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에 100명 넘는 아이들이 사망했다” 이란 전쟁까지 번진 피싱, 기부 마저 막았다 [사기 공화국의 민낯]

정주원 2026. 3. 2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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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싱 범죄 5만건… 2년 만에 두 배로 증가
‘중동 전쟁’ 관련 피싱 신고 800여건 기록
코로나 등 이슈 때마다 ‘외피’ 바꾸는 양상
유가·방산 화제주 빙자 투자리딩방 유인 문자 [경찰청 제공]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피싱 범죄가 나날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그 수법 역시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동 전쟁’이라는 시의성 높은 국제 이슈를 ‘포장지’로 활용한 신종 피싱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피싱 범죄 발생 건수는 2023년 2만2027건에서 2024년 4만2565건, 지난해 5만2185건으로 증가했다. 불과 2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범죄 자체도 더욱 조직화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9월부터 5개월간 특별단속을 벌여 총 2만6130명을 검거했는데, 이 과정에서 해외 거점과 점조직 형태의 범죄 조직 운영 구조를 다수 적발했다.

이처럼 몸집이 커진 피싱 범죄는 단순한 금융사기를 넘어 이제는 ‘사회적 이슈’를 활용한 사칭 범죄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중동 정세가 주요한 소재로 등장해 우리 일상 전반으로 침투하고 있다.

“난민 돕는다”는 문자까지 의심
‘중동 전쟁’ 관련 피싱 확산 계속
보이스피싱 범죄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중동 전쟁 이후 관련 키워드를 활용한 피싱 시도는 빠르게 늘고 있다.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에 따르면 중동 관련 피싱 신고는 이달 들어 1주차 때 405건에서 2주차 때 816건, 3주차 때 832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이번 피싱 범죄가 눈에 띄게 변화한 지점은 기존 유형보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동 전쟁 이후에는 “난민 구호를 위해 기부금을 보내달라”는 문자들이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선단체가 발송한 정상적인 기부 안내와 큰 차이가 없어서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기부 요청 문자조차 “피싱이 아니냐”며 신고를 접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이달 14일 오후 8시20분께 1394 신고대응센터에는 중동 난민 구호 기부 요청 문자의 진위를 묻는 신고가 접수됐으며 유사한 문의가 3~4건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의 확인 결과 해당 문자는 실제 자선단체가 발송한 정상 안내 문자였다.

문자에는 “폭격 속 중동지역 아동들을 위해 구호 활동을 SNS로 전파해 달라”는 내용과 함께 후원 참여를 유도하는 링크가 포함돼 있었다. “폭격으로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사망했다”, “굶주린 아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한다”는 등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제시하며 감정에 호소하는 문구도 담겼다.

특히 모 자선단체의 기부 페이지로 연결되는 링크와 함께 ‘72시간 내 SNS 확산’, ‘후원 참여 요청’ 등의 문구와 해시태그까지 덧붙어 일반 시민들이 접했을 때 정상 캠페인과 피싱 범죄를 구분하기 어려운 형태였다.

경찰청 보이스피싱 통합대응단이 게시한 경고문 [경찰청 제공]

경찰은 이 같은 사례가 향후 또 다른 피싱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전조’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실제 자선단체의 기부 요청 메시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를 모방한 가짜 사이트나 문자로 이용자를 유인하는 피싱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며 “선의를 자극하는 방식의 사칭은 비교적 쉽게 이뤄지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피싱 신고의 상당수는 실제 피해 이후가 아니라 ‘이상하다’는 의심 단계에서 접수되고 있다”며 “그만큼 이용자들의 경계심은 높아졌지만 동시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는 더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피싱 수법들이 등장했다. 실제 항공사 홈페이지와 유사한 사이트로 개인정보 입력을 유도하거나 중동 지역 의사·군인을 사칭하며 텔레그램 등 SNS에서 무작위로 말을 걸어 신뢰를 쌓은 뒤 금전을 요구하는 방식도 나타났다. 무료 책 배포나 중동 관련 콘텐츠를 내세워 개인정보 입력을 유도하는 수법도 반복되고 있다.

사기는 그대로… 포장지만 바뀐다
피싱 범죄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피싱 범죄의 최근 흐름을 보면 공통된 패턴이 반복됐다. 그것은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이를 신속히 반영해 신뢰를 확보한 뒤 링크 클릭과 정보 입력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금융감독원은 이러한 흐름에 따라 여러 차례 소비자경보를 발령해 왔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재난지원금 신청·보험금 지급·고액 아르바이트 등을 미끼로 개인정보를 요구하거나 자금 이체를 유도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후에는 대형 플랫폼의 개인정보 유출 이슈를 악용한 수법이 등장했다. 지난해 말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 때 쿠팡 등을 사칭해 “명의가 도용됐다”거나 “피해보상이 가능하다”고 접근한 뒤 피싱 사이트 접속이나 금융정보 입력을 유도하는 수법이 유독 많았다.

최근에는 정부 정책까지 범죄에 활용되고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으로 속인 스미싱 사례에서는 ‘신청 안내’를 명목으로 URL 클릭을 유도하는 문자가 대량 유포됐고, 금융당국은 이를 확인하고 소비자 경보를 ‘주의’에서 ‘경고’로 상향하기도 했다.

이처럼 피싱은 그때그때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소재를 ‘포장지’로 삼아 확산해 왔다. 그리고 최근 그 자리는 중동 전쟁이 대체하고 있다. 전쟁·투자·항공편 취소까지 다양한 소재가 결합했지만, 범죄 구조는 동일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국제 정세나 경제 상황이 불안할수록 사기 범죄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피싱 범죄는 시사적인 이슈를 활용할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범죄 조직도 그 흐름에 맞춰 빠르게 변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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