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디지털 교과서는 폐기하고 학력평가 해설지는 디지털로

발단은 지난 24일 치러진 전국연합학력평가였다. 올해부터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에게 종이 해설지를 배포하지 않기로 했다. 정답지만 나눠주고 상세한 풀이가 담긴 해설지는 교육청 홈페이지나 EBS에서 PDF 파일로 직접 찾아보라는 식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예산 절감과 행정 편의, 그리고 이른바 '디지털 전환'이다.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은 따로 있다. 불과 얼마 전 교육부는 야심 차게 추진하던 AI 디지털 교과서(AIDT) 정책을 사실상 폐기했다. 디지털 기기 과의존과 문해력 저하라는 현장의 목소리를 뒤늦게 수용한 결과다. 스웨덴 등 교육 선진국들이 "화면 중심 학습이 문해력을 망쳤다"며 다시 종이책으로 'U턴'하는 국제적 흐름과 국내 교사 80% 이상 반대 여론이 결정적이었다.
이 지점에서 교육 당국의 논리는 궁색해진다. 디지털 교과서가 학생들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려 '교육자료' 수준으로 격하할 만큼 부적절하다면 시험 직후 가장 집중력이 필요한 오답 노트 작성과 해설지 분석을 디지털 기기로 하라는 것은 대체 무슨 논리인가.
해설지 미배포 취재 과정서 서울시교육청 장학사에게 "종이 해설지를 손으로 넘기며 직접 표시하는 것이 학습 효과가 더 크지 않냐"는 물음에 돌아온 것은 침묵이었다. 디지털 교육 효과가 떨어진다며 교과서는 종이로 돌아가면서, 정작 학습 핵심인 해설지는 디지털 세대니 화면으로 보라는 대응은 '이현령비현령(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행정이다.
결국 본질은 '돈'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몇 번이나 강조한 종이 낭비는 다시 말하면 비용 절감이다.
교육은 효율성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종이 해설지 한 장을 아껴 얻는 예산 절감 효과보다 화면 속 PDF 파일을 헤매며 학습 의욕을 잃는 학생들의 손실이 훨씬 크다는 점을 교육 당국은 직시해야 한다. 디지털을 앞세운 편의 행정 뒤에 숨어 학생들의 '학습권'을 희생양 삼는 일은 멈춰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마저 상실한 지금 교육청이 보호해야 할 것은 종이가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 환경이다.
박동준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