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 뜯는 순간 헌것 된다”…중고거래 1억 쓰고 또 되판 ‘중고 덕후’, 그만의 원칙은 [덕후 계산기]
90만원 사기 피해에도 꺾이지 않은 집념
“새것도 뜯는 순간 중고”…감가 큰 건 무조건 중고
중고거래 넘어 경매·리셀로 확장된 재테크 수단

“이 동네엔 뭐가 있으려나?”
낯선 동네에 발을 들이자마자 직장인 A씨(29)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맛집 검색이 아니다. 바로 지역 기반 중고거래 앱 ‘당근’을 켜는 것. 지역마다 올라오는 매물이 달라서다.
이런 습관 덕에 지난달에는 해외 출장을 위해 찾은 인천국제공항에서 평소 눈독 들여온 브랜드의 가방을 발견하는 수확을 거두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중고는 그저 남이 쓰던 물건일지 모르지만, A씨에게는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가장 똑똑한 통로다. 초등학생 시절 미국 개러지 세일(Garage sale)에서 시작된 그의 중고거래 인생은 어느덧 누적 거래 500회 이상, 거래액은 1억원에 육박하는 ‘중고 고수’ 수준에 이르렀다.
A씨가 초등학생 무렵,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하며 중고 거래의 신세계를 만났다. 당시 어머니와 함께 드나들던 앤티크숍(골동품 매장)과 이웃집 앞마당에서 열리는 ‘개러지 세일’을 접하며 중고 거래의 묘미에 눈을 뜬 것. 개러지 세일은 필요 없어진 물건을 차고나 마당에서 판매하는 일종의 벼룩시장으로, 미국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중고거래 문화다.
물건을 비우려는 집주인과 좋은 물건을 헐값에 잡으려는 구매자가 만나는 풍경은 어린 그에게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매주 주말이면 동네 구석구석을 걸으며 어느 집 마당에 가라지 세일이 열렸는지 구경하는 게 즐거움 중 하나였다.
“중고도 충분히 쓸 만하다”는 걸 몸소 배운 소년은 중학생이 되어 ‘에피폰 레스폴 스탠다드’ 기타를 첫 중고로 구매했다. 이후 그는 새것보다 ‘중고’의 실질적인 가치에 더 매료되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A씨는 공부보다 중고거래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당시 한창 인기를 휩쓸던 중고 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의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A씨는 틈만 나면 교과서·문제집보다 중고나라를 들락거렸다. 그렇게 한 달 용돈 40만원을 한 푼 두 푼 아끼고 모은 끝에 마침내 꿈에 그리던 기타 ‘에피폰 ES-335’를 손에 넣었다. 그는 “기타를 품에 안은 그 순간만큼은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대학 시절 선배의 풀프레임 카메라 성능에 푹 빠진 A씨는 장비 업그레이드를 향한 욕망에 휩싸였다. 결국 그는 부모님 댁에 있던 캐논 EOS 550D를 몰래 처분했다. 부모님은 지금까지도 그 카메라의 행방을 모를 정도로 치밀하게 진행했다.
여기에 아르바이트로 꼬박 모은 돈까지 보태 풀프레임 DSLR 카메라인 캐논 EOS 6D를 샀다. 하지만 간절했던 꿈은 시련으로 돌아왔다. 입금까지 마친 90만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 물건을 보내주겠다던 판매자는 운송장 번호까지 조작하며 A씨를 안심시켰지만, 모든 게 거짓이었다.
곧장 경찰에 신고했으나 돌아온 답은 허망했다. 단순 개인 사기가 아니라 중국 거대 조직의 소행으로 밝혀진 것이다. 사기꾼은 이미 한국을 떠난 뒤였고, 수사는 종결돼 돈은 되찾지 못했다.
A씨가 겪은 피해처럼 중고거래 사기는 증가하고 있다. 2025년 8월 말 기준 중고거래 플랫폼 직거래 사기 관련 민원은 8만3733건으로 2024년 전체 민원 건수(10만539건)에 육박했다. 2024년 기준 사기 피해 규모만 3340억원에 달한다.
2025년 8월 말까지 당근·중고나라(네이버)·번개장터 등 중고거래 플랫폼 3사에 대한 국민권익위원회 민원은 3520건이 접수됐다. 2024년 전체 민원(2995건)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이런 뼈아픈 피해에도 A씨가 중고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새것을 뜯는 순간 바로 중고가 된다”는 것. 어차피 헌 것이 될 바에야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하는 게 이득이라는 확신이다.
A씨는 사고 싶은 게 생기면 온라인 쇼핑몰 대신 중고 플랫폼부터 검색한다. 쇼핑몰 가격은 그저 ‘중고가 얼마나 저렴하게 올라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대조군일 뿐이다. 그런 그에겐 세 가지 철저한 거래 기준이 있다.
첫째, 감가상각이 심한 제품은 절대 새것으로 사지 않는다. A씨는 대표적인 예로 자동차를 들었다. “시동 한 번 거는 순간 1000만원 단위로 가치가 깎이는 제품은 중고가 압도적으로 이득”이라는 설명이다. 한 번 사면 오래 쓰지만, 1~2년만 지나도 가격이 반 토막 나는 가전제품 역시 그의 주요 타깃이다.
둘째, 선물만큼은 무조건 새 제품으로 구매한다. 중고 거래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즐거움으로 한정짓는다. 타인에게 마음을 전할 때는 중고 덕후의 면모를 잠시 내려놓는 게 그만의 예의다.
셋째, 취미는 경험에 집중한다. 야구 글러브, 기타, 전동자전거, 게임기 등 수많은 물건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한동안 충분히 즐기다 질릴 때쯤이면 미련 없이 다시 중고 시장에 내놓는다. 그리고 그 판매 대금에 돈을 보태 새로운 취미 물건으로 환승한다.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세상을 맛보는 식이다.
마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시절 등장한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기)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A씨는 자신의 노하우를 살려 중고 명품 경매까지 영역을 넓혔다. 시세보다 저렴하게 낙찰받아 중고 플랫폼에 리셀(재판매)하며 부수입을 올리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에르메스나 롤렉스 같은 초고가 명품 낙찰은 아쉽게 실패했지만, 루이비통과 디올 가방 등을 시세보다 15~20만원 저렴하게 낙찰받아 쏠쏠한 재미를 봤다.
“경매 마감 시간이 다가올 때가 제일 짜릿해요. 새 제품을 결제할 때 절대 느낄 수 없는 도파민이죠.”


