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가게 주인 손에 들어온 페라리 설계도…수십조 시장 뒤집혔다 [Book]
규정 새로 해석해 신차 만들어
상식 깬 혁신으로 경쟁자 압도
계속 바뀌는 ‘룰의 허점’ 알아야
트랙 위 비장의 무기 손에 넣어
![2026 F1 호주 그랑프리에서 질주하는 F1 차량 [EPA=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9/mk/20260329093009294sdlm.png)
두 번째 랩타임은 1분25초06, 그다음은 1분24초04…. 세나는 랩타임을 ‘깎아내는’ 중이었다. 세나는 차량 성능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내고 있었다.
가속페달을 부드럽게 밟아 코너를 도는 다른 드라이버와 달리 세나는 차량의 접지력을 극한까지 테스트한 뒤 운전대를 잡아당기듯 움켜쥐면서 페달을 세게 밟았다 뗐다를 반복하는 새 방식을 구사했다. 세나는 2위를 3초 앞지르며 우승했다. F1에서 3초는 ‘영겁’에 가까운 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스포츠인 F1을 조망한 신간 ‘F1 더 포뮬러’가 번역 출간됐다. 월스트리트 베테랑 기자들이 쓴 이 책은, 첫 번째 챕터만 읽어도 다음 챕터가 궁금해 미칠 지경일 만큼 서킷 위의 피눈물과 굉음, 편법과 비리가 들끓는다. 속도를 향한 맹목까지도 예술로 만들어낸 ‘속도 광인’의 스포츠인 F1은 어떻게 매년 20조원의 가치를 창출하는, 누적 시청자 15억명의 스포츠로 도약했을까.
2022년 바레인에 메르세데스팀이 등장하자 경쟁팀의 시선은 그들의 차고에 고정됐다. 감독 토토볼프와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이 의기투합한 메르세데스팀은 2013년 이후 그랑프리 우승만 82회였다. 책에 따르면 그들은 F1 규정집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F1 설계의 상식을 벗어난 모델, 규정을 사실상 자의적이라 할 정도로 새롭게 해석한 신차로 매년 경쟁자를 압도했다.
신차 W13이 지난 시즌의 전작 W12에 이어 또 어떤 ‘명작’일지가 관심사였다. W13은 W12에서 남아 있는 건 운전자의 핸들뿐일 정도로 새로웠다. 하지만 해밀턴의 W13이 보여준 첫 테스트 랩타임은 1분40초60이었다. 1분30초의 벽은커녕 1분40초의 벽도 쉽지 않았다. 랩당 0.5초가 뒤처지면 레이스가 끝났을 땐 30분으로 벌어진다. 시즌 결과는 보나 마나였다.
F1의 본질은 차량을 지면 방향으로 내리누르는 힘과 딱딱한 서스펜션이 이 힘을 반대 방향으로 밀어올리는 복원력의 싸움이다. 힘의 균형이 어긋나면서 차체가 출렁거렸다고 책은 전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놀랄 기술 시뮬레이션을 거쳤어도 실제 서킷의 초미세한 차이를 간파하진 못한 것. 그해 메르세데스팀은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했고, 이후 두 시즌 동안 손실액이 7억달러였다고 한다.
포뮬러(formula)는 공식, 계산식, 틀을 뜻하는 단어로 F1은 빼곡한 규정집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겨루는 스포츠다. 모든 팀은 규정집의 허점을 파고든다. 허점을 찾아내 ‘비장의 무기’를 만들면 부와 명예를 손에 쥔다. 수십만~수백억 달러 단위가 아니다. 그 뒤에 ‘0’이 한두 개 더 붙는 세계다.
그러나 ‘구멍’을 발견했다고 해서 방심할 수도 없다. 요령을 알아채면 경쟁팀은 망설임 없이 경쟁팀을 모방하며, 규정집도 수시로 바뀌니 영원한 건 없다. 알아채지도 모방하지도 못하는 팀은 상대 차량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닌다. “F1 무대의 성패는 규칙을 잘 이해하고 허점을 찾아내어 액셀을 끝까지 밟은 채 그 사이를 통과하는 데 있다.”

2007년 F1 최대 이슈였던 ‘스파이게이트’도 주목해야 한다. 고객이 들고 온 780쪽 분량의 서류 뭉치를 미심쩍은 눈초리로 본 복사가게 주인은, 그 서류에서 페라리를 상징하는 프랜싱 호스(prancing horse·페라리 로고인 날뛰는 말)를 슬쩍 보았다. 하필 복사가게 주인이 F1 페라리팀의 골수팬이었고 서류에는 페라리 신작 설계 사양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 사실을 페라리팀에 메일로 신고한다. 이로써 그는 F1의 가장 악명 높은 스캔들의 고발자로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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