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방, 차마 치울 수 없었네[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침대에 놓인 곰 인형, 문손잡이에 겹겹이 걸어둔 머리끈, 빗에 얼기설기 낀 머리카락, 닫지 못한 치약 뚜껑…. 정돈되지 않은 방들은 그 주인이 언제 뛰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입니다.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아이의 방’이라는 걸 한눈에 보여줍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제 이름을 여기저기 남겨 둬서 자기주장도 확실하죠.
하지만 우리는 이 방의 주인공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곰 인형과 빗의 주인 재키, 머리끈의 주인 샬롯, 치약의 주인 알리시아…. 미국의 서로 다른 지역에 살던 이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2022년, 2012년, 2018년. 각자 다니던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입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텅 빈 모든 방>(All the Empty Rooms)은 미국에서 매년 끊이지 않는 학교 내 총격 사건으로 죽은 아이들의 방을 찾습니다. 이는 미국 CBS의 기자 스티브 하트먼의 제안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CBS 이브닝 뉴스에서 세상의 미담을 전하는 ‘온 더 로드’라는 코너 등으로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기자’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총기 난사와 같은 끔찍한 소식 속에서도 인류애를 회복시킬 만한 미담을 찾아야 하는 게 그의 역할이지만, 하트먼은 “더는 학교 총격 사건에서 긍정적인 관점을 찾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되풀이되는 참사에 하트먼 자신을 비롯한 미국인들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경각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트먼은 학교 총격 사건이 사회로부터 어떤 것을 앗아가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살해당한 아이들의 방을 찾습니다. 참사로부터 수년이 흘렀는데도 아이들이 쓰던 그대로 남겨진 방들입니다. 아이의 냄새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 세탁하지 않은 옷가지와 애착 담요가, 흐트러뜨리고 간 흔적조차 기억하고 싶어 정돈하지 않은 채 둔 잡동사니가 그대로입니다. “매일 방을 들러 아침 인사를 해요.” 부모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아이는 떠났지만, 치우지 못한 그 방이 자신들에게는 위안과 추억의 장소라고요.

하트먼과 동행한 사진작가 루 보프는 그 방의 전경과 작은 물건들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사람이 없는 걸 찍는 프로젝트는 처음”이라는 그는 오랜 친구인 하트먼에 대한 신뢰로 이 작업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사람은 없지만, 물건으로 꽉 찬 방을 배경으로 부모와 형제들은 세상을 떠난 그 아이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꿈꿨으며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희미한 미소와 함께 행복했던 순간을 이야기하다가도 눈가에는 눈물이 맺힙니다. ‘바로 이 방’에서 춤추고 뛰놀던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적막한 현재의 방과 교차해 제시됩니다.
35분 남짓으로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함께 슬퍼져서 잠깐 멈추기를 반복하다 보면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는 다큐멘터리입니다. 6세부터 15세까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방에는 그 동심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더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학교 총격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동기를 분석하는 뉴스가 쇄도하기 바쁠 텐데요. 이 다큐멘터리에 가해자 서사는 낄 자리가 없습니다. 총격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었는지, 그들을 잃은 가족들이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만을 온전히 담습니다.

<텅 빈 모든 방>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습니다. 9살에 세상을 떠난 재키의 어머니 글로리아 카자레스는 시상식 무대에 제작진과 함께 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로부터 재키의 방의 시간은 멈췄습니다. 재키는 단순 머리기사가 아니라, 우리의 빛이자 삶이었어요. 총기 사건이 (미국에서) 아동·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된 지금, 재키를 비롯한 아이들의 텅 빈 방을 다들 본다면 미국은 달라질 거로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CBS뉴스가 2024년 공개한 인터랙티브 페이지(cbsnews.com/rooms)에서는 아이들의 방 사진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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