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그렇기에 부모에게서 받는 상처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그 상처를 어떻게 수용할지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부모의 불화로 고통받은 사람이고, 그 상처를 여러 작품에서 드러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명작으로 승화해 남을 위로했다. 자전적 이야기 ‘파벨만스’(2022)는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보여준다.
파벨만 가족에겐 늘 함께하던 이웃집 아저씨 베니(왼쪽·세스 로건)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 버트 파벨반(오른쪽·폴 다노)의 친구였다. 가족의 중요한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IMDb]
화목한 가정, 늘 곁을 지키던 아빠 친구
이야기는 유대계인 파벨만 가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장남인 새미 파벨만(가브리엘 라벨)은 스필버그를 모델로 삼아 탄생한 캐릭터로 어릴 때 영화에 영혼을 사로잡혔다. 그는 영화를 단순히 보고 즐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가족의 일상을 찍었다. 본인이 보고 싶은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타고난 영화감독이었던 것이다.
가정은 화목했다. 글로벌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인정받는 아버지 버트 파벨만(폴 다노)은 아내와 아들딸에게 자상했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미치 파벨만(미셸 윌리엄스)은 아들이 예술적 소양을 키울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그리고 아버지 친구인 베니 로위(세스 로건)는 늘 파벨만 가족과 함께했다. 장남 새미를 따뜻하게 바라봤다.
새미가 찍은 영화를 보며 즐거워하는 아버지(왼쪽부터),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 [IMDb]
문제는 그 따뜻한 시선이 새미의 엄마에게도 미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새미는 그 사실을 자신이 찍었던 영상을 통해 발견한다. 온 가족이 떠난 캠핑. 당시에는 몰랐다. 그러나 찍어둔 영상을 재생해보니 아버지만 겉돌고 있었다. 아빠 친구와 엄마가 다정하게 형성해 둔 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말이다. 새미는 깨닫는다. 어머니가 가족의 울타리 안에 절대 들이지 말았어야 할 관계를 들였다는 사실을.
엄마와 아빠는 새미의 영화 촬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랐다. 예술가였던 엄마가 새미의 꿈을 적극 지원한 반면, 아빠는 취미 정도로 여겼다. 새미가 영화인으로 성장하는 데는 두 사람의 역할이 모두 필요했던 것이다. [IMDb]
누군가는 아픔을 승화하고, 누군가는 아픔에 잠식된다
부모의 불화로 인해 불안정해진 남자는 스필버그 영화의 단골 주인공이다. ‘E.T.’(1982)에서는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떠나면서 외로워진 소년 엘리엇이 등장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의 남자 주인공은 어머니의 외도 때문에 깨어진 가정을 되붙이고 싶어 사기꾼이 된다. 한 사람의 이야기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제는 그가 평생을 고민해온 질문과 닿아 있다. 스필버그는 아이에게 세상 그 자체인 부모가 흔들렸을 때, 아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큰 관심이었던 것이다.
‘E.T’의 주인공 엘리엇은 외로운 소년이다. 아버지는 가정을 내팽개쳤고 어머니는 자신을 위로해주지 않으며 학교에는 친구가 없다. [IMDb]
‘파벨만스’의 새미,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사기꾼 프랭크 애버그네일은 비슷한 형태의 상처를 받았다. 아버지 친구와 어머니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 그리고 아버지는 무기력하게 이를 용인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두 인물은 상처를 다르게 받아들인다. 프랭크는 어머니의 마음을 되돌리고 싶어 사기꾼이 됐다. 자기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남을 다치게 하는 방법을 선택한 셈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프랭크도 어머니가 아버지를 떠난 뒤 괴로워한다. 화목했던 가정을 되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한다. [IMDb]
새미는, 다시 말해 스필버그는 그런 상처를 받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그건 우리가 모두 아는 스필버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여러 명작을 만들어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자기가 받은 상처를 재료로 삼아 타인을 위로한 것이다.
부모의 외도로 상처받는 건 억울한 경험이다. 나는 부모를 선택한 적이 없고, 그렇기에 그 상처를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자신이 타인을 다치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자기가 상처받을 때 세상의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자기 일탈을 합리화할 강한 명분이 있는 것이다. 세상에 상처받은 아이가 다시 세상에 상처를 주는 어른이 된 것이다.
