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관리자 책임은 어디까지? [이인혁의 판례 읽기]

한경비즈니스외고 2026. 3. 2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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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지시 없어도, 위험 방치하면 책임”

[법알못 판례 읽기]

건설 공사 현장. 사진=뉴스1

고위험 작업이 많은 건설 현장에선 근로자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업주와 관리자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지가 법적 쟁점이 된다.

근로자 개인 부주의와 안전 관리 시스템의 미비 등이 중첩돼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소장이 직접 위험한 작업을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특정 작업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그대로 방치했다면 지시 여부와 관계없이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했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다. 건설업계는 사업장별 안전관리 매뉴얼 재점검에 나섰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추락사 발생

대법원 제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국내 한 건설회사 현장소장 A 씨가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상고심에서 원심판결 중 무죄로 판단한 부분을 지난 2월 12일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은 202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 씨가 소장을 맡은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러시아 국적의 근로자 B 씨가 작업 도중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B 씨는 유로폼(거푸집) 해체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B 씨는 ‘갱 폼’(작업용 발판과 거푸집을 일체형으로 만들어 외벽에 매단 철골 구조물) 위에 올라갔다가 갱 폼과 함께 30m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사고 당시 이 갱 폼은 한 개 층 더 위로 인상하려는 작업이 중단된 상태였다.

고정철물인 볼트의 2단부터 8단까지 해체해 놓고 타워크레인 등 인양 장비에 매달아 놓지 않은 상황에서 옆에 설치된 다른 갱 폼과 부딪힘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즉 갱 폼의 추락 위험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경우 사업주는 갱 폼을 인양 장비에 매단 후 지지 또는 고정철물을 해체해 거푸집의 낙하 위험을 방지해야 했다.

또한 해당 장소에 관계자가 아닌 사람의 출입을 금지해야 했다. 부득이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면 안전한 작업 발판을 설치해야 하고 갱 폼의 지지 또는 고정철물의 이상 유무를 수시로 점검해야 했다.

그러나 피고인인 A 씨는 이런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인 대전지방법원은 2021년 11월 A 씨에 대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인 대전지법 제4형사부는 A 씨의 형량을 벌금 500만원으로 감형했다. 2개 혐의 모두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1심과 2심 판결이 이렇게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소장 손들어준 항소심

2심 판결을 이해하기 위해선 사고 전날 상황까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이 공사 현장에선 월간 혹은 주간으로 작성된 공정표에 따라 구체적 업무 범위가 정해졌다.

위험 작업이 예정된 경우엔 A 씨는 전날 오후 원청업체의 C 차장한테 위험작업계획서를 보고하고 이에 대한 승인·수정 지시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작업 당일 조회 시간에 근로자들에게 그날의 공사계획이 전달되는 구조다.

추락사고가 발생한 당일 작업계획엔 갱 폼을 해체해 인상하는 작업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전날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늦은 시간(오후 6시)에 종료됐다. 콘크리트 양생 시간 확보를 위해 갱 폼 해체 작업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C 차장은 A 씨에게 갱 폼 해체 작업을 나흘 미룰 것을 지시했다. 지시 시점은 추락사고가 발생하기 전날 오후다. A 씨는 이 지시를 듣자마자 해체팀장에게 연락해 “다음 날 계획된 갱 폼 해체 작업을 취소하라”라고 전달했다.

그런데 추락사고 발생 전에 누군가가 해당 갱 폼의 나머지 고정볼트를 해체했다. A 씨를 비롯해 현장 관계자들은 해당 갱 폼의 2단과 8단 볼트가 해제된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에 의해 1단과 9단 볼트마저 풀어져 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거푸집을 해체하기 위해 ‘피고인의 지시와 달리’ 옥상 외부로 나간 뒤 이 갱 폼 위에 올라갔다가 추락해 숨지게 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유는 A 씨가 주의의무를 게을리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고정볼트를 해제했기 때문이란 게 항소심 법원의 판단이다.

2심 재판부는 “업무상의 과실은 업무와 관련된 일반적·추상적 주의의무 위반으론 부족하고 구체적·직접적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하지 않은 경우를 뜻한다”며 “피고인이 현장소장으로서 작업계획 보고 및 승인, 작업내용 전달 등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구체적 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 “사고 위험 알고도 방치”

그러나 대법원은 항소심이 판단을 잘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추락사고 전날 피고인(A 씨)은 해당 갱 폼에서 1단과 9단 볼트가 체결된 점을 확인했다. 그러나 사고 당일 오전엔 회의에 다녀오느라 상·하부 고정볼트 체결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사이 누군가가 1단과 9단 볼트를 풀었다. 물론 A 씨가 1·9단 볼트를 직접 해제했거나 이를 지시한 사실은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A 씨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다.

대법원은 갱 폼을 인양 장비에 매달기 전에 볼트를 미리 해체하지 않도록 할 안전조치 의무가 현장소장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A 씨는 인양 장비에 매단 후 모든 볼트를 해체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등의 이유로 2단부터 8단까지의 볼트를 먼저 해체하도록 했다. 2단부터 8단까지의 볼트가 하중 지지와 직접적 관련이 없을 수 있다.

대법원은 “1단과 9단의 볼트를 해체할 경우 갱 폼이 곧바로 하중 지지력을 상실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므로 2~8단 볼트가 체결된 상태에 비해 안전성이 저하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A 씨가 근로자들에게 “거푸집 해체 작업을 안전하게 옥상 내부에서 하라”고 지시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A 씨가) 외국인인 피해자가 한국어에 서툴러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과 거푸집 해체팀 근로자들이 유로폼 거푸집 해체 작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갱 폼을 작업 발판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며 “그런데도 더 이상의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사업주가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작업을 개별적·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작업이 지속될 것이란 사정을 알고 방치했다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성립한다는 앞선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돋보기]

 건안법·산안법…사업주 책임 더 늘어난다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 등 안전사고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 범위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2025년 주요 대형 사업장에서 잇달아 인명사고가 터진 이후 국회에서 건설사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법안을 줄줄이 내놓고 있어서다.

법조계와 국회에 따르면 건설 현장에서 안전관리 의무 소홀로 사망사고 발생 시 매출액의 최대 3%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의 건설안전특별법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국내 10대 건설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3%대다. 사망사고가 한번 터지면 해당 건설사는 바로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2월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연간 3명 이상의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영업이익의 최대 5%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게 골자다. 만약 회사가 적자 상황에 처해 있다면 과징금 규모를 30억원 이내로 제한한다.

2022년부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중이다. 안전조치를 소홀히 해 사망사고를 낸 사업자나 경영 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안전사고를 낸 건설사는 이 같은 형사처벌과 행정처분 외에 신규 수주 중단, 선분양 제한 등 각종 벌칙을 받게 될 수 있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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