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는 실감
그 밤, 나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친구의 무대를 보기 위해 소극장에 찾아갔다. 극장에 모인 관객은 열 명 남짓이었다. 친구의 순서를 기다리는 중 한 외국인 남성이 무대에 올랐다. 그는 영어로 코미디를 했는데, 국가와 도시, 이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는 동안 몇 번이나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는 ‘rape’였다. 중간중간 어딘가에서 작은 실소가 들렸지만 극장에는 전반적으로 서늘한 공기가 흘렀다. 그 남성은 ‘훼손하다’, ‘약탈하다’는 뜻으로 그 단어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굳이 ‘rape’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은 부적절했다.
그보다 더 내게 충격을 준 것은 통역 중 해맑은 얼굴로 “강간? 강간?”이라고 되묻던 코미디언 A의 모습이었다. ‘저 말이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니. 대체 강간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관객 중에 성폭행 피해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안 드는 건가?’ 충격과 불쾌감에 머리가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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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간(rape)’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던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무대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이미지 출처: geralt via pixabay) |
나는 주위의 여성들을 흘긋거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모두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만일 저들 중 정말 성폭행 피해생존자가 있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 소름이 돋고 가슴이 저렸다. 내게 성폭행 피해 경험을 얘기해준 친구들의 얼굴도 스쳐 갔다. 당장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친구의 공연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공연이 모두 끝난 뒤 친구는 A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내게 인사를 건네는 A에게 형식적인 대답을 하고 먼저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근처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채 가시지 않은 충격과 직접 모욕을 당한 듯한 불쾌감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돌이켜볼수록 화가 났다. 웃으며 “강간? 강간?”이라고 되풀이하던 A의 모습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진짜 공개적으로 강간을 농담으로 쓰는 사회에 살고 있었다니. 인류애가 다 사라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후회도 되었다. 끝나고 인사를 나눌 때 왜 A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방관한 것이 동조처럼 느껴졌다.
공연장을 정리하고 나온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순서를 준비하느라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몰랐다며, 자신이 동료로서 A에게 의견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는 친구에게, 의견을 전할 때 같이 공연을 본 내가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꼈다는 점도 함께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강간 농담’과 ‘강간 문화’
내가 ‘강간 농담’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미국의 사회평론가 록산 게이(Roxane Gay)의 저서 『나쁜 페미니스트』를 통해서였다. 저자는 “우리는 어쩌면 성폭행의 공포에 면역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그리고 강간이라는 말을 농담으로 사용하는 예로 “나 방금 강간 샤워했어.”(I just took a rape shower 강간 피해자처럼 부끄럽거나 괴로운 일이 일어난 후에 그 기억을 잊고 싶어 급하게 샤워했다는 의미).”, “내가 연봉 인상을 요구했더니 사장이 내 말을 완전 강간해 버렸어.”(My boss totally just raped me over my request for a raise 묵살해 버렸다는 표현).”등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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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산 게이(Roxane Gay)가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문제, 그리고 정치에 대한 비평과 에세이를 엮어낸 책 『나쁜 페미니스트』(노지양 옮김, 문학동네, 2022) 표지. 록산 게이는 “우리는 어쩌면 성폭행의 공포에 면역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
강간 농담은 ‘강간 문화’의 일부이다. 미국의 비평가이자 여권운동가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 소개한 정의에 따르면, “강간 문화란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말한다. “일부 젊은 남성들이 몸담은 하위문화로서 여성을 조롱하고 희롱하는 특징이 강한 문화를 묘사하는 표현처럼” 쓰이기도 한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은 강간 문화에 대해 ‘한국도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이후 디시인사이드의 대학 갤러리에서 ‘전쟁 나면 OO학과의 ××를 강간하고 싶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이 같은 게시판 문화가 대학 내 익명 게시판과 단체 채팅방으로 이어졌다. 강간 문화는 폭력 자체를 ‘섹시한 것’으로 취급하고, 성폭력은 ‘섹스라는 모험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작은 실수’ 정도로 사소화한다.
반면, 많은 경우 여성들은 강간을 당할까 두려워하며 조심하며 자란다. 나 역시 살면서 ‘만약 강간 위험에 처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수시로 머릿속에 그려보았고, 그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친구들과 대화한 적도 많았다. “따르는 척하다가 급소를 공격해야지”, “주온에 나오는 귀신처럼 몸을 까뒤집고 네 발로 기어갈 거야. 그럼 안 건드릴걸?”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지만 진담이었다. 그 정도로 강간은 체화된 위협이었고, 평소 나와 친구들이 머무는 장소와 시간을 제약했다. 어느 밤, 모르는 남성이 내게 접근해 위협을 느낀 일도 몇 번 있었다.
강간에 대한 위협은 온라인에도 존재한다. 2011년 말, 영국의 칼럼니스트 로리 페니(Laurie Penny)는 온라인에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여성을 향해 남성 사용자들이 강간 협박을 하는 현상을 두고 “(여성의) 의견이란 인터넷의 미니스커트인 모양이다”라고 표현했다. 나 역시 이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페미니즘 논조로 글을 쓰면 페미니즘을 배척하는 이들에게 강간 협박을 비롯한 온라인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다. 많은 여성들이 이런 폭력이 두려워 스스로를 제약한다.
