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인터뷰] “강원-가나 잇는 ‘연결 다리’… 춘천의 아들 역할 자임”

오세현 2026. 3. 3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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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춘천 떠났던 14세 소년 금의환향
선교사 아버지 영향 가나서 정착
따뜻한 사람·환경·음식·춤에 매료
평창동계올림픽 대표팀 부단장 활동
외국계 첫 가나대사…한·가나 ‘연결’
국가적 차원 ‘의미있는 다리’ 역할 결심
정상회담서 이재명 대통령 진솔함 인상
역사 공통점…경험 바탕 공동성장 강조
‘기회의 땅 아프리카’ 강원 협력 구상
춘천·호호에시 자연·관광 자원 닮아
‘춘천의 아들’로서 자매결연 추진 희망
“개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인연 확장”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의 생애는 ‘연결’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쉽지 않다. 선교사인 아버지 손을 잡고 가나로 떠났던 14세 소년이 45년 후 주한 가나대사가 돼 다시 고향 땅 춘천을 밟았다. 사하라 이남 국가에서 외국계 자국민을 대사로 임명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매스게임 참가자로 서울을 찾은 전세계인을 환영하던 소년이 30년 후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가나 대표팀 부단장이 돼 다시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했다. 이제 그는 강원도와 춘천, 가나를 ‘연결’ 하고 싶어했다. 풍부한 가능성과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늘 ‘기회의 땅’에 머물러 있는 강원도와 춘천, 가나를 하나로 잇는 일이야 말로 ‘춘천의 아들’인 자신의 소임이라고 믿고 있었다. 지난 25일 특강을 위해 춘천 유봉여고를 방문한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를 만났다.

최고조 주한가나대사가 25일 춘천유봉여고에서 강원도민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정호 기자

-고향 춘천을 찾은 소감은.

“성인이 된 후 세 번 춘천을 찾았다. 대사가 된 후 춘천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여기가 아빠 고향’이라고 말해줬다. 아이들과 함께 태어난 샘밭(신북읍)을 찾아갔던 날이 마음에 남아있다. 당시 학교 소풍 장소로 쓰이던 솔밭에 가본 곳 중 가장 아름다웠던 한 카페에 앉아 옥수수 라떼를 처음 마시며 지나 온 삶을 되새겼다.”

-존 드라마니 마하마 가나 대통령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마하마 대통령과는 가나대학교 같은 기숙사 선후배다. 그 기숙사는 유독 선후배와 동기 간의 유대가 깊은 곳이다. 2008년 대통령께서 부통령에 오르셨을 때, 기숙사 후배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축하를 드리며 인연을 이어갔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대통령께서 ‘나의 첫 쿠데타’ 라는 책을 집필하실 때 대통령궁이 아닌 제가 운영하던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내시며 글을 쓰셨던 기억은 매우 특별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3년 전에는 대통령께서 야당 후보일 때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했고 저는 핀테크 세션 연설자로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사직 임명은 뜻밖이었을 것 같은데.

“많이 놀랐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민족적 정체성이 강하기 때문에 사하라 이남 국가에서 외국계 자국민을 대사로 임명한 사례는 전례가 없다. 그럼에도 한국과 가나를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의미있는 다리’가 될 수 있다면 온전히 뛰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나의 매력은 무엇일까.

“‘내가 살아있구나’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나누는 정이 있다. 한 번도 우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태양도 따뜻하고, 사람도, 환경도, 음식도, 춤도 모두 따뜻하다.”

-그런 점 때문에 아버지를 따라 가나에 간 14세 소년이 결국 정착하게 된 것 아닐까.

“그렇다. 사람 사는 맛은 그 어디보다 가나가 뛰어나다. 함께 공부한 친구들, 비전을 공유한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었다.”

-최근 한국과 가나 간 정상회담이 있었다.

“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진솔함이었다. 그 진정성 있는 태도에 마하마 대통령 뿐만 아니라 함께한 모두가 깊이 감동을 받았다. 두 정상이 한국계 가나 대사인 저를 여러차례 언급하시며 따듯한 말씀을 건네서 조금은 특별했다. 정상회담이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대화가 오간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동시에 마하마 대통령이 저를 대사에 임명한 의미, ‘두 나라를 잇는 다리’가 비로소 빛을 발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면.

“연세대 명예박사 수여식 때다. 연설을 앞두고 대통령께서 ‘너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한국어를 준비해 왔다. ‘이제부터 오빤 강남스타일’, ‘파이팅’을 외치시는 그 모습에 현장은 웃음과 박수로 가득 찼다. 전날밤 직접 인터넷을 찾아가며 발음을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정성과 배려에 더욱 깊은 감동을 받았다.”

