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 이사 간 표 차이 0.0001%…고려아연 ‘주총 기술’ 썼나 [시그널INSIDE]
“투표전략 실시간 조정 가능성”
이 기사는 2026년 3월 29일 17:54 자본시장 나침반 '시그널(Signal)' 에 표출됐습니다.

고려아연이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에 재진입시킨 최윤범·황덕남 이사 간 득표 차이가 90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아연은 집중투표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이사 선임 안건에 약 9299만 개의 의결권이 있었고, 최 이사와 황 이사의 득표 차이는 의결권 대비 0.0001%에 불과했다. 미세한 표 차이로 최 회장 측 인사를 모두 진입시키는 데 성공한 것인데 일각에서는 고려아연이 기관 표결 결과를 미리 받아볼 수 있었던 점을 주목하고 있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번 달 24일 열린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된 최윤범 회장은 1560만 8378표를 얻었다. 고려아연은 집중투표제를 채택하고 있고 선임하는 이사의 수가 5명이었기 때문에 이사 선임 안건에는 9299만 3444개의 의결권이 있었다. 이에 따른 최 회장의 득표율은 16.8%였다. 황덕남 의장은 마찬가지로 16.8%의 득표율로 사외이사 재선임에 성공했는데, 황 의장이 얻은 표는 1560만 8288표였다. 최 회장과의 득표 차가 90표로, 행사 가능 의결권 대비 0.0001%에 불과했던 것이다.
고려아연은 현재 경영권을 쥔 최 회장과 최대주주인 영풍·MBK파트너스가 1년 넘게 경영권 다툼을 벌이며 이사 선임을 두고 치열하게 맞붙었다. 미국 합작법인(JV) 측 이사 후보인 월터 필드 맥라렌이 16.8%로 득표율 1위를 기록했고 최 회장과 황 의장이 근소한 차이로 2·3위에 올랐다. 영풍·MBK 측이 추천한 최연석 후보는 16.7%로 4위, 이선숙 후보는 16.4%로 5위를 차지했다. 6위에 올라 이사로 선임되지 못한 최병일 후보의 득표율은 16.4%였다.
IB 업계 일각에서는 고려아연이 예탁결제원으로부터 기관 표결 결과를 미리 전달받은 후 치밀한 표 배분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고려아연 주총을 두고 주요 기관과 의결권 자문사의 표심은 크게 엇갈렸다. 지분 약 5%를 가진 국민연금은 최 회장, 황 의장 재선임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최 회장에 대해 ‘반대’를, 황 의장에 대해서는 ‘찬성’을 권고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예탁결제원에서 기관 표결과 소액 주주의 전자 투표 결과를 미리 전달받아 우호 지분의 의결권 행사 전략을 실시간 조정했을 수 있다”며 “기관과 의결권 자문사의 표심이 크게 엇갈린 상황에서 0.0001%의 득표 차로 최 회장 측 이사를 모두 당선시키는 것은 확률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고려아연 주총에서는 출석 주주 수와 의결권이 있는 주식 수가 여러 차례 바뀌어 공지됐다. 의장을 맡은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은 주총을 개회한 오후 12시 4분께 출석 주주를 3206명, 위임과 출석으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주식을 1894만 9380주로 공지했지만 오후 1시 5분께는 주주 수를 3205명, 주식 수를 1857만 8833주로 변경 발표했다. 이후 본격적인 표결 결과가 공개되기 앞서 출석 주주 등이 가진 주식 수를 1858만 209주로 정정했고 오후 7시를 넘어 폐회를 앞두고는 1·2·3-1호 의안에 대해 참석 주주 수를 재차 정정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고려아연이 해외 기관의 의결권을 재배분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해외 기관 일부는 현재 예탁결제원의 시스템상 집중투표제로 부여된 의결권 배수를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 시스템의 문제로 해외 기관의 미행사 의결권이 발생하는 것인데, 고려아연은 미행사 의결권을 행사 의결권에 맞춰 재배분하는 ‘프로라타 방식’을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영풍·MBK는 고려아연이 지난해에는 적용하지 않았던 프로라타 방식을 올 들어 돌연 채택한 배경과 과정을 지적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주총 개최일인 24일 하루 전날인 23일 오후 5시께 프로라타 방식 적용 방침을 일방 통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집중투표제에서는 수백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릴 수 있는 만큼 표결 기준 자체를 바꾸는 것은 이사회 구성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이라며 “이미 전년도에 적용된 기준을 상황에 따라 변경하는 것은 절차적 일관성과 주주평등 원칙 측면에서 문제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법과 규정을 준수하는 한편 외부전문가들의 자문과 법률 검토를 거쳐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주주총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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