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산불 상처 오래간다···강릉 산불 이재민 59% 트라우마 ‘고위험군’

2023년 발생한 강원 강릉 산불 피해 주민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간 심리적 고통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릉 산불 피해 주민 59%…PTSD 고위험군
29일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강릉시자원봉사센터·‘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교육원’이 2024년 11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산불 피해 주민 1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재난심리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65명)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정상 범위는 46명으로 절반에 못 미쳤다.
강릉 산불은 2023년 4월 11일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시작돼 산림 120.7㏊(헥타아르)를 태우고, 551명의 이재민과 274억원의 재산 피해를 낸 대형 산불이다.
이번 조사는 한국형 사건충격척도 개정판(IES-R-K)과 주관적 고통 척도(SUDS)를 활용해 심리전문가들이 대면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다. 사건충격척도 평균 점수는 31점으로, 국내외 재난 연구에서 보고된 평균(15~20점)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고위험군의 평균 점수는 45.6점에 달해 심각한 수준의 PTSD를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개인이 느끼는 불안·고통·스트레스 수준을 나타내는 주관적 고통 척도 역시 평균 4.35점(10점 만점)으로, 심리적 불안이 여전히 일상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과정에서 피해 주민들은 충동적인 감정이 반복돼 처방약을 복용하고 있음에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더 이상 살 의욕이 없다”며 우울과 무기력감을 토로하는 주민도 적지 않았다.
보고서는 “통상 시간이 흐르면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은 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그러나 산불 발생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진행된 이번 조사에서는 오히려 높은 수준의 심리적 고통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심리적 고통이 장기화된 배경에는 미흡한 보상 체계 등 구조적 문제가 자리해있다. 산불로 주택 전소 피해를 입은 A씨(64)는 복구 과정에서 행정 지원을 받지 못하고 개인 대출에 의존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기억이 통째로 사라지는 해리성 기억장애를 겪었고,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기도 했다.
A씨는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금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잘 지내는가 싶다가도 산불 소식을 접하면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세입자·건물주 보상 차별…심리적 상처로 남아
보상 사각지대에 놓인 이재민들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입자인 40대 유모씨는 산불로 전 재산을 투자한 가게를 잃었지만, 위로금은 700만원에 그쳤다. 반면 해당 건물의 소유주는 약 50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유씨는 여러 차례 강릉시청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현행 보상 체계는 건축물과 토지 등 부동산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건물주는 실제 거주·영업 여부와 관계없이 자산 가치를 기준으로 보상을 받지만, 세입자는 생계를 잃고도 소액의 위로금(구호비)을 받는 데 그친다.
보고서는 “생계 기반 상실과 불투명한 보상 절차, 이해하기 어려운 차별적 지원은 단지 ‘경제적 손해’가 아니라, 재난 경험자에게 또 다른 심리적 상처로 남는다”며 “산불 피해 주민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합당한 피해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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