-양국정상회담 중 해양안보협력 MOU는 직접 서명을 했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특별한 순간이었다. 코로나19 당시, 청해부대 장병들의 긴급 후송 작전이었던 ‘오아시스 작전’이 가능하도록 현지에서 도움을 줬던 일이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같은 바다를 지키는 두 나라의 협력을 상징하는 문서에 직접 서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도 매우 깊은 감회로 다가왔다. 가나는 서아프리카 해양 안보의 중요한 거점 국가이고, 한국은 세계적인 해양 강국이다. 이 두 나라가 해양안보 협력을 통해 손을 맞잡는다는 것은 단순한 협력을 넘어 생명과 안전을 함께 지키는 약속이다.”

-‘원조가 아닌 무역을 원한다’고 했다. 아프리카를 ‘원조 국가’로 바라보는 시각도 여전한데.

“아프리카는 더 이상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 대륙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인구, 도시화, 디지털 전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금융, 통신, 에너지, 농업,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혁신이 일어나고 있고, 그 변화의 속도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가나 역시 정치적 안정성과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 서아프리카의 중요한 경제 허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식민지 지배 등 한국과 가나의 역사적 배경도 비슷하다.

“식민지 역사 뿐만 아니라 한국은 못 사는 나라에서 잘 사는 나라로 전환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그동안 서방의 여러 국가와의 협업을 보면 결과적으로 ‘우리(가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였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러면 과연 어떤 나라가 정직하게, 서로를 위해 일할 수 있을까. 한국이다. 한국은 그간 코이카(KOICA) 등을 통해 가나에서 일을 해왔지만 한 번도 ‘우리가 이런 거 했다’고 자랑한 적이 없다. ‘이런걸 해줬으니 우리도 무언가를 해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다.”

-‘공동의 성장’을 주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인가.

“물론이다. 서로가 가진 강점을 교환하고, 함께 가치를 만들어내는 관계가 지속가능한 관계라고 믿는다. 한국이 과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세계적인 경제국가로 성장한 경험은 아프리카와의 협력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고 특별하다. 이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시점에 와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부분 한국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한국 안팎의 여러가지 문제가 크다. 돌파구가 필요하다. 돌파구라면 자원과 시장이 있어야 한다. 가장 큰 시장과 자원을 갖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다. 더욱이 가나에는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AfCFTA)가 있다. 가나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를 꿈꿀 수 있는 시장이 열린 셈이다. 시장은 결국엔 사람이다. 한국은 애들이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거기(가나)는 다 애들이다(그 역시 6남매 다둥이 아빠다). 저를 가나대사에 임명하신 이유가 꼭 가나만을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한국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프리카도, 강원도도 늘 ‘미래의 땅’이다. 아프리카에서 새롭게 도전하려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아프리카는 분명 ‘미래의 땅’이지만 이미 변화가 시작된 ‘기회의 땅’이다. 사업의 성패는 결국 그 나라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부분 아프리카를 충분히 알지 못한 채 ‘가능성’만 보고 들어가려고 한다. 아프리카는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 언어를 가진 수십 개 나라들의 집합이다.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목표 이전에 ‘아프리카 전문가’가 돼야 한다. 현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사람들과 살아가다 보면 진짜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디지털 금융(핀테크), 농업과 식품가공, 에너지, 물류, 콘텐츠 산업까지 아프리카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첫 번째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분야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기술이나 자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이고, 그 신뢰는 시간을 들여 함께 살아낸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서울올림픽 개막식 참여 후 꼭 30년 만에 평창올림픽을 찾았다.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매스게임에 참여해 춤을 추며 전 세계에서 온 손님을 환영하던 한 소년이 30년 후 평창올림픽에서는 가나 올림픽팀 부단장으로 환영받는 입장이 됐다. 그 순간의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한 원을 그리듯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번 춘천방문도 마찬가지다. 45년 전 이 곳을 떠났던 제가 가나 대사로 다시 이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 특별하다.”

-춘천과 가나도 가까워질 수 있을까.

“개인적인 여정을 넘어 춘천과 가나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그려보고 있다. 가나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파자토와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훌리폭포가 있는 호호에(Hohoe) 시는 자연환경과 관광 자원 측면에서 춘천과 닮은 점이 많다. 춘천시와 호호에(Hohoe) 시가 자매결연을 한다면 자연과 관광, 사람을 잇는 의미 있는 협력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그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다리로, ‘춘천의 아들’로서 그 자리에 서 있고 싶다. 개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인연이 이제는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를 잇는 길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오세현 기자 tpgu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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