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제-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Ⅰ가보니] 절제에서 폭발로… 감동 선율에 기립 박수 화답
조성진·TFO, 세심한 멜로디 선사
강렬한 ‘봄의 제전’으로 피날레 장식
앙코르 외치는 관람객 열기 뜨거워
2026 통영국제음악제가 개막한 지난 27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음악제 문을 열 첫 무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Ⅰ’을 앞두고 콘서트홀 일대에서는 공연 2시간 전부터 관람객들의 설렘이 피어났다. 관람은 오후 7시에 시작되지만, 오후 5시께부터 기념사진 촬영과 티켓 수령을 위해 모여드는 발길이 현장의 열기를 달궜다.
이날 펼쳐진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Ⅰ’은 사전 예매 개시와 동시에 전석 매진을 기록한 인기 공연이다. 세계 정상급의 연주자들이 모인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이하 TFO)가 여는 개막 연주회라는 점과 더불어 한국 클래식의 역사를 쓰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출연이 확정된 무대였기에 일정이 공개되자마자 큰 이목을 끌었다.

관객들은 공연장 곳곳에 부착된 포스터와 사진을 찍거나, 삼삼오오 모여 출연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공연장 문이 열릴 때까지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연주회 시작 한 시간 전 콘서트홀 대기공간에서 만난 임현주(69·서울) 씨는 “조성진 피아니스트를 워낙 좋아해서 서울에서부터 오게 됐다. 조성진이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로 팬이 됐기에, 오늘 연주할 쇼팽 협주곡 제2번이 너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온 또 다른 관람객 김애정(33·서울) 씨는 “연주회 때문에 내려오는 김에 마침 어머니도 시간이 돼 함께 통영을 여행하게 됐다. 오전엔 동피랑 벽화마을과 이순신 공원도 둘러봤다”며 “힘든 시기에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쇼팽 곡을 들으며 위로를 받곤 했는데, 이번에 TFO와 조성진이 이룰 조화도 기대가 된다”며 들뜬 마음을 표했다.
◇윤이상 ‘예악’으로 손님맞이…서양 악기로 그린 조선 궁중 음악= 많은 이들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암전과 적막의 뒤를 이어 무대에 오른 TFO가 첫 번째로 연주한 곡은 윤이상 작곡가의 ‘예악(1966)’. 조선시대 종묘제례악 음색을 서양의 악기들로 구현한 작품이다. 우리 전통 타악기 ‘박’ 소리로 시작돼 서구의 오케스트라가 동양적 멜로디를 신비롭게 풀어낸다.
TFO를 이끄는 지휘자 데이비드 로버트슨의 손짓에 맞춰 이날의 연주도 박이 포문을 열었다. TFO는 통영을 음악의 고장으로 만든 윤이상 선생을 기념함과 동시에, 조선 궁중의 정취로 음악제의 귀한 손님들을 맞이했다.

◇조성진이 이어받은 관객들의 설렘, 기립 박수에 화답= 다음 프로그램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 F단조’에서는 관객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등장했다. 조성진은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이후 절제된 해석과 투명한 음색으로 자신만의 쇼팽을 구축해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날 연주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이 실제로 겪었던 짝사랑의 감정을 옮겨 썼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과장되지 않은 표현으로 쇼팽의 정서를 균형감 있게 풀어 ‘절제된 쇼팽’이라 불리는 그가 이번엔 어떤 해석을 들려줄지, 첫 음이 울리기 전부터 관중의 시선은 일제히 건반 위로 모였다.
조성진은 곡의 구조상 먼저 시작되는 TFO의 오케스트라 선율 속에 스며들듯 나타나 연주를 이어갔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대화를 주고받듯 음을 건네고 감싸면서 쇼팽이 남긴 사랑의 설렘과 슬픔을 멜로디로 만들어냈다. 악상이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조성진 특유의 세심한 프레이징(연주의 호흡을 길거나 짧게 끊어 조절하는 기법)은 이번 무대에서도 돋보였다.
곡이 끝난 후 객석 곳곳에서는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수없이 마무리 인사를 반복해도 가실 줄 모르는 뜨거운 반응에 조성진은 ‘쇼팽의 왈츠 제9번 A♭장조 Op. posth. 69 No.1 ‘이별의 왈츠’’로 앙코르 연주를 선사한 후 퇴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박수 소리가 사그라지지 않자, 재등장한 조성진은 또 다른 앙코르곡으로 ‘쇼팽의 왈츠 제1번 E♭장조, Op. 18/1 ‘화려한 대 왈츠’’를 들려주며 화답했다.

◇TFO·로버트슨 진가, ‘봄의 제전’으로 또 한 번= 조성진과의 협연을 마친 뒤 TFO는 달아오른 현장의 분위기를 터트릴 가장 좋은 카드를 연주회 마지막에 배치했다.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봄의 제전’은 1913년 초연 당시 파격적인 리듬과 원시적인 생동감에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20세기 음악사의 대표적인 문제작이다. 봄의 기운을 불러오기 위해 마을의 처녀를 희생시키는 고대 제의를 주제로 한 이 작품은 불규칙한 박자감과 듣는 이의 긴장을 유발하기 위해 의도된 불협화에 관객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작품의 파격성이 음악의 혁신으로 재평가되며,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색채를 만들어낸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지휘자 데이비드 로버트슨은 자칫 관악과 현악 등 각 파트가 충돌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이 곡을 연주자들과의 긴밀한 교감을 통해 명료하게 다듬었다. 로버트슨은 단원들과 지속적으로 눈을 맞추고 수신호를 줘 불협 속의 질서를 끌어내고, 각 음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었다.
첫 음을 올린 후 멈춤 없이 이어져 온 곡의 긴장이 격렬한 마지막 화음에 의해 단숨에 끊어지듯 끝나는 순간, 관객들은 일제히 손뼉을 맞부딪히며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여정에 찬사를 보냈다. 무대가 끝난 뒤 3분 넘게 지속된 박수 소리 속에 2026 통영국제음악제의 닻이 올랐다.
글·사진= 장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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