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는 남는데 읽을 수 없다… 저장 기술의 역설 [권용만의 긱랩]

권용만 기자 2026. 3.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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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기술의 진화와 세대 교체, 커지는 ‘로스트 미디어’ 위기

정보화 시대와 인터넷 시대를 거치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늘날은 가히 '데이터 폭발'의 시대라 불린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최근 몇 년간 생성된 데이터의 양이 문명 시작 이후 최근까지 축적된 데이터보다 더 많다는 말로도 표현으로도 설명된다. 이처럼 축적된 데이터는 인류의 기록으로 남고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이를 쉽게 찾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인터넷 시대 이후 생성된 데이터의 상당수는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사라졌다. 블로그 등 플랫폼 서비스 종료와 같은 이유도 있고, 이 과정에서 백업해두었다고 믿었던 데이터조차 실제로는 복구할 수 없는 사례도 적지 않다.  3월 31일 '세계 백업의 날'을 앞두고, 우리가 믿고 있던 백업이과연 안전했는지 돌아볼 시점이다. 
블루레이 드라이브의 다음 세대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권용만 기자

광학 미디어 시대, 블루레이 시대를 마지막으로 저무는 중

고용량, 장기 보존 미디어의 상징 같은 존재였던 디스크형 '광학 미디어'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CD(Compact Disc)를 시작으로 DVD(Digital Versatile Disc)를 거쳐 블루레이(Blu-ray)로 이어진 진화는 미디어 업계의 중심이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넘어가면서 사실상 멈췄다. 블루레이를 대체할 다음 세대 광학 미디어는 등장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 기반도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CD 시절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업체들이 드라이브를 만들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시장에서 철수했거나 철수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2014년 광학 드라이브 시장에서 도시바와의 합작법인 TSST의 지분을 정리하면서 철수했고, LG전자도 지난 2024년 가전용 블루레이 플레이어 생산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PC용 블루레이 드라이브도 2017년 이후 신제품이 없다.

최근에는 소니가 블루레이 디스크 레코더 시장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블루레이 디스크 레코더'는 녹화기 기능이 포함된 가전 형태이지만, 블루레이 기술의 시작과 보급에 큰 역할을 한만큼 상징성이 있다. 소니는 2025년 기록용 블루레이 디스크의 생산 중단을 발표하며 "후속 모델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PC 환경에서는 이미 블루레이 기록 장치를 찾이 어려운 상황이다. 노트북은 광학 드라이브를 제거하는 추세이고, 데스크톱 PC도 5.25인치 베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디어는 25GB 싱글레이어 BD-R 디스크 일부 제품이 장당 1000원 아래로 낮아졌지만 선택지는 줄었고, 기록 시간과 용량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물론 블루레이 생태계 자체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PC 수준에서는 더 이상 거의 사용되지 않고 이제 가전 영역의 '레코더'도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 많은 '플레이어'들이 현역에 있다. 주요 가전 업체들의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3 이후의 콘솔은 게임 뿐 아니라 블루레이 재생 기능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향후 게이밍 콘솔에서 지속적으로 블루레이 드라이브를 탑재할지는 미지수다. 결국 미디어는 있지만 이를 읽을 수 있는 드라이브가 없는 상황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1만년 수명에 도전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젝트 실리카' / 마이크로소프트

미디어 수명 문제, 이제는 '1만년'에 도전

저장 매체의 수명도 지속적으로 진화해 왔다. CD는 이론상 '100년' 수명을 제시했지만 실제 기록 품질에 따라 수년 내 손상되는 경우가 많았다. DVD부터는 미디어 구조가 바뀌면서 내구성이 크게 높아졌고, 개인적으로는 20년 지난 데이터도 아직 읽는데 큰 문제가 없다. 블루레이 또한 개인적으로는 10년 이상 된 디스크도 문제 없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넘어 좀 더 기록 내구성을 강조한 'M-디스크'도 등장했는데, 일반적인 광 디스크와는 차원이 다른 내구성을 제공한다. 

