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풍력발전기 도는 마을 “무너지고 불 날까 너무 불안해요”

“그동안 소음 걱정만 했었는데
지난해 대형 산불 악몽 떠올라”
새 풍력단지 조성 마을도 ‘걱정’
설계 수명 20년 지난 시설 다수
공작물로 분류…소방법 미적용
지자체는 사업 포기 어려워 고민
“소음만 심한 줄 알았지, 누가 무너지고 불나고 할 줄 알았겠어요?”
경북 영덕군 영덕읍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정훈씨(58)는 지난 26일 마을 뒤편으로 늘어선 풍력발전기를 한참 바라봤다.
동해를 마주한 영덕군 창포리·대부리 일대 산자락에는 높이 80m, 날개 길이 40m의 대형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서 있다. 발전기는 1기당 1.6㎿(메가와트)급으로, 이 일대에만 총 24기가 설치돼 있다.
약 20년간 가동된 풍력발전기는 주민들에게 매달 일정한 배당금을 안겨주는 수익원이었다. 하지만 최근 잇단 사고 후 마을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고 김씨는 전했다. 25층 아파트 높이에 달하는 발전기 1기는 지난 2일 나무젓가락처럼 꺾이며 인근 도로를 덮쳤다. 당시 현장을 지나던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며 주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 22일 발생한 화재는 주민 불안을 더했다. 이 사고로 발전기 내부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3명이 숨졌고, 불은 인근 산으로 번졌다. 소방당국이 5시간 만에 주불을 진화했지만 주민들은 지난해 대형 산불의 악몽을 떠올렸다. 당시 영덕군에서 주민 8명이 숨졌다.
김씨는 “영덕은 바닷바람이 강하게 부는 지역”이라며 “불이 나 산으로 번지면 걷잡을 수가 없다. 이번 사고로 주민 모두 불안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점차 노후화되는 풍력발전기와 제대로 된 기준이 없는 제도의 사각지대는 주민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풍력발전기는 3년마다 정기검사를 받는다. 하지만 설계 수명을 넘긴 설비에 대한 별도 점검 기준은 없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앞으로 5년 내 설계 수명 20년을 넘기는 풍력발전단지는 22곳, 발전기 기준 128기에 달한다. 이미 20년 이상 가동 중인 발전기 80기를 포함하면 5년 뒤 노후 풍력발전기는 모두 208기에 이른다. 사고가 난 풍력발전기도 2005년 준공돼 설계 수명 20년을 넘긴 상태였다.
풍력발전기가 건축물이 아닌 공작물로 분류돼 소방법을 적용받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축조·해체 등 규정이 있는 건축법 적용도 받지 않아서 해체 계획서를 작성하거나 상주 감리를 둬야 할 근거도 없다. 주민 이정훈씨(50대)는 “저렇게 큰 발전기가 설치된 뒤 어떤 규제를 받는지 모르겠다”며 “신재생에너지라고 홍보할 때와 달리, 설치 이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새 풍력단지 조성이 추진되는 마을에서도 걱정이 커지고 있다. 남정면 양성리·원척리 일대에서 영덕남부풍력발전과 영덕남정풍력발전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남정면에 사는 김억남씨(58)는 “우리 마을에 추진되는 풍력발전단지 대부분이 민가와 이격 거리가 1㎞에 불과하다”며 “그동안은 소음 문제로 반대해왔는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구 3만명 규모의 영덕군으로서는 풍력 자원을 활용한 재생에너지 사업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영덕은 강원 북부 산악 지역에 버금가는 국내 최상위 수준의 풍력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연평균 풍속이 초속 6.7m로 강원 북부 대관령(초속 7m)과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풍력발전을 위해서는 보급 위주 정책에서 안전 기준 강화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민수 포항테크노파크 공학박사는 “그동안은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려 규제를 완화해온 측면이 있다”며 “재생에너지 확대와 지속성을 위해서는 안전 관리 기준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영덕군 관계자는 “창포리 일대는 풍력발전기 너머로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절경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며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고 일부 주민들에게는 소득과도 연결된 사업인 만큼,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기 전에 정부 차원의 안전 관리 기준이 강화됐으면 한다”고 했다.
글·사진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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