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죽어도 좋다”…필사즉생 최가온, ‘백절불굴’의 심장으로 전 세계 울렸다

권준영 2026. 3. 2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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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하늘을 가르던 화려한 도약은 찰나의 실수로 비극적인 추락이 됐다.

최가온의 질주는 올림픽에 머물지 않았다.

최가온이 설상 위에 새긴 궤적은 단순한 승전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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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의 공포를 평정심으로 맞바꾼 전사의 투혼
90.25점,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꾼 ‘천재의 증명’
美 CNN도 놀란 17세 3개월의 기적…부러진 뼈보다 단단했던 프로 정신
척추 부상 딛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스노보드 여제’의 위대한 기록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하늘을 가르던 화려한 도약은 찰나의 실수로 비극적인 추락이 됐다. 1차시기 두 번째 점프, 중심을 잃은 몸은 가차 없이 눈 바닥을 들이받았다. 중력을 이기지 못한 충격에 그녀는 한동안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중계 화면에 뜬 ‘DNS’(Did Not Start)라는 세 글자는 사실상 사형 선고와 같았다. 모두가 그녀의 올림픽이 비극으로 끝났음을 직감하며 고개를 돌리던 그 순간, 기적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금메달리스트 최가온(세화여고)이 지난달 14일 이탈리아 밀라노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밀라노=뉴시스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이 차가운 눈물인지, 뜨거운 땀방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최가온(18·세화여고)은 떨리는 손으로 보드를 다시 고쳐 잡았다. 육신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정신은 그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있었다. 벼랑 끝에서 벼려낸 ‘사즉생(死卽生)’의 비상이었다. 전 세계를 전율케 한 한국 설상 종목의 새 역사. 그 중심에는 뼈가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슬로프를 포기하지 않았던 ‘천재 소녀’ 최가온이 있었다.

최가온은 27일 미국 CNN과 인터뷰를 통해 “슬로프로 다시 올라가는 길 내내 울었다. 하지만 이 짧은 순간을 포기한다면 평생을 후회라는 감옥에 갇혀 살 것 같았다”면서 “‘설령 여기서 죽더라도, 내 마지막 시도는 하늘에 맡기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당시 심경을 상세히 밝혔다. 그녀의 고백은 단순한 승부욕이 아닌, 죽음을 각오한 전사의 서사였다. 기권 표시를 지우고 다시 출발선에 선 18세 소녀의 눈빛에는 공포 대신 서늘한 평정심이 서려 있었다.

최가온의 금메달이 더욱 기적 같은 이유는 그녀의 ‘부상 잔혹사’ 때문이다. 2024년 척추 골절로 등 속에 6개의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견뎌냈던 그녀는 이번 올림픽 현장에서도 추락의 여파로 바닥뼈 3곳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부상 직후에는 스노보드가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절망적이었죠. 하지만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선 결국 스노보드를 타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국 스노보드 국가대표 최가온(세화여고)이 지난달 12일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받아 금메달을 획득한 뒤 기뻐하고 있다. 리비뇨=뉴스1
통증을 억누른 채 나선 마지막 3차시기. 그녀는 고난도 기술 대신 900도와 720도 회전 등 완벽한 실행력을 앞세운 전략적 승부수를 던졌고, 90.25점이라는 압도적인 점수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최가온의 질주는 올림픽에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금메달에 이어 2025~2026 시즌 하프파이프 부문 시즌 챔피언까지 확정 지으며, 한국인 최초로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크리스털 글로브’를 거머쥐었다.

부러진 뼈는 붙으면서 더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최가온이 설상 위에 새긴 궤적은 단순한 승전보가 아니다. 그것은 절망의 끝에서도 다시 일어설 용기만 있다면, 인간은 반드시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강철의 기록’이다. 18세 소녀의 허리에 박힌 6개의 철심은 이제 고통의 흉터가 아닌,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는 훈장이 됐다.

권준영 기자 kjykj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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