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130달러까지 가나…민간 차량도 5부제?

정용진 2026. 3. 2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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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120달러 목전…정부, 위기단계 상향 검토
공공기관 이어 민간까지 5부제 강화 가능성
유류세 추가 인하 시사…생활 물가 파장 불가피
시민 불편 최소화 위한 교통·에너지 보완 과제
[지데일리] 국제 유가가 다시 ‘위기선’을 넘보고 있다. 배럴당 120달러가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퍼지자 정부가 민간 차량까지 포함한 전면 5부제 시행을 공식 거론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35년 만에 ‘강제 부제’가 재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향해 치솟자 정부가 민간 차량에도 5부제 의무화를 검토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는 유가가 130달러에 이를 경우 위기 대응 단계를 ‘경계’로 격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 공공기관은 5부제가 의무 시행 중이며, 유류세 추가 인하도 검토된다. ⓒ픽사베이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9일 한 지상파 방송에 출연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 수준으로 오르면 위기 대응 단계를 3단계(경계)로 높여야 할 상황이 될 수 있다”며 “그 경우 민간 부문에도 차량 5부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의 위기가 단순한 유가 급등이 아니라 경제 전반의 긴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사후가 아닌 선제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제유가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배럴당 약 105달러 선에서 거래 중이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길어지고, 중동 원유 수송선이 잇따라 차질을 빚으면서 공급 불안 심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경우 유가가 13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정부는 지난 18일 이미 위기 경보를 2단계(주의)로 상향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고유가 대응 긴급회의에서 공공기관 차량 5부제 의무화를 지시했고, 이에 따라 25일부터 전기·수소차를 제외한 공공부문 차량이 번호 끝자리에 따라 운행을 제한하고 있다. 경차나 하이브리드차 등 기존 예외 대상까지 포함됐다. 

그러나 민간 부문은 아직 자율 참여 수준에 머물러 있어 이번 정부 발표는 사실상 ‘전면적 의무화’로의 전환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차량 5부제는 한국 사회에 낯설지 않은 제도다. 그 뿌리는 1970년대 에너지 위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1·2차 석유 파동 속에서 공휴일 차량 운행 금지와 고급 차량 제한 조치를 시행했고, 1976년 국내 첫 차량 요일제(5부제)를 시도했다. 다만 적용 대상은 공공기관에 한정됐다. 

이후 1991년 걸프전으로 국제 유가가 폭등하자 정부는 1월 18일부터 두 달간 전국 단위 ‘10부제’를 전면 강제 시행했다. 차량 번호판 끝자리와 해당 요일이 같으면 운행을 금지하고, 위반 시 1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국민 불편이 컸지만, 위기 대응의 하나로 당시에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이후에도 유가 급등기에 정부는 차량 부제를 반복적으로 꺼내 들었다. 2006년 고유가 국면에서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5부제가 다시 의무화되어 현재까지 20년째 유지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기간에는 한시 중단됐지만, 올해 들어 준수 여부가 재점검되고 있다.

이번 고유가 사태는 단순 에너지 문제를 넘어 경제 전반의 부담을 압박하고 있다. 주유비 상승은 물류 비용을 밀어올리고, 이는 곧 식품·생활 물가 인상으로 번진다. 서민들에게는 장바구니 물가와 난방비, 대중교통비까지 치명적인 부담으로 다가온다. 

구 부총리는 이와 관련해 “유류세 인하 여력을 남겨둔 것은 이런 급격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며 “필요하면 추가 인하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미 27일부터 휘발유 유류세 인하 폭을 7%에서 15%로, 경유는 15%에서 25%로 확대했다. 법정 한도인 37%까지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러나 유류세 인하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반응도 있다. 전문가들은 “세금 인하 효과는 단기적 완충 장치일 뿐, 에너지 수급 불안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차량 부제 확대 같은 수요 억제 정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민 불편과 생산성 저하다. 자가용 출근이 일상화된 직장인, 배송·운수업 종사자, 자영업자 등에게는 직접적인 생계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정부가 민간 5부제를 시행하더라도 대중교통 인프라를 즉각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출퇴근 시간대 증편, 환승할인 강화, 저소득층 교통 지원금 같은 실질 대책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류세 인하와 함께 에너지 다변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단기 대응은 가격 안정에 초점을 맞추되, 중장기적으로는 전기·수소차 인프라와 대체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 정부가 맞닥뜨린 것은 단순한 ‘유가 폭등’이 아니라 ‘에너지 체제의 변곡점’이라는 시각도 있다. 35년 전 걸프전 당시 10부제가 국민들의 불편 속에서도 위기 극복의 상징으로 남았듯, 이번 사태도 국가적 에너지 위기관리 역량을 시험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기 시 정부의 신뢰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강제'가 아닌 '설득된 협력'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과 대체수단이 마련될 때 비로소 5부제는 위기극복이 아닌 ‘공정한 연대’의 조치로 받아들여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