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좌파… 빈껍데기 이념 두고 다투는 사람들 [영화로 읽는 세상]

김상회 정치학 박사 2026. 3. 2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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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이코노무비
장미의 이름③
장미 등장하지 않는 장미의 이름
의미 너무 많으면 의미 남지 않아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도 같아
실재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워져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동명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영화 '장미의 이름'. 이 영화의 이탈리아어 원작 제목은 'Il Nome de la Rosa(장미의 이름)'이고 영어 제목은 'The Name of the Rose(장미의 이름)'이다. 대개 몇 차례 번역을 거치다보면 각 언어권 사정에 맞게 제목이 변주되는 게 다반사인데 장미의 이름만은 초지일관 장미의 이름이다.

영화 장미의 이름엔 장미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만큼 영화 '장미의 이름'은 이 제목이 아니라면 작품을 설명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원작소설이나 영화에 장미는 한 송이도 등장하지 않는다.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란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 소설의 제목을 굳이 장미의 이름이라고 붙인 이유가 궁금해진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작품 의도를 이미 모두 설명하고 있다. '장미'는 모든 꽃 중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대표적인 꽃이다. 그렇다보니 모든 것에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장미에 저마다의 의미를 담아 주고받는다.

사랑, 헌신, 명예, 존경, 열정, 순결, 감사, 성모 마리아, 기쁨, 낙원, 아름다움, 순간성. 기쁨과 덧없음이 동시에 있는 상징 등등…. 중세 상징체계에서 장미에는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장미라는 이름을 사용하거나 장미라는 꽃을 형상화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의미 중에서 하나를 골라 장미에 담아 사용한다. 어쩔 수 없이 그 의미는 점차 모호해지고 해석하기 나름이 된다.

꿈보다 해몽이다. 모든 색깔의 빛이 합쳐지면 백색이 되고, 모든 색이 합쳐지면 검은색이 돼버린다. 흰색이나 백색은 색이 아니라 무색이다. 에코는 스스로 한 인터뷰에서 "장미는 의미가 너무 많아서 결국 아무 의미도 사라지는 대표적인 이름이기 때문에 사용한 제목"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윌리엄 수사修士(숀 코너리 분)는 모든 '이름'에는 고정된 의미가 없고, 추론과 해석을 통해 그 실재實在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는다. 성경에 전해지는 기독교의 '교리'도 모두 이름일 뿐, 예수의 가르침의 실재는 아니라고 믿는다. 윌리엄은 '이름의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 고유한 색깔을 잃어버린 듯하다.[사진|뉴시스]
반면, 호르헤 신부에게 '이름'이란 변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 질서다. 그에게 한번 주어진 '교리(이름)'라는 것은 그것이 곧 실재인 절대적인 것이다. 그는 '웃음'이라는 것이 이 엄격한 교리를 무너뜨릴까봐 두려워한다.

호르헤 신부는 이름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아무도 그 감옥을 탈출하지 못하도록 한다. 교리에 충실해야 한다. 성경에 예수가 웃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모든 사람은 웃어서는 안 된다. 웃음이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야만 할 악마다.

호르헤 신부만이 딱한 것은 아니다. 우리도 매일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면서 산다. 그러나 그 사랑의 실재는 아무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 속에는 남녀 간의 성적性的ㆍ육체적 열정인 '에로스(eros)', 부모와 자식 간의 혈연적이거나 자연발생적인 사랑인 '스토르게(Storge)', 친구나 동료 사이의 깊은 우정과 신뢰인 '필리아(Philia)', 무조건적이고 이타적인 박애나 희생인 '아가페(Agape)'도 있다.

하지만, 유희처럼 가볍게 즐기는 '루두스(Ludus)', 대상에 대한 소유욕인 '마니아(Mania)', 현실적인 필요인 '프라그마(Pragma)'까지 사랑의 범주에 넣으면 사랑은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종잡을 수 없게 된다.

스토킹도 사랑이고 데이트 폭력도 사랑이며 조건만남도 사랑이라고 우겨대도 할 말이 없다. 너무나 다양한 의미를 담은 장미라는 이름이 그 의미가 휘발해버리고 이름만 남았듯이 사랑이라는 이름도 그렇게 돼버렸다.

이 영화의 제목을 장미의 이름이 아니라 사랑의 이름이라고 붙여도 작품 의도는 전혀 훼손되지 않을 듯하다. '인간의 이름'이어도 마찬가지다. 인간이라는 이름도 너무나 여러 가지 의미를 담다보니 알 수 없게 되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일 서로를 향해 "그것도 인간이냐!"고 치를 떠는데 아무도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인간은 없다. 인간이라는 이름은 있는데 아무도 인간이 정말 무엇인지 그 실재를 알 수 없으니 그런 모양이다.

그뿐이겠는가. 우리가 매일 사생결단하고 싸우고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보수'니 '진보'니 '우파'니 '좌파'도 그 이름들 속에 자유, 정의, 평등, 성장, 분배, 개혁, 민주주의, 민족주의, 친북/반북, 친미/반미, 친일/반일, 친중/반중, 영남, 호남, 이승만과 박정희, 김대중과 노무현 등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너무나 많은 의미들이 제멋대로 편리한 대로 자리 잡아 그 보수든 진보든 그 실재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게 됐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 고유한 색깔을 잃어버리고 흰색이나 검은색처럼 무색이 돼버린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빈껍데기뿐인 교리라는 이름을 두고 호르헤 신부와 윌리엄이 사생결단하듯, 우리도 실재도 알 수 없는 빈껍데기 온갖 이념의 이름을 사이에 두고 사생결단한다.

모든 색깔의 빛이 합쳐지면 백색이 되고, 모든 색이 합쳐지면 검은색이 돼버린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1870년대 후반 유럽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가장 치열했던 시절, 프랑스 노동운동의 분열 과정에서, 페미니스트, 반종교주의,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무정부주의 모두들 당대 사회주의의 '스타' 마르크스의 이름을 팔고 자신들을 '마르크스주의자(Marxist)'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정작 마르크스 본인이 보기에 그 모두가 자신의 진의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꾼 것들뿐이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생각과 아무런 상관없는 숱한 주의주장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고 "(이 어지러운 가운데) 확실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마르크스인데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je ne suis pas Marxiste)"라고 자신의 사위에게 남긴 편지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마르크시즘에 마르크스가 없다. 아마 예수도 "내 이름은 크라이스트(Christ)이지만 난 크리스천(Christian)은 아니다"라고 선언할지도 모르겠고, 마호메트도 자신은 무슬림이 아니라 하고, 부처도 자신은 불교도(buddhist)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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