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어둠을 깨운 태초의 빛, 자그레브가 통째로 캔버스가 되다”

강석봉 기자 2026. 3. 2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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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 선정 ‘2026 유럽 최고의 행사, ’자그레브 빛 축제’…크로아티아 수도에서 5일간 열린 제8회 빛의 향연

자그레브의 밤이 겨울의 끝자락을 지나 따스한 봄의 기운을 머금은 채 화려한 빛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매년 3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Zagreb)를 거대한 야외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키는 자그레브 빛의 축제(Festival Svjetla Zagreb)가 올해도 도심 전역을 희망과 예술의 빛으로 수놓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한폭의 캔버스가 된 자그레브 시내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자그레브 시 관광청(TB of City of Zagreb)이 제공하고 엠 토마시(M. Tomaš)가 촬영한 이 사진은 2024년 자그레브 빛의 축제(The Festival of Lights 2024)의 화려한 장면을 담고 있다.

전시가 열린 건물 외벽에는 크로아티아의 전통적인 심장 모양 쿠키인 리치타르(Licitar)를 모티프로 한 3D 매핑 영상이 투영되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리치타르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크로아티아의 대표적인 문화 상징물로, 붉은 바탕에 정교한 장식이 입혀진 수많은 하트가 건물 전체를 뒤덮으며 따뜻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출했다. 축제의 공식 로고가 새겨진 거대한 중앙 하트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 시각적 연출은 자그레브의 역사적 정체성과 현대적인 예술 기술을 조화롭게 결합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제공|CNTB

여덟 번째를 맞이한 이번 축제는 도시 상부(Gornji Grad)의 유서 깊은 중세 건축물부터 하부(Donji Grad)의 현대적인 광장에 이르기까지 총 21개 장소에서 26개의 독창적인 조명 설치물을 선보였다. 특히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고전적 건축미 위에 첨단 조명 기술을 덧입히는 시도를 통해 도시 전체에 역동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어둠 속에서 피어난 이 빛의 향연은 단순한 시각적 유희를 넘어, 긴 겨울을 보낸 시민들에게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며 자그레브를 세계적인 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각인시켰다.

독일의 예술 단체인 에프오엘 인터내셔널(FOL INTERNATIONAL)과 다니엘 마르그라프(Daniel Margraf) – 스프리풍켈른(Spreefunkeln)이 협업하여 선보인 빛의 투영 전시인 연결과 포용(Connected – Embraced)은 자그레브의 크로아티아 공화국 광장 15번지(Trg Republike Hrvatske 15)에 위치한 유서 깊은 건물 외벽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유기적으로 흐르는 액체 구조물들이 서로 융합하고 흩어지며 공간 전체를 감싸 안는 시각적 통합을 이뤄냈다. 이 빛의 향연은 건축물의 물리적 경계를 허물고 하늘과 땅을 하나로 연결하며, 균형 잡힌 공존의 감각을 일깨웠다.

정교한 빛의 설계는 고전적 건축미 위에 현대적 감성을 덧입혀 관람객을 조화로운 예술적 몰입의 세계로 인도했다. 사진제공|CNTB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Zagreb)에서 3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제8회 ‘빛 축제 자그레브(Festival svjetla Zagreb)’가 열렸다. 자그레브 관광청이 주최하고 자그레브시가 지원한 이번 축제에는 시내 21개 장소에 26점의 조명 설치 작품이 배치됐으며, 체코, 프랑스, 독일, 슬로바키아, 스페인 등 5개국 작가들이 참여해 10건의 국제 협업 작품을 선보였다. 모든 프로그램은 매일 오후 6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무료로 운영됐다.

성모 상 뒤로 화려한 빛 축제가 진행 중이다. 크로아티아는 가톨릭이 약 83~88%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다. 사진제공|CNTB

7개 장소에서 시작된 빛의 연대기

빛 축제 자그레브는 2017년 첫 회를 시작했다. 당시 자그레브 구시가지 7개 장소에서 최신 조명 기술을 활용한 시청각 설치 작품과 프로젝션을 선보이며 출발했다. 이 행사를 기획한 자그레브 관광청(Turistička zajednica grada Zagreba)은 매년 봄, 도시가 겨울에서 깨어나는 시점에 빛을 매개로 공공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같은 해 축제는 베를린, 뉴욕 등이 참여하는 국제 빛 축제 네트워크 ‘페스티벌 오브 라이츠 인터내셔널(Festival of Lights International)’에 가입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축제는 해마다 장소와 작품 수를 확장했다. 2024년 7회 때는 22개 장소에 25점의 작품을 배치했고, 올해 8회에는 21개 장소 26점으로 국제 협업 비중을 크게 높였다. 참여 국가도 회를 거듭하며 늘어나 올해는 5개국 작가가 전체 작품의 약 40%를 맡았다.

