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다시 일깨운 ‘공급망’의 중요성…中, 이재용만 따로 불렀다
삼성에 공들이는 中…이재용, 中 경제장관과 반도체 공급망 별도 논의
(시사저널=모종혁 중국 통신원)
3월22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이례적으로 자국에서 열린 경제포럼을 크게 보도했다. 환구시보는 "수많은 글로벌 기업 거물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세계 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각국 기업인들이 예측 가능성과 확실성을 제공하는 중국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같은 날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발전고위급포럼(이하 포럼)을 가리킨다. 포럼에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80여 개 글로벌 기업 CEO가 참석했다.
개막식 기조연설에는 리창 국무원 총리가 나섰다. 리 총리는 "중국의 산업 경쟁 우위는 보조금과 보호로 얻은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개혁 심화와 혁신 주도 발전 심화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공정 경쟁의 시장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고 각국과 소통·협조를 강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안정과 안전을 함께 촉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분히 중국에 대한 미국의 디커플링 정책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환구시보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잦은 비판과 디커플링 담론에도 세계 최고 기업 CEO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중국 시장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박2일 동안 열린 포럼에 참석한 글로벌 기업 CEO들은 중국 정부 경제 실세인 허리펑 부총리와 면담하기도 했다.

리창 "中, 글로벌 공급망 안정 촉진"
3월24일에는 하이난다오의 휴양지 보아오에서 '2026 보아오아시아포럼'이 열렸다. 보아오포럼은 중국이 '아시아의 다보스포럼'으로 키워 와 올해는 세계 60개국과 지역에서 2000여 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이 중에는 로렌스 웡 싱가포르 총리, 스리랑카 국회의장, 아제르바이잔 국회의장, 인도네시아 경제장관 등이 있었다. 본래 김민석 총리가 참석해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었으나, 이란 전쟁이 지속되면서 국내 경제에의 영향 등을 고려해 영상으로 참여했다. 이번 보아오포럼이 이목을 끈 이유는 최근 정세가 긴박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나라는 아시아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면서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이 막혔기 때문이다. 전쟁 전에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전 세계 소비의 20%, 일평균 2000만 배럴의 석유가 운송됐다. 세계 교역의 20%에 해당하는 천연가스도 호르무즈해협을 거쳐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겉으로 보면 걸프협력회의 산유국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수입하는 중국(29.1%), 일본(18%), 한국(14%) 등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실정은 달라서 이들 국가는 넉넉한 비축량을 갖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석유와 천연가스 비축량이 적은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에 적지 않은 나라들이 에너지 절감을 위해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오프라인 회의나 행사를 금지했다. 게다가 이들 국가에 석유제품을 공급하던 중국, 한국 등이 수출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3월5일 로이터통신은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국영·민간 정유사를 소집해 석유제품의 수출 중단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국가발전개혁위는 중국 경제의 컨트롤타워인 정부 부처다. 국영·민간 정유사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 수출 물량을 결정해야 한다.
2024년 기준 세계 석유제품 수출에서 중국은 4.7%로 9위, 한국은 5.5%로 5위였다. 언뜻 보면 비중이 크지 않지만, 주요 수입국이 동남아와 서남아 국가, 호주 등이다. 지난 수년 동안 중국은 석유화학 생산시설을 대폭 늘리며 관련 제품을 과잉 공급해 왔다. 그렇기에 동남아 및 일부 서남아 국가들은 중국산 석유제품의 수입 비중을 대폭 높였다. 이런 와중에 중국이 석유제품 수출을 중단하자 수입국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번 보아오포럼에 중국산 석유제품을 수입하는 주요 국가의 총리, 국회의장, 경제장관 등이 참석한 배경이다.
중국이 잇따라 개최한 중국발전포럼과 보아오포럼은 구체적 역할에서 차이가 있다. 중국발전포럼은 글로벌 기업 CEO들을 초청해 세계 경제 현안을 논의하고 투자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보아오포럼은 중국이 세계 각국에 보내는 정치·외교 메시지의 플랫폼으로 기능했다. 그래서 이번 보아오포럼에서는 아시아 지역 협력 강화를 핵심 화두로 손꼽았다. 중국과 아세안 간 자유무역협정(FTA) 3.0 협상의 진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의 전면 시행 등 지역 경제 통합 흐름 속에서 공급망 안정과 무역 확대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중국은 이번 두 포럼에서 '공급망'에 방점을 뒀다. 3월24일 이를 증명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산제 국가발전개혁위 주임(장관)이 이재용 회장을 단독으로 만난 것이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정 주임은 중국의 거시경제와 대외 개방 확대 상황, 15차 5개년 계획(2026〜30년) 내용 등에 대해 소개했다. 그러면서 "삼성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망·공급망의 안정을 적극적으로 수호하고 호혜·윈윈을 실현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방중 기간에 왕원타오 상무부 부장, 리러청 공업정보화부 부장도 만났다.
中의 치명적 약점, 취약한 반도체 경쟁력
중국발전포럼이 끝난 뒤 정 주임을 만난 글로벌 기업 CEO는 이 회장이 유일했다. 중국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최강자인 삼성에 공들이고 있음을 방증한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시기부터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디커플링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메모리 반도체의 극심한 공급난을 겪고 있다. 반도체는 중국이 제조업에서 '굴기'하지 못한 몇 안 되는 산업이다. 여기에 지난 1월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마두로 대통령을 압송했고, 2월말 이란 전쟁까지 발발했다.
2024년 중국의 전체 석유 수입량에서 베네수엘라는 약 3~4%, 이란은 약 13%를 차지했다. 따라서 최근 정세는 중국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셰일 혁명을 통해 석유와 천연가스의 자급자족을 달성했다. 오히려 남아도는 에너지는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2025년 한국이 수입한 석유의 17%, 천연가스의 10%가 미국산이었다. 미국은 세계 3위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를 갖고 있고,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이 대대적인 대미 투자를 하도록 채찍질했다. 그 덕분에 미국은 에너지와 반도체 공급망을 확실히 확보했다.
중국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반도체 공급난과 에너지난으로 구조적인 취약점을 드러냈다. 물론 중국은 전체 소비에서 석유는 25~30%, 천연가스는 55~60%를 자국에서 생산한다. 비축한 원유량이 125일분에 달하고 천연가스는 중앙아시아, 미얀마, 러시아에서 파이프라인으로 수입한다. 미국이 갖지 못한 희토류 등 핵심 광물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의 패권전쟁에서 기초 체력이 뒤처지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렇기에 이란 전쟁으로 인해 연기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더욱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