(왼쪽 사진) 엘리엇은 외계인 E.T.와 친구가 된다. 어린 시절 부모의 불화로 힘들어하다가 상상 친구를 떠올려낸 스필버그의 경험이 녹아 있다. (오른쪽 사진) 아마 어머니의 외도 이후 사기꾼이 된 프랭크에게도 소년 엘리엇과 같은 쓸쓸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스필버그와 프랭크는 보여준다. 같은 상처가 있더라도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세상을 원망하며 범죄자가 될 수도 있고, 세상을 위로하는 예술가가 될 수도 있다. [IMDb]
똑같은 경험을 하고도 누군가는 건강한 삶을 산다. 상처가 자기 삶을 통째로 집어삼키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상처는 상처대로 두고, 본인의 인생을 살며 남을 존중한다. 개중에는 스필버그 같이 상처를 원동력 삼아 세상을 위로하는 사람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꼭 스필버그처럼 많은 이이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필요도 없다.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한 사람 몫을 다한 것만으로도 사회에선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다.
상상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상상은 외로운 소년을 하늘 위로 떠 오르게 할 수 있다. 지상의 근심에서 벗어나 훨훨 날게 할 수 있다. 스필버그의 ‘E.T.’는 가정불화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잠시나마 날 수 있는 시간을 줬다. [IMDb]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나의 아픔을 끼워넣기
그렇다면 스필버그는 어떻게 부모에 대한 배신감과 세상을 향한 원망에 잠기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을까. ‘파벨만스’에는 그 힌트가 드러난다. 새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혔던 고등학교 동급생과의 일화를 통해서다. 자신을 때리고 인종차별을 했던 학우 때문에 새미는 굴욕감을 느꼈다. 그러나 정작 졸업 무도회에서 새미가 공개한 영상에는 해당 학우의 멋진 모습이 담겼다. 새미는 자신을 괴롭힌 동급생을 당연히 미워했지만, 피사체로서 그가 지닌 아름다움은 그대로 담아낸다.
미워하는 인물을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을까. 새미에겐 가능했다. 거리를 두고 본 동급생에게는 분명 멋진 모습이 있었다. 새미는 자신을 괴롭힌 그의 끔찍한 인성과 그의 미모를 분리해서 볼 수 있게 됐다. [IMDB]
왜냐면 새미에겐 졸업 무도회용 영상을 멋지게 만드는 게 목표였기 때문이다. 얼굴을 보면 분노가 치밀었지만, 한 걸음 떨어져 카메라를 통해 봤을 때 동급생은 그저 아름다운 피사체였을 뿐이다. 졸업반 모두가 떠난 소풍에서 그 학우는 분명 친구들의 환호를 받는 스타였다. 그날의 소풍을 담은 영상에 그의 아름다움이 배제된다면 가짜일 뿐이다. 새미는 객관적으로 찍어냈다. 멋진 영상 덕분에 학우와는 화해했고 친구들의 찬사를 받았다.
새미를 괴롭히던 동급생은 새미가 자신을 찍어둔 영상을 보고 충격받는다. 거기엔 영웅의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센 척 했을 뿐 자기가 별것 아닌 존재라고 여겼던 그는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IMDb]
스필버그에게 영화는 한 발짝 떨어져 자기를 볼 수 있게 하는 매개였다. 영화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거리 두고 바라보는 시도를 이어온 셈이다. 불륜으로 가족의 신의를 저버린 어머니도, 학폭을 가한 동급생도 어느 정도는 모두 끔찍한 존재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모니터로 보면 그들의 다른 면모가 눈에 들어온다. 악한 일을 저지른 이들은 사실 악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비치기도 했다.
대상을 객관화해서 보게 되면 자기 삶도 객관화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이 반드시 나쁜 사람인 것만은 아니었듯 자기 인생에도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가 받은 상처는 과거 시점의 어떤 필름으로 남겨두고, 다시 나의 길을 갈 수 있다. 그 상처가 나를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스필버그는 자기의 특수한 고통을 수많은 영화의 보편적 플롯 중 하나로 여길 수 있게 된 셈이다. 본인의 아픔을 130년 세계 영화사 속 한 컷으로 삽입한 것이다.
‘파벨만스’ 포스터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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