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 주도' 함병선 공적비, 철거 대신 '박제'...4·3평화공원 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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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책임자로 꼽히는 함병선 전 연대장을 기리는 공적비가 제주4·3평화공원으로 이설됐습니다.
제주자치도는 오늘(28일) 제주시 오등동 특수전사령부 훈련장 내에 있던 함병선 공적비를 제주4·3평화공원으로 이설하고, 그 옆에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을 설치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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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비 옆에 '진실 안내판' 설치

제주4·3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책임자로 꼽히는 함병선 전 연대장을 기리는 공적비가 제주4·3평화공원으로 이설됐습니다. 비석 옆에는 기록되지 못했던 그의 '흑역사'와 4·3의 비극이 담긴 안내판이 나란히 세워졌습니다.
제주자치도는 오늘(28일) 제주시 오등동 특수전사령부 훈련장 내에 있던 함병선 공적비를 제주4·3평화공원으로 이설하고, 그 옆에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을 설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공적이 적힌 비석은 1949년 6월 '제주도치안수습대책위원회 남제주군지회' 명의로 세워졌습니다. 제주도는 4·3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고자 '4·3역사 왜곡 대응 자문단'논의와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비석을 철거하는 대신 4·3평화공원으로 옮겼습니다.
함병선 공적비와 함께 제주기상청 부지에 방치돼 있던 군경 공적비와 충혼비도 함께 이설됐습니다. 두 비석은 각각 1949년 8월과 1950년에 세워진 것으로, 군경 및 우익단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자문단 및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경찰지서 옛터 표지석 등 4·3 역사 왜곡 논란 시설물에 대한 안내판 설치 또는 이설을 순차적으로 추진할 방침입니다.

한편, 정부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등에 따르면, 함병선 제2연대장은 4·3 당시 가장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낸 '초토화 작전'을 주도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1948년 12월경 육군 제2연대가 기존 제주에 주둔했던 9연대와 교체될 당시 2연대장으로 제주에 부임했습니다. 2연대는 1949년 2월까지 제주에서 자행된 이른바 '초토화 작전'을 이어 받아 무수한 민간인 희생을 양산했습니다. 부대는 앞서 1948년 10월에 발발한 '여순항쟁'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상태였고, 제3대대는 악명 높은 서청(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됐습니다.
특히, 1949년 1월 주민 400여 명이 집단 학살된 '북촌대학살'은 그가 이끌던 2연대가 자행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미군 보고서 역시 "제2연대가 마을 사람들을 재판 절차도 없이 즉석에서 대규모로 처형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1920년 5월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숭덕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제 치하에서 군문에 투신해 준위 계급을 달았습니다. 해방 후에는 당시 엘리트코스였던 군사영어학교를 거쳐 다시 군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제주에서의 진압 작전 이후에도 육군 제2군단장, 연합참모본부 의장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하다가 2001년 사망해 현재 국립대전현충원 제1장군묘에 안치돼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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