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국 250주년 특집①_마운트 버넌] 미국정신의 탄생지이자 초강대국 설계 시작된 곳, 마운트 버넌을 가다

최하경 KHS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2026. 3. 28. 07: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생전 아끼고 잠든 안식처
권력 정점에서 시민으로 돌아와…저택 한쪽엔 노예 숙소와 작업장도 보전

(시사저널=최하경 KHS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올해는 미국 건국 250주년이 되는 해다.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지금의 초강대국이 되기까지 미국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미국의 건국정신이 살아있는 '마운트 버넌'에서부터 서부 개척시대의 성공을 이끈 '뉴욕 이리 운하', 미국 기부문화의 효시 격인 '록펠러센터', 미국인들의 자연 경외사상을 상징하는 '나이아가라 폭포' 등 비밀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시사저널은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놓은 초석 위에 쌓아 올려진 미국의 성공 스토리와 역사의 이면을 10회에 걸쳐 촘촘하게 복기해 본다. [편집자 주]

미국 버지니아주 포토맥 강변의 완만한 언덕을 오르다 보면, 붉은 지붕과 백색 외벽이 조화를 이룬 소박한 대저택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생전에 가장 아끼던 '마운트 버넌(Mount Vernon)'이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후 잠들어 있는 마운트 버넌은 미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사적 유적지 중 하나로 꼽힌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지 워싱턴의 삶과 정신적 유산을 숭상하고, 흠모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매년 엄청난 숫자의 방문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필자가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미국의 이야기를 마운트 버넌에서 시작하려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운트 버넌은 어떠한 곳일까

마운트 버넌은 조지 워싱턴의 증조부인 존 워싱턴이 지금부터 350여 년 전인 1674년에 구입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토지다. 1739년 조지 워싱턴의 이복형인 로랜스 워싱턴이 이 지역을 상속받은 후 마운트 버넌이라 이름 지었다. 하지만 로랜스 워싱턴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다. 이후 조지 워싱턴이 이 땅을 임대해 거주하다가 1761년 완전히 소유하게 됐다. 그의 나이 29세 때였다

이때부터 조지 워싱턴은 마운트 버넌을 삶의 중심지로 삼았다. 그는 대칭 비례 균형을 중시하는 고대 그리스 로마식의 건축 양식을 본 받아 지금의 마운트 버넌을 직접 설계하고 지었다. 

특히 미국 혁명전쟁(미국 독립전쟁으로 불린다) 전후에는 이곳에서 중요한 결정들을 내렸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모든 설계 역시 이 소박하고도 엄격한 농장의 서재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트맥강이 내려다 보이는 마운트 버넌의 베란다 모습. ⓒ최하경

독립전쟁의 중요한 결정 내렸던 장소

필자가 현장에서 직접 마주한 마운트 버넌은 위압적인 궁전의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과 조화를 이룬 풍요로운 농장에 가까웠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물러난 후 고향에 돌아와 쟁기를 잡고 평범한 생애를 마감하고자 했던 조지 워싱턴의 철학이 그대로 투영된 듯 했다.  

실제로 이 저택을 거닐다 보면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우선 포토맥 강가에 확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건물 내에는 조지 워싱턴 가족의 유물과 당시 사용했던 가구들도 잘 보존돼 있다. 그가 마운트 버넌의 흙을 밟으며 고민했던 '공화주의의 가치'는 25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의 튼튼한 뼈대로 남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조지 워싱턴이 현대 민주주의 역사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역설적으로 '명예로운 퇴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총사령관이었고,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국부로 미 연방 정부의 초대와 2대 대통령을 지냈다. 주위 관료들이나 의회 지도자들은 3대 대통령으로 그를 강력히 추천했다.

기념관 입구에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문구가 표시돼 있다. ⓒ최하경 

측근 만류에도 불구 시민 품으로

하지만 그는 이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2대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나는 이제 포토맥 강가에서 쉬고 싶다"고 말하고 한 명의 시민으로 돌아왔다. 필자가 마운트 버넌의 뒤뜰에 서서 보게 되니, 권력은 사유물이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잠시 빌린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고뇌했던 한 거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미국의 화려한 건국 뒤에 숨은 차가운 진실도 공존하고 있다. 현재도 저택 한편에는 조지 워싱턴이 부리던 노예들의 숙소와 작업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그의 묘소 옆에는 이 노예들의 묘소 역시 조성돼 있다.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나라를 세운 건국의 주역이 정작 자신의 농장에서는 노예 노동에 의존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은 미국이 시작부터 안고 있었던 거대한 모순의 씨앗이었던 것 같다. 이 제도가 결국 후일에 워싱턴 D.C.의 포드극장이라는 곳에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전 대통령의 암살이라는 비극을 초래하게 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마운트 버넌 내에 위치한 조지 워싱턴 묘소. 바로 옆에는 저택에서 일했던 노예들의 묘소도 조성돼 있다. ⓒ최하경

화려한 건국 이면의 숨은 진실도

조지 워싱턴 역시 죽음을 앞두고서야 "노예들을 해방 시키라"는 유언을 남겼다. 관련 기록을 현장에서 보면서 필자는 우리나라 역사에 나오는 '경주 최씨' 가문을 떠올렸다. 노비로 부렸지만 가족처럼 아끼고, 그들의 제사까지 챙겨줬던 경주 최씨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노예묘를 조성해 놓은 조지 워싱턴의 배려는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정한 리더십이란 결국 인간에 대한 예의와 책임에서 완성된다는 진리를 이 이국의 무덤가에서 다시 한번 배우게 된 것이다. 아울러 오늘날 소위 '미국정신'의 기초를 정립한 그분의 고귀한 사상적 배경의 중심지였던 마운트 버넌의 산책로를 걸으며 미국은 결코 단숨에 완성된 나라가 아니며, 수많은 영웅의 헌신과 치명적인 모순이 뒤섞여 빚어낸 거대한 용광로라는 사실도 새삼 느끼게 됐다.

마운트 버넌 정문에서 촬영한 필자 모습. ⓒ최하경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