자그레브의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인 로트르슈차크 탑(Kula Lotrscak)이 란코 스칸시(Ranko Skansi)의 연출 아래 등대(Svjetionik)라는 이름의 화려한 조명 쇼(SVJETLOSNI SHOW)를 선보이며 도시의 밤을 밝혔다.매일 18시 30분부터 23시까지 운영된 이 전시는 탑의 꼭대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줄기를 통해 자그레브 빛의 축제(Festival svjetla Zagreb)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 어둠을 가르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푸른 빛은 긴 겨울 끝에 찾아온 봄의 전령사처럼 도시 곳곳을 비추었으며,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축제의 역동적인 기운을 전했다. 역사적 유산과 현대적 조명 기술이 결합한 이 작품은 도시의 상징적 공간을 재해석하며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진제공|CNTB

정교한 애니메이션과 화려한 시각 효과가 결합한 이 작품은 자그레브 빛의 축제(Festival Svjetla Zagreb) 현장을 찾은 이들에게 잊지 못할 예술적 몰입감을 제공했다. 다만, 강렬한 빛의 산란이 포함되어 광과민성 간질 환자에게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 사항이 동반되었다.

포브스와 유럽 베스트 데스티네이션스가 동시에 주목한 해

올해 축제는 국제적 위상 면에서 전환점이 된 해이다. 유럽 베스트 데스티네이션스(European Best Destinations)는 전 세계 여행자 투표로 257개 행사 가운데 월별 1건씩 총 12개를 선정했는데, 빛 축제 자그레브가 당당히 명단에 올랐다. 모나코 그랑프리, 밀라노 동계올림픽 등과 나란히 이름을 걸었다. 포브스(Forbes) 역시 이 축제를 2026년 유럽에서 방문할 만한 최고의 행사로 꼽았다. 자그레브 시장 토미슬라브 토마셰비치(Tomislav Tomašević)는 개막식에서 이 사실을 직접 언급하며 축제의 국제적 성장에 자부심을 표했다.

바다를 주제로 시작해 세계 물의 날에 막을 내리다

올해 축제가 특별했던 이유는 환경 메시지의 깊이에 있다. 개막 행사는 3월 18일 오후 7시 그라데츠 고원(Plato Gradec)에서 열렸으며, 개막작 ‘블루 펄스(Blue Puls)’는 3D 매핑 기법으로 관객을 바닷속으로 안내하며 기후변화와 플라스틱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세계자연기금 아드리아 지부(WWF Adria)와의 협력으로 제작됐다. 자그레브 관광청장 마르티나 비에넨펠트(Martina Bienenfeld)는 “바다를 주제로 시작해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에 맞춰 마무리하는 구성”이라고 설명했다. 축제 기간 전체가 하나의 환경 서사로 연결된 셈이다.

자그레브의 그라데츠 고원(Plato Gradec)은 블루 펄스(Blue Pulse)전시가 시작되자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한 강력한 메시지의 장으로 변모했다.18시 30분부터 23시까지 10분 간격으로 투영된 이 고해상도 매핑 영상은 유서 깊은 건물 외벽을 거대한 수족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어둠 속에서 푸른 빛과 함께 등장한 돌고래와 다채로운 산호초는 관람객들을 신비로운 심해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영상미 속에는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과 플라스틱 쓰레기로 고통받는 해양 생물의 현실,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학자들과 어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이 작품은 역사적 건축물 위에 현대적 영상 기술을 덧입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환경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자그레브 빛의 축제(Festival svjetla Zagreb)가 추구하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잘 보여주었다. 사진제공|CNTB

풍선 트램부터 AI 난초까지, 올해의 대표 작품들

올해 축제에서 가장 시선을 끈 작품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 작가 샤를 페티용(Charles Petillon)의 ‘Z.E.T.-자그레브 인클로저 타임(Zagreb Enclosure Time)’이다. 자그레브의 상징인 반 옐라치치 광장(Trg bana Josipa Jelačića)에 놓인 파란 트램을 흰 풍선으로 가득 채운 빛의 캡슐로 탈바꿈시켜, 세대를 관통하는 기억의 서사를 빛으로 입혔다.

