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승리 선언은 감감…미 패권 세 기둥 한꺼번에 흔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한달을 넘겼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승리 선언이 멀어지고, 미국 패권의 균열은 깊어지고 있다. 냉전 이후 미국 중심 세계 질서를 지탱해온 세 기둥인 절대적 군사력, 달러 패권, 자유주의 규범이 동시에 타격을 입고 있다.
전쟁 한달째인 28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의 프린스술탄 공군기지가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20여명이 부상하는 등 미군 피해가 작지 않게 발생했다. 특히 대당 7억달러(약 1조563억원)에 이르는 E-3 센트리 조기경보기와 공중급유기 3대가 파손됐다고 전해졌다. 개전 이후 이란은 중동 내 군사기지 104곳을 공격했고, 이 중 미군 기지 13곳의 미군은 호텔로 거처를 옮겼다. 뉴욕타임스는 25일 중동의 많은 미군 병력이 호텔이나 사무용 공간으로 재배치됐다며 “전투기 조종사와 항공기 운용·정비 인력을 제외하면, 육상 전력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원격 근무’ 형태로 전쟁을 수행한다”고 보도했다.
미군의 ‘눈’ 역할을 하는 카타르 우다이드 기지의 조기경보 레이더 AN/FPS-132, 아랍에미리트 루와이스 및 요르단 무와파크 살티의 사드 레이더인 AN/TPY-2 등도 파손됐다. 미국의 항모 전단도 이란이 통제하는 호르무즈해협과 페르시아만에 진입하지 못하고, 1천㎞ 이상 떨어진 아라비아해에서 원거리 타격만을 수행 중이다.
미군이 본 이런 피해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전례 없는 수준이다. 이는 이란이 30여년간 준비한 비대칭 전력과 저가 드론 중심의 새로운 현대전 양상에서 기인한다. 미국 제조업과 군수 산업이 이런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채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유지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국 패권을 지탱하는 첫 번째 축인 절대적 군사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해상 및 공중에서의 우위가 한계에 부닥쳤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경제적 패권을 지탱해온 달러 체제 역시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중동 산유국들과 석유 대금을 달러로만 결제하는 ‘페트로 달러’ 체제를 수립하며 기축통화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서방의 전면적 제재에 맞서 중국 등과의 석유 거래에 위안화와 루블화 결제를 도입하면서, 미국 주도의 견고했던 ‘제재 레짐’에 심각한 틈이 벌어졌다.
이란 전쟁은 이에 더해 달러 패권의 붕괴를 가속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폭등하자, 미국은 고육책으로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며 위안화나 루블화 결제를 묵인하기에 이르렀다. 이란은 이 틈을 타 호르무즈해협 통과의 조건으로 통행료를 요구하고 있고, 실제 위안화로 통행료를 지급하고 해협을 통과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경제를 지배해온 달러 중심의 에너지 결제 시스템이 흔들리는 것이다. 월가의 유명 투자가 레이 달리오는 지난 16일 엑스(X)에 패권국이 “재정적, 군사적으로 과잉 전개된 상황”에서 “중요 핵심 무역로”에서 통제력을 상실하면, “동맹과 채권국의 신뢰 상실과 기축통화 지위가 약화”된다며 “누가 호르무즈를 통제하느냐”가 미국 패권과 달러 체제의 운명을 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족한 개전 명분과 이번 전쟁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와해를 가속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강대국 중심 세력 질서의 재편을 예고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파나마 운하와 캐나다, 그린란드의 합병까지 주장하며 서반구 우선주의를 노골화해왔다. 올해 초 발생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납치 사건과 협상 중인 이란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은 무력에 의한 분쟁 해결 금지, 현상 유지의 원칙, 유엔 등을 통한 다자주의, 세계화 등 지난 세기를 지탱해온 규범들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은 지난 23일 휴스턴에서 열린 한 에너지 콘퍼런스에서 “지금 전쟁을 끝내고 승리를 선언하면, 이란이 ‘이제 호르무즈는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각 선박에 일종의 ‘통행세’를 부과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우리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있고, 마땅한 옵션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시작해서는 안 될 전쟁을 시작한 미국이 이제 끝낼 수 없는 전쟁을 맞이하게 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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