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Z세대는 왜 함께 뜨개질을 할까

스마트폰 대신 형형색색의 실타래가 테이블을 채운다. 딱딱한 화면을 쓸어 넘기던 손가락은 이제 보드라운 실을 매만진다. 헤드셋을 끼고 홀로 앉아 한 코 한 코 이어가는 사람부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뜨개를 하는 사람들까지. 평일 오후인데도 젊은 이용객으로 가득 찬 뜨개 카페의 공기는 바늘과 실이 자아내는 온기처럼 포근하고 아늑했다.
뜨개질에 빠진 Z세대가 늘고 있다. 뜨개는 실과 바늘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 전반을 뜻한다. 한때 겨울철 부업이나 생활을 위한 노동으로 여겨졌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정성’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고된 작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중시하는 기성세대에게 뜨개질은 비효율적인 ‘어르신들의 취미’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2030 세대를 중심으로 뜨개질이 새로운 취미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뜨개 카페 이용 건수는 최근 1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했고,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20·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SNS에는 ‘뜨개스타그램’, ‘니팅카페’ 등 관련 게시물이 100만 건 이상 쌓였고, 유튜브에서는 기초 뜨개부터 의류 제작까지 다양한 콘텐츠가 수만에서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집에서 혼자 시작한 취미는 카페와 모임으로 이어지고,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확장 중이다.
“손을 움직였더니 복잡한 머릿속이 맑아졌어요”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뜨개 전문점 ‘바늘이야기’ 카페에서 만난 20대 노효진씨는 직접 뜬 빨간색 니트 가디건을 입고 있었다. 뜨개질이 취미인 친구를 만나 함께 실을 고르고 도안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노씨는 “코로나 시기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다가 시작했다”며 뜨개질의 가장 큰 매력으로 ‘생각을 비울 수 있는 점’을 꼽았다. “일하다 보면 고민이 많아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뜨개질을 하며 손을 움직이면 생각이 비워지고 머릿속이 한결 맑아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노씨의 경험처럼 뜨개질은 반복적인 손동작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생각을 덜어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책 <몰입의 즐거움>을 저술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설명한 ‘몰입(Flow)’ 이론에 따르면, 하나의 활동에 깊이 빠져드는 상태에서는 잡념이 줄고 심리적 긴장도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에게 뜨개질 같은 아날로그적 과정은 오히려 ‘쉼’과 ‘몰입’으로 작용한다.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 뜨개 카페 ‘메리노’에서 만난 20대 박혜연씨도 “뜨개질은 하다가 틀리면 전부 풀고 다시 떠야 한다”며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고 인내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단순한 취미 유행을 넘어선 현상으로 해석한다. 박혜경 부경대학교 교수는 “젊은 세대에게 뜨개질 같은 아날로그 취미가 유행하는 것은 디지털 환경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라며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뇌를 쉬게 하고 싶어하는 ‘디지털 디톡스’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Z세대 특유의 ‘따로 또 같이’ 소비 방식이다. 뜨개질을 하며 영화를 관람하는 ‘뜨개 상영회’, 독서와 결합한 ‘리팅(Reading+Knitting)’ 등 이종 산업과의 결합도 활발하다. 이들은 개인의 취향과 자율성을 중시하면서도, 동시에 느슨한 연결 속에서 소속감을 경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박 교수는 “기성세대는 농구·축구처럼 팀 단위로 호흡을 맞추는 스포츠를 취미로 선호했다면, 현재 젊은 세대는 함께 모여서 ‘각자’ 뛰는 러닝크루에 소속되는 운동을 선호한다”면서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취미지만, 뜨개 카페나 모임 공간에 모여 각자의 작업을 이어가며 느슨하게 교류하는 방식이 개인주의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소속감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내가 직접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아이템’

뜨개질의 매력은 과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결과물에서 오는 만족감도 크다. ‘바늘이야기’에서 만난 20대 조은진씨는 “도안을 보면서 색이나 디자인을 내 취향대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라며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만든 회색 후드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기성 제품보다 몸에 잘 맞고 짜임새도 정교했다. 조씨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치는 요즘, 오히려 뜨개질이 더 도파민 넘치고 재미있는 취미”라고 표현했다.
‘메리노’에서 만난 20대 조희진씨 역시 ‘직접 만드는 경험’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처음 뜨개질을 시작했을 때 단순한 실뭉치가 내 손을 거쳐 그럴싸한 결과물이 되는 게 정말 신기했다”며 “오디오북을 들으며 귀로는 책을 읽고 손으로 실을 뜨니까 효율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뜨개질은 디지털 콘텐츠와 결합하며 저변을 넓히고 있다. 유튜브를 통한 접근성 확대가 큰 역할을 했다. 기초부터 의류 제작까지 단계별 콘텐츠가 제공되면서 초보자도 쉽게 입문할 수 있다. 다이소에서 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점 역시 진입장벽을 낮춘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뜨개질에 입문한 중학생 박세은양(15·가명)은 “유튜브에서 모자나 목도리 같은 패션 소품을 뜨는 영상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힙하게 느껴진다”며 “다이소에 들러 신상 실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기성세대는 자라면서 공기, 고무줄놀이 등 아날로그 감성의 놀이를 하면서 자랐지만 Z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났다”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경험,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아날로그 취미가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글·사진 |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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