일반 사용자용 오디오 테이프는 이제 구하기도 어렵게 됐지만,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는 여전히 '테이프'를 실용적인 아키이빙용 미디어로 사용한다. 테이프 방식을 이어받은 LTO(Linear Tape-Open) 규격은 2000년 100GB 용량으로 등장해, 최신 LTO-10 규격은 테이프당 40TB(압축 저장시 100TB)를 저장할 수 있다. 기업들은 아카이브 스토리지로 테이프 규격을 기반으로 미디어를 자동으로 갈아끼우고 저장하는 라이브러리까지 조합해 사용하고 있다.

다만 테이프 역시 한계가 있다. 테이프의 수명은 이상적인 보관 환경에서 15~30년 수준이며, 세대간 호환성 문제가 존재한다. LTO 규격은 새 기술 기반 드라이브가 모든 하위 규격을 지원하지 않는다. 즉, 새로운 세대의 드라이브와 장비가 기존 테이프들과 일정 세대 이상 차이가 벌어질 경우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다. 최신 LTO-10 드라이브는 아예 이전 규격과 호환성이 없다. 이에 새로운 테이프 라이브러리로의 전환은 모든 데이터를 읽어 새로운 테이프로 다시 쓰는 대규모 작업이 된다. 

이러한 데이터 보존용 미디어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젝트 실리카'다. 유리에 펨토초 레이저를 사용해 데이터를 기록하는 '프로젝트 실리카'는 이론적으로 저장된 데이터를 1만년 동안 저장할 수 있다. '프로젝트 실리카'는 초고속 펨토초 레이저로 유리 내에 이중 굴절 복셀 형태로 데이터를 기록하고, 읽을 때는 컴퓨터 제어 현미경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최근에는 저장에 사용하는 유리를 저렴한 일반 붕규산 유리로까지 확장했고 기록시 필요한 펄스 수는 두 개까지 줄였으며, 읽는 데 필요한 카메라도 하나로 줄였다.
미디어 수명은 10년 이상도 거뜬하지만, 드라이브 없이는 읽을 수 없다. / 권용만 기자

근본적 질문 '어떻게 읽을 것인가'

디지털 데이터 보존에서 이제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데이터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느냐보다 미래에 이를 실제로 읽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전승이 끊어진 고대 문명의 자료를 오늘날 해석하기 매우 어려운 것과도 같은 의미다. 

이미 우리는 플로피 디스크와 비디오 테이프 등을 '로스트 미디어'로 떠나 보냈고, 기존의 CD나 블루레이 등 광학 디스크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아직 실험실 수준이지만 '프로젝트 실리카' 와 같은 차세대 기술 역시 미디어만 남았을 때 이를 읽을 방법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읽을 수 없는 미디어에 저장된 데이터는 이미 손실된 데이터와도 다를 바 없다.

저장 매체 수준까지 고려한다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백업 전략 또한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3개의 백업본을 2개 이상의 서로 다른 매체, 한 개는 외부 장소에' 저장하는 백업 전략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문제의 핵심은 '보존 기간'이고, 아카이빙 형태로 장기 저장되는 매체는 미디어의 신뢰성 뿐만 아니라 이를 읽을 수 있는 수단의 기술 지속성과 신뢰성까지 따져야 할 때다. 

장기 보존 데이터는 몇 년에 한 번씩은 백업한 미디어를 모두 꺼내 새로운 미디어로 옮겨 줄 필요가 있다. 수십 년 전 비디오 테이프의 영상을 다시 꺼내기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DVD나 블루레이 등 광학 미디어로 남은 데이터들은 아직 시간이 있다. 현실적으로는 이들 데이터도 모두 결국은 하드 디스크로 옮겨, 다른 장기 저장 수단을 탐색할 때다.

장기 보존 수단으로 '클라우드'는 편리하지만 한계가 있다. 서비스 정책 변경이나 계정 문제 등 외부 변수에 따라 데이터 접근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는 보조 백업 수단으로 활용하고, 핵심 데이터는 물리적으로 통제 가능한 위치에 보관한다. 백업의 3-2-1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를 구성하는 백업 미디어 선택이 조금 달라진 셈이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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