 사이에서는 ‘농사지어서 남는 게 없는데 지금 뭘 시작할 수 있겠냐’는 말도 나온다. 지금 상황이 이어지면 영농을 포기하는 곳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 길어지면서 각종 작물을 파종하는 영농철을 앞둔 농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나프타 공급 부족으로 농업용 비닐·부직포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면세유, 비료 등 농자재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면서 농가의 경영 부담이 커지고 있다. 농업용 비닐 ‘사재기’도 우려된다. 농자재 수급 불안은 수확량을 줄여 결국 농축산물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농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농사에 쓰는 멀칭용(흙 표면을 덮는 작업) 비닐 가격은 1년 전 보다 약 40% 가까이 올랐다. 멀칠용 비닐은 고추 등 노지 채소와 수박·참외 등 과채류 재배의 필수품으로 잡초 제거·수분 유지 등을 위해 쓰인다. 농업용 부직포 역시 원재료 부족으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멀칭용 비닐과 부직포 모두 중동 전쟁으로 수급 불안 우려를 겪는 나프타가 핵심 원료다.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부족하다보니 작물 재배 계획에 차질을 빚는 농가도 생겨나고 있다. 강원도 태백에서 고추·양배추 농사를 하는 최흥식씨(62)는 “절반만 비닐을 씌우고, 나머지 절반은 그냥 비닐 없이 재배해야 하나 고민 ”이라면서 “(비닐이 없으면) 잡초 제거 등이 잘 안 돼 수확량이 30% 가량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농업용 면세유, 비료 가격도 위태
농민들, “전쟁 언제 끝나나” 한숨
서용석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4~5월이 영농철이라 제때 재배를 못 하면 1년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며 “비닐류는 ‘늦으면 못 산다’는 분위기에 가수요가 크게 늘어난 상태”라고 말했다. 가정용 쓰레기 비닐봉투 ‘사재기’처럼 농가에서도 비닐까지 미리 사두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농업용 면세유 가격도 상승 추세다. 시설재배(비닐하우스 재배)에 주로 쓰이는 면세유 실내등유 평균 가격은 지난 21일 기준 리터당 1261.19원으로, 지난 3일보다 13.1% 올랐다. 2차 석유 최고가격제를 반영하면 이날 기준 가격은 더 올랐을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지난해에는 리터당 1000원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1300원 대로 올랐다”면서 “전쟁이 끝나면 가격이 좀 떨어질까 싶어 급한 것만 조금씩 받아두고 있다”면서도 불안해했다.
농업용 비료 수급도 위태롭다. 비료의 핵심 원료인 요소의 38.4%는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수입된다. 국제 요소 가격은 중동 전쟁 직전인 2월 말 톤(t)당 480달러 선에서 현재 680달러 수준으로 약 40% 올랐다. 농식품부는 상반기 재고 확보로 당장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비료 가격 인상도 불가피하다.
경북 문경 과수 농가를 운영하는 임모씨는 “추가 비료가 필요해지는 5월쯤이 되면 가격 인상분을 본격적으로 체감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과수 농가 특성상 해마다 품목을 쉽게 바꿀 수도 없어 전쟁이 끝나기만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농자재 수급 불안은 소비자 단계에서 농·축·수산물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비료 등 농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농·축·수산물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6일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 전망치 1.8%에서 2.7%로 0.9%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국내 농업분야 민간 연구기관인 GS&J 인스티튜트 서진교 원장은 “가수요가 큰 만큼 정부가 유통업계 ‘사재기’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직접 주요 농자재 비축 재고를 공개해 불안 심리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사태가 길어질 경우를 대비해 재활용 물량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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