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갔지만 클럽은 못간 ‘여자 찐따’, 좀 웃기지?”···아름다움 강요에 덤덤히 맞서기

얼마 전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은 ‘아름다움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뷰티학 개론> 영상을 올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100만 조회수를 넘고, 숏폼 영상은 더 많이 퍼져 나갔다. ‘피식대학’은 과거 <무한도전>처럼, 하위주체 남성들의 애환을 내세우며 큰 인기를 끌었던 코미디 크루다. 지역 비하 발언과 젠더 감수성의 부족으로 잠시 인기가 주춤했던 피식대학은 한 귀인을 맞이한다. 이번 사이버 강의 <뷰티학개론>을 진행한 원소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원소윤은 누구인가? 영화 <전우치>의 명대사를 빌려 소개한다. 쿵짝쿵짝. “원소윤은 무엇이냐? 원소윤은, 자조를 다스리고 마른하늘에 여자찐따라는 캐릭터를 내리게 하고. 채식을 접어 다니며. 서울대라는 날카로운 학벌은 바람처럼 휘두르되 꽃처럼 다룰 줄 아는, 가련한 사람을 웃기는 것이 원소윤의 일이다! 인생은 어차피 한바탕 농담, 이렇게 말하는 나는, 『꽤 낙천적인 아이』(민음사, 2025)>” 작가이자 코미디언 원소윤은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콘텐츠에서 “(아무나 못 가는) 서울대는 갔지만, (아무나 들어간다는) 클럽은 못 간” 여자로 단번에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진지하고 담담한 어조로 서울대와 클럽을 병치하는 전개는 허점을 찔렀다. 동시에 연관 검색어로 ‘페미’가 붙을 만큼 사상 검증의 위협이 따라다니지만 채식한다는 사실이나 페미니즘적 통찰을 무심하게 드러내는 원소윤은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불모지 사이에 피어난 여성 코미디언.”
‘뷰티학 개론’은 제목과 달리, 내용상으로는 아름다움 권하는 사회에서 좌절하고 위축되는 감정을 다룬다. 주체는 원소윤과 당사자성을 공유하는 ‘범생이’. 범생이에게 뷰티는 인생의 해결하지 못한 과제이고, 그래서 취미나 재미로 화장하는 이를 보면 분노를 느낀다고 고백한다. 이는 피식대학의 사이버 강의 콘텐츠 ‘너드학개론’이 코미디언 정재형의 ‘찐따 정체성’을 내세우며 흥한 것과 일부 겹치는 전략이다. 너드학개론은 ‘잘난 놈’이 아니라 통상적으로 ‘못난 놈’ 취급받는 이들을 조명하고, 찐따와 너드를 구별하는 쓸데없이 정확한 구별법을 설파한다. 사회성이 부족하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고, 멋이나 여유와는 거리가 먼 찐따의 애환은 많은 이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다. 피식대학과 너드학개론이 내세우는 찐따가 남성 청년의 얼굴이라면, 원소윤은 뷰티학 개론에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여자 찐따’를 범생이로 세분화하여 소개한다. 범생이는 찐따 중에서도 준법 정신이 추가된 인물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규칙과 규범에 순응한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다 사회적으로 꾸며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면, 세상의 기준에서 너무 동떨어지지 않고자 화장과 치장을 시도한다. 그러나 뷰티는 타고난 센스, 멋, 꾸준함, 실패를 견디는 배짱의 영역. 범생이는 한계에 부딪친다. 자료(뷰티 크리에이터의 영상)는 너무 길거나 정량적이지 않고, 예뻐지고 싶은 욕망은 범생이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감히? 네가?

