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권 상실 선고 제도, '패륜 상속' 막을까 [조웅규의 상속인사이트]
유류분 넘어 상속인 지위 자체 제거 가능
추상적 기준에 해석 논란·분쟁 증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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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12년 만에 나타난 친부가 사망한 자녀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천안함 피격으로 아들을 잃은 군인의 친모는 27년간 연락 한 번 없다가 사망보험금과 연금을 가져갔다. 가수 구하라 씨가 세상을 떠나자, 수십 년간 모습을 감췄던 친모가 홀연히 나타나 상속재산을 요구했다. 법은 침묵했다. 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속권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이 오래도록 용인되어 온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우리 민법은 상속인 자격을 피상속인의 의사가 아닌 법률이 정한 친족관계에 따라 결정하는 법정상속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직계존속·형제자매·4촌 이내의 방계혈족 및 배우자가 순위에 따라 상속인이 되며, 선순위 상속인이 존재하면 그가 상속권을 갖는다. 형식적 친족 지위가 실질적 돌봄이나 관계의 유무보다 앞서는 구조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 집을 나간 자녀 A가 10여 년 만에 돌아와 병약한 부모를 자신이 관련된 요양병원에 강제 입원시키고, 15년간 간병해 온 부모의 동생 B를 포함해 외부인 면회를 일절 차단했다. 부모는 동생을 만나지 못한 채 6개월 만에 숨을 거뒀다. 100억 원대의 상가와 수십억 원의 금융자산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현행법상 답은 A다.
상속권 상실 선고, 형식 대신 관계를 묻다
이 같은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국회는 민법을 개정해 상속권 상실 선고 제도를 도입했다. 2024년 4월 헌법재판소가 유류분 상실사유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며 입법 정비를 촉구한 것이 계기가 됐다. 국회는 유류분 상실에 그치지 않고 상속권 자체를 박탈하는 한층 강력한 제도를 설계했다. 유류분만 박탈하는 경우 상속인 지위는 유지되어 다른 상속상의 권리를 행사할 여지가 남지만, 상속권 상실 선고는 유류분을 포함한 상속인으로서의 지위 자체를 제거한다는 점에서 훨씬 강한 효과를 갖는다.
개정 민법이 정한 상속권 상실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 그리고 피상속인이나 그 배우자·직계혈족에게 중대한 범죄행위를 하거나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다. 위 사례에서 A의 행위는 두 사유 모두에 해당할 수 있다. 노부모를 통제하에 두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행위는 부양의무의 중대한 위반이자, 심히 부당한 대우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절차는 이렇게 진행된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공정증서로 유언을 남긴 경우, 사망 후 유언집행자가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을 청구한다. 법원은 상실사유의 경위와 정도,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관계, 상속재산의 규모와 형성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실 여부를 결정하며, 선고가 확정되면 상속 개시 시점으로 소급하여 효력이 생긴다. 이로써 상속권과 유류분 청구권이 동시에 소멸한다.
피상속인이 유언을 남기지 못한 채 사망한 경우에도 구제 수단은 존재한다. 공동상속인은 상속권 상실사유를 안 날부터 6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위 사례처럼 유일한 상속인에게 상실사유가 있을 때는 차순위 상속인이 청구권을 갖는다. 1순위 A가 상속권을 잃으면 2순위 직계존속이 없는 이상 3순위 형제자매인 B가 상속인이 되는 구조이므로, B는 A의 상속권 상실을 직접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제도의 실효성을 둘러싼 과제도 적지 않다. '부양의무의 중대한 위반', '중대한 범죄행위', '심히 부당한 대우'라는 상실사유의 문언은 상당히 추상적이다. 자녀가 수년간 연락을 끊었다는 사정만으로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는지, 부모에게 반복적으로 폭언을 한 행위가 '심히 부당한 대우'에 해당하는지는 현 시점에서 단언하기 어렵다. 기준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면 법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반대로 너무 넓게 적용하면 상속 분쟁을 오히려 부추길 수 있다. 앞으로 축적될 판결과 실무 운용을 통해 기준이 점차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생전 준비가 진짜 상속설계
상속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번 개정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새 제도는 나쁜 상속인을 걸러내는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형식적 친족관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가족의 현실을 법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속권 상실은 피상속인 사후 법원의 판단에 의해 비로소 결정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생전에 공정증서로 유언을 작성하고, 유언집행자를 미리 지정하며, 신탁 등 상속설계 수단을 활용하지 않으면, 새 제도가 도입되었더라도 남겨진 가족은 긴 소송과 감정적 소모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할 수 있다.
좋은 상속제도란 나쁜 상속인을 배제하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피상속인의 진정한 의사가 분쟁 없이 실현되도록 생전에 준비하게 만드는 데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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