이것이 여성의 ‘보통의 삶’이 되는 것에 대해 남성들은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리베카 솔닛의 저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김명남 옮김, 창비, 2015)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지난여름, 누군가가 내게 편지를 보내 대학 수업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강사는 학생들에게 스스로를 강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어떤 조치들을 취하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젊은 여학생들은 자신들이 늘 교묘한 방식으로 경계하고, 세상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사전에 조심하며, 기본적으로 아주 자주 강간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했다.(내게 글을 쓴 남자가 덧붙이기를, 남학생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세상을 가르는 간극이 일순간이나마 갑자기 가시화된 순간이었다.”
드러내어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뿐, ‘강간’이라는 단어로 많은 남성과 미디어, 대중문화가 은연중 여성을 통제하고 기존의 성별 권력구조를 강화한다. 페미니스트 작가 이라영은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동녘, 2018)에서, 언론이 나서서 강간을 부추기고 공유하는 상황을 비판하며 말했다. “모든 남자가 강간범은 아니어도 모든 여자는 강간을 조심하도록 길러진다. 그것이 바로 강간 문화다.”
“당신의 강간 유머는 전혀 웃기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강간’이라는 단어 자체가 코미디에서 무조건 금기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채식주의자,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가진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은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특정 소재를 유독 조심히 대하는 것, 유독 겸허히 대하는 게 더 비윤리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온정적 태도야말로 그 사안을, 관련자를 더 소외시키는 게 아닐까”라는 그의 질문을 깊이 생각해볼 만하다.
그럼, ‘적절한 강간 농담’이라는 것도 있을까? 코미디언이자 팟캐스터 금개는 저서 『적정 코미디 기술』에서 작가이자 코미디언 안담의 강간 농담 성공 사례를 소개한다. 안담은 〈코미디캠프 2023: 관찰〉 무대에서 자신이 꼭 성공시키고 싶은 농담의 구조를 시연해 보였다.
그는 열여섯에 당한 강간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현재의 트라우마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코미디로 엮어낸다. 이 농담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당사자성을 띠기 때문이며, 피해생존자를 ‘숨어야 할 존재’로, 성폭력 피해를 ‘부끄러운 일’로 묶어두는 ‘피해자다움’을 벗어던지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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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간’이라는 단어 자체가 코미디에서 금기시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코미디언이자 팟캐스터인 금개의 저서 『적정 코미디 기술 – 우리만의 농담을 개발하자』(오월의봄, 2025)에서는 코미디언 안담의 강간 농담 사례를 예시로 소개한다. |
좋은 농담과 나쁜 농담, 성공한 코미디와 실패한 코미디를 갈음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코미디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성폭력을 유머로 사용할 때, ‘농담이니까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이 폭력의 문화적 허용 범위를 넓히는 데 일조하기 쉽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의 코미디언 다니엘 토시(Daniel Tosh)는 자신의 쇼 〈Tosh. 0〉에서 시청자들에게 여성의 아랫배를 살짝 만져 보라고 권했다. 그 자체도 타인에게 성추행을 권유하는 부적절한 일이지만, 더 문제는 그의 팬들이 그것을 실행에 옮긴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토시는 자신의 쇼에서 강간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록산 게이는 그가 구사하는 농담의 문제점을 이렇게 꼬집었다. “여성의 아랫배를 살짝 만지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고 싶어 할 정도로 그를 따른다면, 그중에 다니엘 토시가 강간이 웃기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로 여성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는가?”
토시가 할리우드에 있는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에서 강간 농담을 구사했을 때, 객석의 한 젊은 여성이 일어나 이렇게 소리친 일이 있다. “당신의 그 강간 유머는 전혀 웃기지 않아요.” 당시 쇼를 보던 수많은 사람 중 그의 농담에 의견을 표현한 사람은 단 한 명, 그 여성뿐이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해당 여성은 토시가 내뱉는 더 심한 강간 농담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발언하지 않음으로써 쇼의 모든 관객이 그 농담을 묵인하고 넘어갔다면 어땠을까? 훨씬 많은 이들에게 강간 농담은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문제없는 일’로 여겨졌을 것이고, 그들 중 일부는 ‘강간’이라는 행위나 단어를 전보다 폭력적이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을 수 있다.
코미디 공연을 했던 내 친구는 후에 A에게 우리의 의견을 전했다. A는 당황한 듯 ‘알겠다’, ‘주의하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만일 또 다시 납득하기 어려운 강간 농담을 접한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상대에게 물을 것이다. 무엇을 위해 ‘강간’이라는 말을 쓰는지,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처를 주고 착취적인 문화를 강화할 수 있는 말이라면 왜 굳이 그 단어를 선택하는지.
실제로는 어설픈 한마디만 겨우 꺼낼지도 모르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순간 우리는 함께 성폭력에 노출된 것이며, 그건 누구에게도 당연한 일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단순한 조롱거리로 삼는 태도는,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만이 아니라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다치게 한다는 것도.
[필자 소개] 민바람. 자신의 경험으로 사회 구조를 비추는 글을 쓴다. 퀴어, 여성, 신경다양성, 빈곤, 지역 문제의 교차성 탐구에 관심이 많다. 『나는 ADHD 노동자입니다』(2025년 재출간), 『낱말의 장면들』(2023) 등을 출간 후, 퀴어 소설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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