여자는 예쁘게 태어나면 고시 3관왕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외모를 중시하는 세상이지만,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들의 욕망은 조롱과 비하의 대상이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지성을 양극단에 놓는 이분법은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동시에 멸시하도록 하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깊이의 가능성을 박탈하며, 지나치게 여성스럽지 않음으로써 지성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그 속에서 범생이는 고군분투한다. 원소윤은 그 필사적이어서 애처롭고 진지해서 웃긴 범생이의 고군분투를 ‘문화지체현상’, ‘도구의 발견’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진짜 강의처럼 끌어나간다. 외래어가 너무 많은 화장품이나 퍼스널 컬러 같은, 뷰티 산업의 못마땅한 기술을 은근슬쩍 비판하거나 교정기와 피어싱을 ‘메탈’의 범주에 넣으며 꾸밈으로 간주하는 너스레는 웃음을 더한다. 이 과정에서 우스운 대상이 뒤바뀌기도 한다. 뷰티 크리에이터 씬님은 원소윤에게 비비크림 바르는 법을 묻는다. 그리고 피부 결을 살리거나 두드리는 기술 없이 펴바르는 일명 아빠 스킨 권법에 경악하며 무엇이 문제인지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자 원소윤이 심드렁하게 묻는다. “그럼 내가 피부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웃음이 터진다. 그 순간 우스꽝스러운 것은 범생이가 희화화하는 자신의 외모가 아니라 뷰티산업의 유난스러운 온갖 기술이다. 따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떠는 호들갑과 공포 마케팅이 얼마나 아무렇지 않은지 드러난다. 그래서 뷰티학개론을 보고 나면 무엇이 그토록 부끄럽고 수치스러운지를 더 생각하게 한다.
작년 초, 신데렐라라는 비유가 아깝지 않을 만큼 화려하게 등장한 원소윤의 개그는 주로 이런 전개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축을 틱, 무너뜨리고 별 것 아닌 듯한 문제를 슥 들어 올린다. 진지한 척 하지만 비장하지는 않다. 종종 택견처럼 보인다. 서울대를 나왔더니 자기소개서를 봐달라거나 과외를 문의하는 사람은 많은데, 인생 네컷 찍자는 새X가 없다거나 자취한다고 소문을 냈더니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농담은 학벌이나 성적 매력처럼 무언가를 소유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 딴죽을 건다. 개인의 디그니티와 밀접하다고 여기는 학벌, 성적 매력, 채식이라는 신념, 여성주의적 관점처럼 거룩해지기 쉬운 것들을 내던지거나 자조한다. 그러니 상대의 심기를 긁는 피식대학의 <긁> 콘텐츠에서도 원소윤은 대체로 타격이 없다. 물론, 이렇게 비판할 수 있다. 그건 원소윤이 진짜 고학력자이기에 가능한 농담이고, 고학력자를 향한 호의와 학벌주의가 그 농담을 완성한다고. 자취한다고 소문내서 남자와 썸씽을 기대하는 농담은 1인 가구 여성의 안전 문제를 간과하고, 안 팔리는 여자라는 자조는 여성에 대한 인식을 오염시킨다고. 동시에 평생 놀림당하던 대상이 스스로 놀릴 때의 차이도 생각할 수 있다. 누가’, ‘무엇을’ 웃기다고 결정하는지의 권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원소윤의 주 무대는 스탠드업 코미디 현장이다. 마이크 하나로 관객을 휘어잡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다른 형식의 코미디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금기와 위반을 중심 소재로 삼는다. 유머 자체가 본질적으로 위반과 전복적 성격을 띠지만 요즘처럼 정치적 올바름이 중요한 화두인 시대에는 이 유머의 공격성과 방향도 중요한 논쟁의 대상이다. 약자를 향하는 유머는 비겁하다는 것이 정치적 올바름의 상식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도식은 결국 언급 자체를 기피하면서 특정 정체성 자체를 금기하거나 비가시화하는 문제를 초래하기도 했다. 놀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이 별일 아니며 웃음의 현장에 함께 있는 성원이라는 감각을 공유하기도 한다. 성적 매력이 없는 여자는 여자도 아니라고 윽박지르는 세계에서, 원소윤은 털레털레 걸어 나와 ‘나 안 팔리는 여잔데, 쫌 웃기지?’라고 말해버린다. 피식 따라 웃어버리며, 매력적으로 보이고자 애썼던 노력을 털어놓는 댓글이 유튜브에 달린다. 웃음은 기본적으로 침투력이 있다. 배제되거나 관심 받지 못했던 존재가 ‘웃긴 애’가 될 때 그는 공동체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리를 얻는다. 그 농담이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아닌지만큼 중요한 것은 상호작용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이다. 비슷한 예로, 최근 온라인상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의 코미디언 맷 라이프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들 수 있다. 그는 인종과 젠더, 장애, 가정폭력 같은 주제까지 농담으로 삼으며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다. 맷 라이프에게 놀림 받은 장애인 관객이 “장애인도 웃음 소재로 써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장면은 아주 유명하다. 누구든 일단 다 놀리고 보는 공연에서는, 차별과 배제의 원인인 장애가 도리어 ‘눈에 띄어 주목 받을 수 있고’, ‘이곳에서만은 놀림의 대상 될 만큼 별 것 아닌’ 특성으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맷 라이프의 개그는 차별적이면서 전복적이다.
페미니즘과 고학력, 채식이라는 축을 둔 원소윤은 어떤 기대 속에 있다. 그리고 본인은 그 기대를 기꺼이 배반할 준비가 되어있는 듯하다. 유머가 정치적 올바름/올바르지 않음이라는 이분법만으로 판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무해하고 웃긴 농담이 최고겠지만 인생이 그렇게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서, 한껏 고고한 척하다가도 해롭거나 유치한 농담에 웃어버리는 게 인간이다. 유머는 그 자체로 이중적이고 양가적이라 어떤 농담은 해롭고 부적절한 동시에 저항적이고 해방적일 수 있다. 그 자체로는 올바르지 않은 발언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의미가 될 수 있다. 원소윤이 그 간극과 맥락 사이를 자유롭게 뛰놀며, 고유하고 걸출한 이야기를 실컷 풀어내기를 기대한다. 그가 너그러운 관객 속에서 시행착오를 잔뜩 경험하기를 바란다.

이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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