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복의 샤넬’에서 ‘절벽 엉덩이 옷’으로 추락한 이 기업은[오찬종의 매일뉴욕]

오찬종 기자(ocj2123@mk.co.kr) 2026. 3. 2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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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종 기자의 매일뉴욕-룰루레몬(Lululemon) 편
한때 ‘요가복계의 샤넬’, ‘레깅스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며 전 세계 여성들의 워너비 아이템으로 군림했던 룰루레몬(Lululemon)이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최근 룰루레몬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입니다. 2024년 연간 매출 1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상징적인 금자탑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지난 1년간 주가가 사실상 반토막이 났죠.

룰루레몬 1년간 주가 추이
한 벌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 고가임에도 ‘안 입은 것 같은 착용감’ 하나로 시가총액 250억 달러의 거인이 된 애슬레저 제국이 흔들리는 이유는 뭘까요. 그 시작은 역설적이게도 룰루레몬의 자부심이었던 ‘제품력’의 붕괴였습니다.
룰루레몬을 입으면 엉덩이가 납작해 진다
2024년 야심 차게 출시했던 ‘브리즈쓰루(Breezethrough)’ 레깅스. ‘Y’자형 봉제선이 오히려 몸매를 망친다며 혹평을 받았다.
2024년 야심 차게 출시했던 ‘브리즈쓰루(Breezethrough)’ 레깅스의 판매 중단 사태는 치명적이었습니다.

보통 프리미엄 레깅스는 엉덩이 라인을 살려주기 위해 ‘V’자 형태나 완만한 곡선의 ‘U’자 봉제선을 사용합니다. 이는 시각적으로 힙업 효과를 주고 엉덩이의 입체감을 살려줍니다.

룰루레몬은 신제품 브리즈쓰루에 독특한 ‘Y’자형 봉제선을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이 선이 엉덩이의 가장 높은 지점을 가로지르거나 너무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엉덩이의 입체감을 죽이고 평평하게 눌러버리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입으면 몸매가 못생겨보이는 치명적 단점이 생긴거죠.

출시 직후 틱톡(TikTok)과 레딧(Reddit)을 중심으로 “내 엉덩이를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혹평이 쏟아지자, 룰루레몬은 출시 수주 만에 제품을 전량 회수하고 온라인 페이지를 폐쇄했습니다.

이 같은 논란은 30% 이상의 가격 프리미엄을 탁월한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던 룰루레몬의 설계 역량에 심각한 의문을 던졌습니다.

신제품은 ‘비침 논란’ 터지자 “속옷 입어라” 해명해 빈축
비침 논란에 빠진 룰루레몬 레몬의 신제품 레깅스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후 절치부심해서 올해 초 내놓은 신제품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2026년 1월과 2월, 야심 차게 내놓은 신상 레깅스들이 연달아 ‘비침(See-through)’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스쿼트를 할 때 속옷이 비치는 치명적인 결함이 지적됐죠.

논란 끝에 룰루레몬은 출시 며칠 만에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이후 재판매에 나서면서 “한 사이즈 크게 입고 살색 속옷을 권장한다”는 궁색한 안내문을 달아 이용자들의 빈축을 샀습니다.

시장 분석가 닐 손더스(Neil Saunders)는 룰루레몬이 기술 혁신보다는 브랜드 로고를 앞세운 ‘패션 아이템’ 출시에만 급급하다 보니 품질 관리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고뭉치 창업자와 포식자 행동주의펀드의 습격
인종차별 논란으로 경영에서 물러난 칩 윌슨 창업자
이 같은 위기 상황 속 발생한 경영 공백은 룰루레몬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2025년 1월, 지난 7년간 룰루레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켈빈 맥도널드 CEO가 잇단 논란에 책임지고 사임했습니다. 그는 매출을 3배 넘게 키워놓은 ‘성장의 주역’이었지만, 동시에 창업자 칩 윌슨과는 사사건건 부딪치던 인물이었죠.

그가 떠나자마자 룰루레몬에는 거대한 리더십 공백이 생겼습니다. 이 틈을 타 야인이었던 창업자 칩 윌슨이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합니다. 그는 조용히 이사회를 설득하는 대신, 전 세계 투자자들이 다 보는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전면 광고를 실어버리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경영에서 쫓겨난 뒤 본인이 만든 회사를 비난하는 신문 광고를 낸 창업자 칩 윌슨
광고의 내용은 명확했습니다. “지금의 이사회는 창의성도 없고, 브랜드의 영혼을 이해하지 못하니 전원 교체하라”는 것이었죠.

룰루레몬이라는 거함이 안팎으로 흔들리자, 월스트리트의 가장 무서운 포식자도 냄새를 맡고 나타났습니다. 바로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입니다.

올해 초 주가가 폭락하자 엘리엇은 약 10억 달러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며 주요 주주가 되었습니다.

엘리엇은 현재의 임시 체제를 “책임 회피”라고 비판하며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거물급 CEO 영입과 주주환원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5억달러 짜리 깡통이 되어버린 M&A
룰루레몬이 5억 달러 전액 현금으로 인수했지만 결국 폐업 수준이 되어버린 ‘미러’ 사업부
실제 실적 지표도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지난 4분기 미주 지역 순매출이 4% 하락했습니다. 이는 3년 전 5억 달러를 들여 인수한 홈 트레이닝 업체 ‘미러(Mirror)’는 사실상 폐업 수준의 ‘빈 깡통’으로 전락한 것도 주효했죠.
리바이스 전설 경영자 영입하며 절치부심
룰루레몬 중국 매출 추이
룰루레몬은 지난 17일, 결국 쇄신 카드를 꺼냈습니다. 칩 윌슨이 반대해온 데이비드 무사퍼 이사를 내보내고, 그 자리에 리바이스(Levi’s)의 전설적인 경영자 칩 버그(Chip Bergh)를 이사로 영입했습니다. 다만 아직 CEO 자리는 여전히 공석입니다.

이와 함께 룰루레몬은 연말까지 강력한 ‘전략적 리셋’을 예고했습니다.

첫째, 제품 라인업의 획기적 쇄신입니다. 룰루레몬은 신제품 비중을 현재 23%에서 2026년 봄까지 35%로 대폭 확대할 계획입니다.

둘째, 중국 시장이라는 확실한 엔진 강화입니다. 현재 북미의 부진을 중국이 상쇄하고 있습니다. 2024년 중국 본토 매출은 41% 성장하며 1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비록 지난 해 성장세가 다소 둔화되는 조짐이 있으나, 중국의 중산층 사이에서 룰루레몬은 여전히 최고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통하고 있습니다.

룰루레몬은 지금 거대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과 창업자 칩 윌슨의 압박 속에서 실질적인 타개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특히 아직까지 현재 공석인 CEO 자리에 누가 앉느냐가 룰루레몬의 향후 10년을 결정할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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