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한 고문 경찰의 죽음

이왕구 2026. 3. 2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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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독재정권 시기 민주화 인사들에게 가한 야수적 고문으로 '고문기술자'라는 악명을 떨친 이근안 전 경감이 지난 25일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 64세에 세상을 떠난 김근태 전 의원은 한기 때문에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못했을 정도로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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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민주화 이후 11년간 도피생활을 하다 1999년 경찰에 자수한 이근안이 시민들의 항의가 쏟아지는 가운데 성남지청에서 서울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독재정권 시기 민주화 인사들에게 가한 야수적 고문으로 ‘고문기술자’라는 악명을 떨친 이근안 전 경감이 지난 25일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말년 전립선암을 앓고 혈액투석을 하는 등 투병생활을 했으나 천수를 누린 셈이다.

□ 이근안은 키 180㎝의 거한으로 솥뚜껑처럼 큰 손, 짧은 머리, 굵은 눈썹 등 첫인상부터 위압적이었다고 한다. 반체제 유인물을 대학 내에 배포한 ‘무림사건’(1980년)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에게 수사를 받았던 김명인 인하대 명예교수는 회고록에서“커다란 배 한 알을 가져와 한 손으로 그 배를 으스러뜨리면서 마음만 먹으면 나를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근안은)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겉으로는 멀쩡한 채로 사람의 내부 장기를 다 파괴할 수 있다고 겁을 주었다”고 적었다. 이근안에게 전기고문을 당했던 고 김근태 의원은 그 경험을 “종국적으로 멈춰버린 저주의 세계”라고 묘사했다.

□ 64세에 세상을 떠난 김근태 전 의원은 한기 때문에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못했을 정도로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다. 고문의 해악은 육체적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고문이 계속되면 심지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동조하는 ‘스톡홀름 신드롬’까지 생긴다. 정신까지 파괴하는 반 인륜적 범죄다. 하지만 자신의 악행으로 많은 피해자가 나왔는데도 이근안은 고작 7년 옥살이로 죗값을 치렀다. 출옥 후에는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라고 생각했다”고 자기정당화에 급급해하거나 "일할 때만 애국이니 국가보위니 하지 이제는 씹다버린 껌의 신세 아닌가"라고 한탄을 했다.

□ 이근안이 '맹활약'하던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시국사건을 담당하는 대공경찰이 파출소 단위까지 배치될 정도로 감시망이 촘촘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의 표현대로 감시, 폭력, 고문으로 ‘좌익’이나 ‘간첩’ 같은 희생양을 만들고 엄벌하는 공포정치로 체제를 유지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 주모자 박처원 전 치안감이나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그런 시대가 낳은 괴물인 셈이다. 저승에서라도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기를 빈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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