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②] “공장은 옮겨도 사람은 못 옮긴다”… 용인반도체 ‘정쟁의 쇠사슬’ 묶이나

최영재·최용진·신연경·박지우 2026. 3. 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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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은 옮겨도 사람은 못 옮긴다"…인력 이탈 공포

업계 전문가들 "반도체는 장비가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
지방 이전 시 인재 유출 등으로 생산성 20~30% 하락할 것

반도체 산업의 핵심은 결국 고도로 숙련된 엔지니어다. 반도체산단 이전을 놓고 기업들이 가장 크게 고민하는 점은 '인재 증발'이다.

'사람인' 및 '잡코리아'가 지난 2024년과 2025년 사이 진행한 '반도체·IT 엔지니어 근무지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이외 지역(지방) 근무 시 이직을 고려하겠다는 응답이 80~85% 사이로 나타났다.

수도권에서 근무 중인 핵심 엔지니어의 80% 이상이 "근무지가 지방으로 이전될 경우 이직이나 퇴사를 고려하겠다"고 답한 것이다.

신입사원 지원율 역시 현재의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우려다.

세계적 반도체 장비기업인 ASML이 화성에 '뉴 캠퍼스'를 짓고,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가 용인에 R&D센터를 짓는 이유도 "수도권이 아니면 엔지니어를 구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인력수급 동향 보고서에서 "반도체 전문인력의 90% 이상이 수도권 거주를 희망한다"는 지표가 간접적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전문가들은 용인 반경 50km를 단순한 거리가 아닌 대한민국 반도체 인력의 '심리적·물리적 마지노선'이라고 말한다. 현재 이 구역은 서울대, 카이스트, 성균관대 등 20여 개 특성화 대학이 밀집해 연간 3,500명의 핵심 인재가 육성되고 있다. 삼성전자 기흥·화성 연구소와 판교 팹리스밸리를 잇는 이 구역에는 국내 반도체 연구 인력의 80%에 달하는 약 5만 명이 상주하고 있다.

반면, 이전지역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호남지역의 실정을 살펴보면 '반도체 공동연구소' 유치 후속조치를 논의하는 단계로, 이미 공정률 70%를 넘긴 용인의 현장실습 인프라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광주시도 최근 광주과학기술원과 협력해 설계인력 1천400명 양성계획을 발표했으나, 이는 제조·운영이 아닌 설계 위주 인력으로, 제조 인력이 필수적인 용인산단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반도체는 사람이 만드는 산업"이라며 "수도권 소부장 네트워크와 석박사 인력이 핵심인데, 지방 이전 시 인재 유출(조기 이탈)과 협력사 동반 불가로 생산성 20~30%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기에 용인 인근 780여개 소부장 기업과의 협력 생태계까지 단절되면, 공장은 지어도 돌릴 사람이 없는 '인재 진공상태'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전문가는 "지방 이전은 우수 인재를 경쟁국인 대만이나 미국으로 밀어내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인재 인프라를 무시한 이전론이 국가 전략산업의 뿌리 자체를 뽑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 1월 9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에서 분주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만 '정쟁의 쇠사슬'에 묶여 멈춰서나...잃어버릴 7년의 재앙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현재 7~8%)이 5% 미만으로 하락할 수도

2026년은 전 세계 반도체 패권의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대한민국 반도체의 심장인 용인 클러스터는 '지방 이전'이라는 정치적 공방에 가로막혀 골든타임을 허비할 위기에 처했다.

경쟁국들은 이미 지난 2025년을 기점으로 최첨단 공정 양산체제에 돌입했다.

대만 TSMC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지난 2025년 하반기 이미 신주와 가오슝에서 공장을 운영 중이며 2nm 양산을 위한 추가 공장 증설을 진행 중이다,

'반도체 부활'을 선언한 일본의 라피더스는 내년 4월 시제품 라인 가동을 앞두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용인산단이 당초 계획대로 추진된다 하더라도 가장 빠른 SK하이닉스의 가동 목표는 오는 2027년 5월이다.

이미 경쟁국보다 2년 뒤처진 상황이다. 만약 지금 부지를 재선정하고 인허가 절차를 다시 밟는다면, 가동 시점은 2034년 이후로 밀려나게 된다. 이는 사실상 글로벌 시장에서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용인 클러스터의 입지를 지금 재선정한다면, 최소 5년에서 7년 이상의 사업 지연이 불가피하다"며 "(지방 이전 시) 한국은 차세대 공정(1나노 이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며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현재 7~8%)이 5% 미만으로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만이 전력과 용수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해결하며 속도전을 벌이는 동안, 한국 기업들은 정치가 파놓은 '허들'을 넘느라 제자리걸음 중이다.

경쟁국들이 반도체 산업의 패권을 잡기 위해 뛰어나갈 때, 우리는 오히려 정쟁에 휘말려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는 1초의 지연이 곧 국가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더 이상 타협의 대상이 아닌, 국가 생존을 위한 결정이 필요한 때다.

최영재·최용진·신연경·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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