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마스크는 어디에”…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꿈꾸다 [전원생활 I 예술가의 방]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3월호 기사입니다.

“졸업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슈가 무엇일지 고민했어요. 그때 코로나19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코로나19로 일어난 문제들에 주목하게 됐고, 그중 마스크 폐기 문제가 인상 깊게 다가왔죠.”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후 마스크가 쏟아져 나왔다. 폐마스크 역시 급증했다. 매월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마스크가 1290억 장으로 추정된다는 헤드라인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마스크 폐기 문제를 파고들던 그는 ‘마스크로 가구를 만들자’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가구를 전공하며 가구의 기초라고 여긴 의자를 만들기로 했다. 유연하고 얇은 마스크로 단단하고 입체적인 의자를 만드는 일은 시행착오를 동반했다.
“처음에는 방법을 모르니까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불로 마스크를 태워 먹기도 하고 압축도 해봤죠. 그러다 마스크 주요 소재가 플라스틱 종류인 폴리프로필렌이란 걸 알고서, 플라스틱 재활용 방법을 참고했어요. 열풍기로 마스크 녹이는 방법을 정립하고는 수월해졌어요.”
스툴 하나를 제작하는 데 마스크 1500장이 필요하다. 대학생이던 그는 학교 건물 앞에 마스크 수거함을 설치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수거하는 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금세 마스크 1500장이 모였다.
수집된 마스크 색상은 흰색·검은색·파란색·분홍색 순서로 많았다. 그는 네 가지 색을 일정한 비율로 맞춰 팬데믹 상황을 시각적으로 드러나도록 구상했다. 작품에는 플라스틱인 필터 부분만 쓰기 때문에 철제 코 받침과 귀에 거는 끈은 제거한다.
나무로 된 스툴 형태 거푸집이 열에 타지 않게 알루미늄 테이프를 붙인다. 밑 작업이 끝난 거푸집에 필터를 넣어 녹이고 단단하게 굳힌다. 좌판과 다리를 하나로 이을 때 역시 나사나 접착제 대신 녹인 필터를 이용한다.

마스크로만 일체형 스툴을 제작하는 공정은 복잡하지만, 명확한 이유가 있다.
“스택 앤 스택은 ‘지속 가능한(Sustainable)’이란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메시지에 힘을 싣고 싶어서 마스크만 사용했죠. 나사나 접착제가 들어가면 나중에 분리가 어려워져 그냥 폐기해야 하거든요.”
스택 앤 스택에 담긴 메시지는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됐다. ‘그 많던 마스크는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하던 이들에게 스택 앤 스택의 등장은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다양한 소재를 접하고 깊이 이해하면서 ‘김하늘만의 아이디어’가 발산됐다. 그는 영화관 체인 CJ CGV와 협업을 통해 폐스크린을 조명으로 바꿨다. 스크린에는 미세한 구멍들이 뚫려 있는데, 스크린 뒤에 설치된 스피커 음향을 투과시켜 스크린이 흔들리지 않게 한다.
그는 구멍 뚫린 스크린이 알루미늄 타공판과 유사해보였고, 구멍에서 소리 대신 빛이 빠져나오면 어떨까 싶었다. 스크린은 조명으로 변환돼 따스한 빛을 밝히게 됐다.

도자기 파편으로 구성된 조명도 제작했다. 경기 이천에서는 매년 ‘이천도자기축제’가 열린다. 축제장 한편에는 도자기들의 무덤인 ‘도총’이 있다. 도자기 장인들은 걸작을 완성하기 위해 티끌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다. 하자가 있는 도자기는 파편이 돼 도총에 모인다.
“수십 년간 쌓인 도자기 파편이 왕릉처럼 거대했어요. 각기 다르게 생긴 파편들을 결합해서 조명을 만들었는데, 파편의 다양성이 결과물에도 반영됐죠. 과정부터 결과까지 흥미로운 작업이었어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진행한 전시 <Reversion: 회귀>에도 참여했다. 재활용이 쉽도록 접착제를 배제한 조립식 신발이 예술 작품으로 변모해 전시됐다. 그는 신발을 구성한 소재 중 충격 흡수력이 뛰어나 주로 깔창에 쓰이는 열가소성 폴리우레탄(TPU)에 집중했다.
“충격을 흡수한다는 부분에서 복싱이 연상됐어요. UFC에서 활약했던 정찬성 선수가 은퇴한 시기였거든요. 이런저런 생각이 합쳐지면서 신발을 복싱 글러브와 펀칭백으로 변형했죠. 글러브는 2024년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로 전달됐어요. 영예로운 일이었죠.”
현대백화점면세점과 협업에선 규제로 인해 재고로 남은 비닐 쇼핑백을 소파, 비치 볼, 튜브 등으로 바꿔 선보였다. 이 외에도 여러 협업으로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철로 비유해볼게요. 어렸을 때 골목을 지나다니며 녹슨 철문을 자주 봤어요. 저한텐 그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죠. 녹슨 철에는 시간이 만들어주는 멋이 있어요. 막상 녹슨 철로 작업하려면 쉽게 깨져버리기도 해요. 철은 단단할 것 같은데, 세월을 머금은 철에는 다른 면이 있는 거죠. 이처럼 폐소재는 그만의 멋이 있기에, 어쩌면 이게 신소재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강연자로 강단에도 자주 서는 그에게 강연이 끝나면 분리배출을 시작해야겠다고 소감을 건네는 청중이 여러 명이다. 그럴수록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가 버려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작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제가 버려진 소재를 많이 쓴다고 해서 지구가 개선된다거나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죠. 다만 작업에 담은 메시지가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개선된다면, 그게 제가 작업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사소한 변화일지라도, 그 변화들이 축적되면 큰 변화가 일어난다. 작은 물결이 모여 커다란 파도가 되듯이.김하늘은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토대로 인테리어처럼 규모가 큰 작업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작품으로 화두를 던져온 그가 그려낼 공간이, 그 공간에 담길 메시지가 궁금해진다.
글 허연선 기자 사진 전승 기자, 김하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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