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원망 들으려고”…엄마에겐 내 불평이 원한이었을까 [.txt]

한겨레 2026. 3. 2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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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고 싶어도 못 해줄 때 쌓이는 죄책감
버거운 감정이 딸을 향한 ‘말화살’ 되고
불평과 원한은 다른데, 원한으로 여겼을지도
“나 이거 갖고 싶어”, “안 주니까 속상해”라는 불평에는 자신이 상대를 필요로 하고 의존하고 있다는 게 솔직하게 드러난다. 이를 원한으로 오해하면, 상담 사례처럼 관계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마음돌봄, MZ가 MZ에게

저는 “무슨 원망을 들으려고”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화가 납니다. 저희 엄마는 이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학창 시절 콘서트에 보내달라고 했을 때, 엄마는 무슨 티켓이 그렇게 비싸냐며 안 된다고 하셨고 저는 침묵시위를 하며 전단지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 엄마가 “너 콘서트 안 보내줬다가 나중에 무슨 원망을 들으려고”라고 하면서 돈을 주셨는데 오기가 생겨 알바는 알바대로 하고 엄마가 준 돈은 흥청망청 써버렸습니다.

엄마 말에 의하면 저는 어려서부터 (요청을) 들어줄 때까지 졸랐다고 합니다. 과자 사달라고 매대 앞에 드러누워 울고, 지하철을 타면 앉고 싶다고 떼를 써서 보다 못한 사람들이 양보해줬다는 얘기를 잊을 만하면 합니다. 제가 그런 아이였기 때문에 엄마도 ‘무슨 원망을 들으려고’라는 말이 입에 밴 거겠지요.

저도 제가 철이 없고 이기적인 데가 있다는 걸 압니다. 콘서트 티케팅 전쟁을 위해 피시방에 같이 가주고, 말하지 않아도 유행하는 아이템을 척척 사주는 친구의 부모님들이 마냥 부러웠고, 우리 집 형편은 잘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부모님이 저를 키우기 위해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고생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무슨 원망을 들으려고’라는 말은 싫습니다.

얼마 전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더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모아둔 돈으로 학비를 댈 거라고 말했더니 엄마가 또 “너를 어떻게 말리겠냐”고 하셨습니다. 돈을 대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을 들으니 화가 납니다. 어차피 도움받을 것도 아니었으니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데 이 말이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이진(가명·29)
5살 된 제 아이는 친구들의 장난감을 볼 때마다 “엄마, 나도 이거 사줘” 하며 해맑게 달려옵니다. 그때마다 저는 가벼운 들뜸과 희열을 느낍니다. 말만 하면 다 사줄 거라는 기대로 가득 찬 아이의 눈빛을 보면 아이는 저를 슈퍼우먼으로 알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진짜 슈퍼우먼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다 사주겠다고 허풍도 떨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곧 쓰라린 현실을 마주합니다. 아이에게 적절한 좌절과 결핍을 줘야 한다는 양육의 원칙과는 별개로 제게는 그 모든 걸 사줄 수 있을 만큼의 무한한 돈도, 그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는 무한한 집도 없습니다. 슈퍼우먼이 아니라 한계가 여실한 평범한 인간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는 부모로서의 무능감과 무력감, 부족한 느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진님의 어머니는 이 감정이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해주고 싶지만 할 수 없다”고 말하려면 자신의 한계를 마주해야 합니다. 관계의 일시적 균열과 죄책감도 감당해야 합니다. 이건 꽤 괴롭습니다. 너무 괴로워 견디기 힘들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초점을 자신에게서 남에게로 옮기는 것입니다. 딸이 너무 요구적이라는 식으로요. 어쩌면 어머니는 딸의 바람을 들어주지 못하는 엄마라는 사실을 감당하는 것이 힘들어 그 상황을 자신의 한계를 마주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 바라는 게 많은 딸의 문제로 바꿔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진님으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콘서트에 가고 싶고, 과자가 먹고 싶다는 소소한 소망이 남을 힘들게 하는 짐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원한다’고 말할 때마다 ‘원망 많은 너’라는 반응이 돌아오니 뭔가를 편하게 원할 수 없습니다. 욕구에 늘 죄책감이 따라붙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몰아붙여서 받은 것 같아 만족스럽기는커녕 자존심만 상합니다. 어머니가 준 돈을 흥청망청 써버린 것도 돈에 따라온 부채감과 굴욕감을 빨리 떨쳐버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와인트로브는 불평과 원한을 구분했습니다. “나 이거 갖고 싶어”, “안 주니까 속상해”라는 불평에는 자신이 상대를 필요로 하고 의존하고 있다는 게 솔직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와인트로브는 불평을 ‘활기찬 자아’의 목소리라고 했습니다. 반면 원한은 상대방을 사랑하고 기대는 대상이 아니라 벌받고 책임져야 하는 피고로 규정합니다. 불평이 ‘당신에게 바라는 게 있다’는 목소리라면 원한은 ‘당신은 내게 잘못했다. 그러니 내 불행과 손해를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입니다.

어머니에게는 이진님의 불평이 원한으로 들렸던 것 같습니다. 들어주지 않았다간 언젠가 자신이 피고석에 세워져 옴짝달싹 못 하게 될 거라 예상하신 거지요. 하지만 이진님의 목소리는 불평에 가깝습니다. 어머니에게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벌주려 하기보다는 어머니의 상황을 이해합니다. 동시에 기대도 남아 있습니다. 경제적 지원을 바라지 않음에도 공부 계획을 말하고 어머니의 반응에 화를 내는 이유는 여전히 어머니에게 지지받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타인과의 연결을 포기하지 않는 ‘활기찬 자아’가 작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그런데 이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공부는 내 돈으로 할 거였고 도움받을 것도 아니었는데 뭘 바라고 말을 꺼낸 걸까’ 하는 체념과 자책이 보입니다. 스스로를 철없고 이기적이라고 말하며 어머니의 평가를 그대로 내면화한 모습도 보입니다. 너무 상처받아서 이제 더 이상 뭘 바라지 않으려 노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야 할 방향은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순간마다 따라붙는 죄책감이 다 내 몫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일일 것 같습니다. 그때 비로소 타인도, 이진님 자신도 피고석에 세우지 않고 그저 자기 바람을 바람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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