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마대자루 속에 아버지가···"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유족의 절규 [하상윤의 멈칫]
쥐똥과 곰팡내 속에 묻힌 가족 흔적
활주로 흙바닥서 유족이 맨손으로 백골 줍는 비극


“썩은 마대자루를 열 때마다 그 안에서 가족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와 자식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일 년 넘게 방치돼 있었던 겁니다. 너무 억울해요. 너무 억울해요.”
지난 13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공항소방대 뒤편 통제구역 야적장. 김유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의 울분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곳은 참사 여객기(7C2216편)의 잔해가 1년 넘게 보관되어 온 장소다. 지난 2월 중순, 유가족의 끈질긴 요구 끝에 잔해 보관 상태 개선 작업과 더불어 본격적인 잔해물 재조사가 시작됐다. 유가족들은 혹시나 유류품 한 점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현장을 지켜왔다. 재조사가 시작된 2월 12일부터 5주 동안 6차례에 걸쳐 그 과정을 기록했다.


검은 천막이 걷히고 굳게 닫혀 있던 톤백(대형 마대 자루)들이 하나둘 열릴 때마다 참혹한 실상이 드러났다. 작업을 위해 톤백을 들어 옮기자 바닥으로는 쥐똥이 후두두 떨어졌고, 곧이어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포대 안은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했다. 하지만 흙먼지를 털어내고 살펴보니, 그것들은 다름 아닌 희생자들의 유류품이었다.

‘조ㅇㅇ’라고 적힌 알약 봉지부터 주인 잃은 어린이용 핑크색 크록스와 찢어진 기저귀, 고열에 눌어붙은 회색 캐리어, 토이스토리 티셔츠, 남색 수영팬츠, 스타벅스 비치타월, 잎새주, 부러진 뿔테 안경, 아이언 헤드, 쿨민트 리스테린, 후시딘 연고, 랑콤 에센스, 말린 망고, 나이키 운동화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짐작게 하는 방대한 유류품이 쏟아져 나왔다. 고열에 소실됐다며 유족들을 돌려세웠던 당국의 당초 설명과는 상반되게, 마대 자루 속 물품들은 15개월 전 희생자들의 흔적을 뚜렷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아내와 두 아들까지 온 가족을 잃은 유족 김영헌(53)씨는 쏟아진 물품들을 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당시엔 이름 붙은 신발 하나만 나와도 그리 감사했습니다. 작은 거 하나도 가족의 일부라고 여겨 소중했어요. '김정희(아내)'라고 쓰인 손가락만 한 케이스까지 찾아주길래 정말 열심히 수색해 준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를 보십시오. 온전한 유류품이 이렇게나 널려 있습니다. 고열에 다 타버렸다고, 기체 잔해만 남았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데..."


쓰레기처럼 방치돼 있던 그 포대 안에서는 유해마저 줄지어 발견됐다. 지난 2월 26일 한 포대 안에서 무려 25cm에 달하는 뼛조각이 나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이번 참사로 부모님과 남동생을 잃은 김유진 대표 아버지의 정강이뼈로 확인됐다. 김 대표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부모가 나오고 있다"며 절규한 이유다. 그는 "처음부터 저렇게 백골 상태는 아니었을 텐데, 그걸 생각하면 너무 참담하다"며 "아직 못 찾은 나머지 다리 하나도 저 쓰레기 무더기 어딘가에 있지 않겠느냐"며 오열했다. 가족의 흔적을 찾으려 쓰레기 더미를 뒤지면서도, 정작 유족들은 매주 목요일쯤 국과수에서 걸려 오는 신원 확인 전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김 대표는 "찾길 원하면서도 막상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 마음이 무너져 미쳐버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참사 직후 "현장 수습이 99% 완료됐다"는 당국의 발표와 달리, 1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희생자의 흔적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초기 수습이 부실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당국은 당시 잔해물을 세밀하게 분류하지 않고 대형 자루에 담아 야적장에 보관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유해와 유류품이 뒤섞여 방치됐다. 특히 지난 12일 재조사에서는 희생자 유해 추정 물체 24점과 유류품 48묶음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 중 상당수는 지난 1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가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현장 실사를 앞두고, 유족 동의 없이 참사 현장인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 앞 잔해를 수거해 담아놓았던 마대자루에서 나왔다. 유가족협의회는 이 같은 정황을 들어 조사 당국의 현장 훼손과 조직적 은폐를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

26일 유가족협의회가 발표한 현황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12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진행된 재조사에서 수습된 유해 추정 물체는 총 80점에 달한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38점은 이미 참사 희생자의 유해로 최종 확정됐고, 2점은 비유해로 판정됐으며, 나머지 40점은 국과수에서 분석 중이다. 유류품은 대형 김장용 봉투 크기로 757묶음이 수거됐고, 희생자들의 휴대폰도 5대가 발견됐다. 봉투 한 묶음에 여러 점의 유류품이 들어있는 것을 감안하면, 1년 넘게 마대자루 속에 방치됐던 희생자들의 물품은 수천 점이 훌쩍 넘는 규모다.



한편, 지난 14, 15일에는 유가족들이 무안공항 담장 외곽에서 직접 수색을 벌여 인체 유해 추정 물체 7점을 발견했다. 국과수 감식 결과 해당 유해는 모두 참사 희생자 6명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에서 만난 유족 오정순(56)씨는 "이제는 함부로 흙을 밟을 수도 없게 됐다"며 "혹시나 어딘가에 가족이 떨어져 있지 않을까 바닥을 쳐다보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고 전했다. 국가가 수색 종료를 선언한 지 15개월이 넘었지만, 유가족들이 직접 현장에서 맨손으로 유해를 수습하는 비극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무안=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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