스트로스마예르 광장(Trg Josipa Jurja Strossmayera)에 설치된 인터랙티브 작품 ‘오프리스(Ophrys)’도 화제를 모았다. 인공지능 기술과 동작 감지 센서를 결합한 이 작품은 관람객이 몸을 움직이면 메드베드니차산의 희귀 야생 난초가 LED 화면 위에서 실시간으로 피어나는 광경을 연출했다.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건물 외벽 세 면에는 독일 작가들이 제작한 대형 프로젝션이 투사됐고, 클로비체비 드보리 미술관 아트리움은 디스코볼 조명 아래 춤추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메드베드니차(Medvednica) 산에서 자생하는 희귀 보호종 난초인 오프리스 속의 바느질꽃란들을 현대적인 빛과 데이터의 언어로 재해석했다. 인공지능(AI)은 난초의 우아한 형상을 수많은 입자와 빛의 흐름으로 치환하였으며, 이는 관람객의 움직임과 존재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디지털 꽃망울을 터뜨렸다. 첨단 기술로 구현된 이 눈부신 시각적 경험은 우리 곁에 현존하는 메드베드니차의 자연적 가치와 이를 보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관람객들에게 깊이 있게 전달했다. 사진제공|CNTB
사진제공|CNTB

올해 처음 선보인 FOL(Festival of Lights) 모바일 앱은 구글 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었다. 21개 장소의 위치와 각 작품 상세 정보를 확인하고 관람 동선을 미리 계획하는 기능을 갖춰, 처음 자그레브를 찾은 방문객도 길을 잃지 않고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한국에서 자그레브 가려면?

티웨이항공이 2026년 7월 2일부터 10월 24일까지 인천-자그레브 직항을 주 3회(화·목·토) 운항 할 예정이며, 비행시간은 약 11시간이다.

유럽 주요 도시를 경유해 ‘두 도시 여행’을 즐겨도 좋다. 터키항공은 이스탄불을 거쳐 자그레브,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로 매일 운항한다. 루프트한자를 이용하면 프랑크푸르트나 뮌헨을, 폴란드항공은 바르샤바를 경유할 수 있어 이색적인 여행 일정을 계획할 수 있다.

트램으로 누비는 자그레브

자그레브 시내 교통의 중심은 트램이다. 자그레브 카드(Zagreb Card)를 구매하면 시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실연 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초콜릿 박물관, 자그레브 시립 박물관, 현대미술관, 니콜라 테슬라 기술 박물관, 자그레브 동물원 등 주요 관광지에 무료 입장할 수 있다. 24시간권과 72시간권이 있으며, 반 옐라치치 광장의 관광안내소와 공항에서 구매 가능하다.

자그레브의 핵심 관광 지역은 도보로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아기자기하고 알차다. 어퍼타운의 성 마르코 성당, 돌라츠 재래시장, 로트르슈차크 탑, 그리고 로어타운의 녹색 말굽 공원 지대가 대표적인 명소이다. 에스프레소 한 잔이 약 1.5유로(약 2,300원), 현지 식당 식사가 10~15유로(약 1만5,000~2만3,000원) 수준으로 서유럽 주요 도시 대비 합리적인 물가도 자그레브의 매력이다. 크로아티아는 2023년 1월부터 유로화를 공식 통화로 채택했으므로 별도의 환전 없이 유로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자그레브에서 출발하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차량 약 2시간), 아드리아해 연안의 스플리트(차량 약 3시간 30분), 그리고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차량 약 6시간 또는 국내선 항공 약 1시간)까지 연결되므로 크로아티아 일주의 출발 거점으로도 적합하다.

빛 축제 자그레브에 관한 상세 정보는 공식 웹사이트(festivalsvjetlazagreb.hr)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크로아티아 전반의 여행 정보는 크로아티아관광청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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