2026년 올해 벌써 15번의 거래를 마친 A씨. 지금까지 약 1억원을 쓰고 또 되팔았다. 단순 소비로 보면 큰 금액이지만, 그는 이를 순환으로 본다.
그에게 중고 거래는 이제 단순한 절약을 넘어선 하나의 전략이다. 동시에 일상에 작은 성취와 활력을 주는 게임이기도 하다. 오늘도 그는 낯선 동네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본다. 혹시 모를 ‘원석’을 찾기 위해서다.

김도연 AX콘텐츠랩 기자 doremi@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부, 26조 ‘전쟁추경’ 국무회의 의결…소득 하위 70%에 최대 60만원 지원
- 반도체주 급락의 주인공…한인 교수가 만든 ‘터보퀀트’
- “비트코인·금만이 당신을 지켜줄 것”…중동전쟁에 ‘부자 아빠’ 꺼낸 한마디
- “한 달새 23조 증발”…외국인들 ‘우르르’ 떠난 삼전하닉, 남은 개미들은 어쩌나
- 李대통령 지지율 62.2%...민주 51.1%·국힘 30.6%
- 푸틴의 한 수...美 ‘앞마당’ 쿠바에 유조선 보냈다
- “여보, 주담대 금리 또 올랐대” 커지는 이자 공포...27개월만 최고
- BTS, ‘아리랑’으로 빌보드 200 7번째 정상…英 이어 美 앨범차트도 석권
- “복권? 확률상 불가능해”라던 수학강사, 1등 5억 당첨…친구들과 나눠 갖는다
- “미분양일 때 살 걸”…‘고분양 논란’에서 ‘가성비 신축’된 이 단지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