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뒤에 아마존 있다
[박꽃의 영화뜰]
[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한 과학자가 우주로 갔다. 홀로 살아남은 그는 지적이고 귀여운 외계 생명체와 조우한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두 존재는 과학이라는 공통의 이해를 접점삼아 소통 방법을 개발하고, 지구 모든 생명체를 파멸로 몰아가는 위험 세포를 함께 제거하며 남다른 우정을 나눈다. 할리우드 개봉 첫 주말(20~22일)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8000만 달러(한화 약 1197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1위에 오른 '프로젝트 헤일메리' 이야기다. 그보다 이틀 앞서 개봉한 국내에서도 지난 주말까지 56만 명을 불러 모으며 호평을 끌어내는 중이다.
우리 관객이 이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명료하다. '그래비티'(2013)나 '인터스텔라'(2014)처럼 우주에서 벌어지는 휴먼드라마를 사랑해 마지않는 이들에게 '마션'(2015) 원작자인 앤디 위어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신뢰를 준다. 주인공 '그레이스' 역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에 대한 선호도 낮지 않다. 로맨스 영화에 야박한 편인 우리 관객이 예외적으로 큰 사랑을 보낸 게 '노트북'(2004)과 '라라랜드'(2016)였다. 이번 작품에선 과학자 특유의 '너드미'와 그 안에 숨은 인간적인 매력을 한껏 뽐낸다. 영화를 좀 더 깊숙이 즐기고 싶은 이들에겐 필 로드, 크리스 밀러 감독의 장인정신 서린 인터뷰가 최적이다. 그린스크린 하나 없이 전체 세트를 직접 제작하고, 흡사 돌게처럼 생긴 외계 생명체 '로키'의 실물 모형을 움직여가며 촬영했다는 제작 뒷이야기는 작품에 대한 흥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한가지 사실을 더 알면, 이 작품이 완성돼 세상에 선보여질 수 있었던 본질적인 맥락까지 이해하게 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뒤에는 미국 최대 인터넷 쇼핑 플랫폼인 아마존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아마존은 2022년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록키' 프랜차이즈를 세상에 내놓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 MGM을 인수했다. 사명을 '아마존MGM'으로 바꾼 뒤 무려 2억 달러(한화 약 2991억 원)를 들여 만든 대표적인 텐트폴 영화가 '프로젝트 헤일메리'다. 한국 상업영화 최대 제작비 수준이 500억 원 전후인 걸 고려하면 무려 6배에 달하는 큰돈이다. 그토록 큰 투자가 가능했던 건 아마존이 확실한 재정적 뒷받침을 했기 때문이다. MGM의 인수 직전 부채는 25억 달러(한화 약 3조7300억 원)였고, 이걸 모두 떠안은 게 아마존이다.
돈 많고 잘나가는 기업이 적자투성이인 할리우드 영화사를 사들이는 건 비단 아마존만의 사례는 아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세계 최강의 콘텐츠 공급자가 된 넷플릭스는 최근까지도 적자기업 워너브러더스를 인수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다만 치열한 인수합병전에서 최종적으로 승기를 잡은 건 넷플릭스가 아니라, 데이터베이스 인프라 사업으로 전 세계 정부와 대기업에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는 오라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창업자 래리 앨리슨의 아들인 데이비드 앨리슨은 지난해 자신이 이끄는 영화사 스카이댄스를 통해 '미션 임파서블', '탑건', '스타트렉' IP를 소유한 파라마운트를 사들였다. 최근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같은 글로벌 메가히트작을 만들어낸 워너브러더스도 추가로 인수했는데, 파라마운트 합병으로 현금이 부족해지자 아버지 회사 오라클을 통해 400억 달러(한화 약 59조 원)를 보증까지 받았다.

미국의 부유한 기술기업들이 돈 안 되는 영화사를 경쟁적으로 사들이며 덩치를 불리는 덴 이유가 있다. 대중의 '시간'을 점유하고 브랜드를 향한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선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IP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국내 사례로 보자면 인터넷 쇼핑 플랫폼 쿠팡이 멤버십 사용자에게 OTT 쿠팡플레이를 미끼처럼 끼워 제공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물건을 잘 팔기 위해선 일단 사람을 끌어모아야 하는데,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담보한 영화만큼 대중을 손쉽게 유인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적자 영화사를 과감하게 사들인 배경엔 자신들 사업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데 영화 IP가 기여할 거란 확신이 있었다.
이쯤에서 영화 애호가 독자가 한 발 더 나간 궁금증을 품는다면, 그건 아마 거대 기술기업들의 경쟁적인 영화사 인수가 영화라는 대중예술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운이 좋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처럼 영화사 자체 역량만으로는 확보하기 어려운 거대 자본을 투입한 호평 받는 블록버스터가 재차 탄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영화제작사'의 기존 문법이 아닌 '기술기업'의 효율 논리에 따라 제작여부가 갈리는 문제도 충분히 나타날 거라고 봐야 한다. 스타 배우도 유명 감독도 없는 영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란 쉽지 않다. 영화 자체보다 '영화로 사람 유인하기'에 더 관심이 있는 회사에게 그런 영화는 더욱이 불필요할 수 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성공적인 데뷔 뒤에 숨은 양날의 검과 같은 맥락이다.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통령의 목소리가 가짜였다? 다가오는 선거와 우려되는 ‘딥 보이스’ - 미디어오늘
- 3월인데 교과서가 없는 선생님…16년째 반복되는 시각장애 교사의 새 학기 - 미디어오늘
- 빨간옷 피하는 국힘 후보들… 동아일보 “국힘 최대악재 ‘장동혁 리스크’” - 미디어오늘
- 대세 된 OTT 광고요금제… 이용률 60% 달한다 - 미디어오늘
- 유시민 작가의 ‘재래 언론’ 프레임 - 미디어오늘
- 구글 출신 대표로 지명한 BBC… “편집 경험 부족” 비판도 - 미디어오늘
- 넷플릭스, 1년 만에 또 가격 인상한다 - 미디어오늘
- 미국은 폭격기를, 쿠바는 의사들을 보냈다 - 미디어오늘
- 10년 만에 인스타그램 삭제하게 만든 이 드라마의 ‘뼈아픈’ 불쾌함 - 미디어오늘
- 112억 선행매매 기자, 금감원 경고에도 서울경제 ‘대리 송출’ 지속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