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3시간 진료 대신 행정업무"…AX로 의사 부담 줄여야

김송현 기자(kim.songhyun@mk.co.kr) 2026. 3. 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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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차 응급실 전문의 깊은 한숨
건보공단·소방청·병원DB …
환자기록 찾느라 시간 걸리고
진료후엔 소견서 등 서류작업
응급상황서 진료기록 부실땐
의료소송때 처벌받는 경우도
의사 47%만 AI 업무에 활용
간호사도 시스템 개선 원해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의료진이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걸어가고 있다. 매경DB

매일경제신문이 취재를 위해 만난 의료인들은 하나같이 환자와 의료인 모두를 위해 '인공지능(AI)을 통한 시스템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의료인들이 가장 바라는 건 AI를 통한 행정 업무의 간소화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로 근무 중인 홍정원 씨(가명·49)는 "막대한 분량의 행정 업무 때문에 환자보다 모니터 앞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낸 날도 많다"고 털어놨다.

환자를 대면하기 전 건강보험공단, 소방청, 각 병원 데이터베이스(DB)에 산재한 건강 기록을 일일이 찾아야 하고 환자를 만난 후에는 처치 내역 등을 기록한 뒤 진료의뢰서, 소견서 등 각종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홍씨는 "매일 2~3시간 이상을 데이터 검색과 행정 업무에만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 진료보다 행정 업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로 "진료기록이 부실할 경우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환자 진료에 매달렸던 한 동료가 사망한 응급환자의 유가족으로부터 제기당한 의료소송에서 '진료기록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패소해 형사처벌을 받는 것을 본 뒤부터 더더욱 기록 작성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AI의 출현 이후 변화를 기대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는 것이 홍씨의 설명이다. 진료기록부나 전자의무기록(EMR) 관리 등 단순 작업에 AI를 활용하려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환자별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는 물론, 병원의 외부 인터넷망 접속 허가 등 받아야 할 동의만 수십 가지다. 홍씨는 "현재 병원 시스템에서 의료 업무에 AI를 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공의들은 '실무 교육'에 AI 기술이 도입되기를 희망했다. 내년 내과 전문의 자격시험을 앞두고 있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전공의 이도현 씨(가명·33)는 "아직도 새로운 환자를 만나면 불안감에 심장이 쿵쾅거린다"고 털어놨다. 병원에 상주하며 폐렴·심부전·당뇨합병증 등 특정 질환 환자는 많이 만나 진료에 자신이 붙었지만 혈관염이나 다발골수종 등 난치성 질환 환자에 관한 경험은 거의 없어서다. 이씨는 "수련을 하며 어떤 환자를 만날지는 순전히 운"이라며 "AI를 통해 다양한 환자에 대한 실무 경험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일부 인턴·전공의는 잡다한 업무로 인해 제대로 된 수련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김성호 씨(가명·29)는 "아침마다 환자가 한 아름씩 싸 오는 알약을 하나하나 검색해 이름과 성분을 기록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며 "이런 단순 업무부터 AI에 맡기고 환자를 진료하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실제 AI를 사용해본 의료인은 '이제 없는 게 상상도 안 된다'고 말한다. 현재 AI 활용으로 큰 효과를 보고 있는 분야는 소아환자 치료다. 소아암환자에게는 보통 쇄골을 통해 항암제를 투약하며, 그 과정에서 의료진은 환자의 키나 몸무게를 통해 투약 지점을 짐작해야 한다.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CT나 엑스레이 촬영을 수차례 반복하기도 하지만, 방사선 노출에 취약한 소아환자에게는 그마저도 어렵다. 소아암환자 치료가 어려운 이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얼마 전부터 소아환자 대상 항암제 투약에 AI 모델링과 증강현실(AR) 글라스를 활용하고 있다. 한 번의 CT 촬영으로 환자의 심장 구조를 3차원(3D) 모델화한 뒤 AR 글라스를 통해 해당 '3D 심장'을 실제 환자의 심장 위치에 띄워둔 채 투약을 진행하는 것이다. 의료진은 "이전까지는 개인의 감에 의존하느라 투약을 앞두고 조마조마했지만 이젠 불안감이 덜하다"며 "CT나 엑스레이 촬영이 사라지고 불필요한 추가 검진이 줄어드니 환자들도 비용 부담이 작아졌다"고 말했다.

AI 도움이 간절한 건 의사뿐이 아니다. 서울대병원 2년 차 간호사 박현주 씨(가명·25)는 매일 첫 업무가 병원 곳곳에 숨겨진 리모컨을 찾는 일이다. 리모컨을 모두 찾고 나면 다음엔 휠체어를 찾아 나선다. 박씨는 "AI를 쓰면 금방 끝날 일인 걸 안다"며 "하지만 외부 인터넷망도 쓰기 어려운데 병원에서 AI 사용은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찾은 서울대병원은 복도가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간호사들로 분주했다. 박찬희 서울대병원 간호사 겸 PI팀장은 "환자가 실수로 호출 버튼을 눌러도 일단 뛰어가야 한다"며 "그새 진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다른 간호사들은 인력 부족으로 끙끙대는 때가 많다. AI는커녕 시스템만 고쳐도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AI 활용에 보수적인 병원의 분위기도 의료계의 AX(AI 전환) 확산을 막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업무에 AI를 활용 중'이라고 답한 의사의 비율은 47.7%에 달했다. 하지만 대다수 의사들은 아직 AI를 활용해도 될지 주저하고 있다.

이동헌 서울대 의대 영상의학교실 교수는 "수십 년 전부터 첨단기술 활용이 보편화된 일부 진료과를 제외하면 아직 AI 활용 자체를 어색하게 생각하는 의료인이 많다"고 했다.

이형철 서울대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 부원장은 "아직 AI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의료 현장의 시선도 적지 않다"며 "전공 과목은 물론 의료 지식을 AI에 물어본다는 것, 모르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기는 의사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의료법 등을 고쳐 AI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AX 흐름에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는 의료인들의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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