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의 비밀 연습실은 어디? '타짜 고광렬' 탄생시킨 파주의 한 둑방

당신이 잘 몰랐던 배우 유해진<3>
“우리에서 나오기 전 맹수들 같았죠. 감독은 그런 장면을 볼 때 정말 행복합니다.”
곽경택 감독이 2015년 6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극비수사’(2015)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한 말이다. 유괴사건을 수사 중인 형사 공길용(김윤석)과 역술인 김중산(유해진)이 첫 대면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곽 감독은 양쪽에서 등장하는 공길용과 김중산을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 ‘레디 액션’ 소리가 떨어지기 전까지 김윤석과 유해진은 자신들이 해야 할 연기를 반복해서 연습 중이었다.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두 배우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곽 감독에게는 마치 대결을 앞둔 맹수처럼 보였다.
많은 배우들이 그렇듯 유해진 역시 연습벌레다. 타고난 재능이 명연기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유해진은 노력파에 가깝다. 그는 장면마다 두세 가지 연기를 준비해 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이 마음에 드는 연기를 고를 수 있도록 나름 준비를 해가는 거다. 각 연기마다 지독한 연습을 하고서 말이다. 유해진이 감초배우로서는 드물게 주연배우가 되는 과정에서 도약대 역할을 해준 것은 연습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유해진은 여러 인상적인 연기를 남겼다. 지난 25일 관객 1,500만 명을 돌파한 ‘왕과 사는 남자’는 차력쇼 같은 그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영화 중 하나다. 전반부에는 웃음을 유발하더니 후반부에서는 눈물을 자아낸다.

유해진의 명연기로 종종 소환되는 영화 중 하나가 ‘이끼’(2010)다. 유해진은 어느 외진 마을의 사나이 덕천을 연기했다. 덕천은 마을에서 절대권력을 지닌 이장 천용덕(정재영)의 심복이다. 모자란 듯 음흉한 듯 순박한 듯 속을 알 수 없는 덕천이 4분 가량 실성한 사람처럼 천용덕으로 빙의해 그의 악행을 털어넣는 장면이 압권이다. “가서 장부에 도장 찍어오니라. 도장 안 내놓으면 지장이라도 박아오니라. 지장 안 박아주면 손가락이라도 잘라오니라. 손가락 안 내놓으면 멱이라도 따오니라. 멱 안 내놓으면 조상 묘라도 쓸어오니라. 가서 불이라도 질러뿌라….” 유해진은 ‘이끼’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유해진은 실성한 듯한 덕천의 모습을 자신만의 ‘연습장’에서 약 2주일 동안 준비했다. 대본 세 쪽 분량의 대사가 자연스럽게 입에 붙도록 제주도 한 목장을 홀로 거닐며 되뇌고 되뇌었다. ‘이끼’를 위해 제주 목장을 일시적으로 사용했던 유해진에게는 상시 야외 연습장이 따로 있었다. 동료 배우들이 출입하는 곳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오히려 가고 싶어하지 않는 곳이었다. 유해진이 30대 시절 연기 담금질을 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파주 공릉천 둑방이 개인 연습실

유해진은 2003년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로 이사를 갔다. 중산동에 있는 국민평형의 한 아파트였다. 연기 활동을 통해 모은 돈으로 장만한 첫 내 집이었다. 유해진은 2008년 서울 종로구 평창동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중산동 아파트에 살았다.
유해진이 중산동에 거주하는 동안 즐겨찾은 곳이 있었다. 인근 경기 파주시 금촌동 공릉천 둑방이었다. 연기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인적이 드문 곳이지만 당시에는 우범지대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대낮에도 사람들이 접근하기 꺼릴 정도였다. 유해진이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혼자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몸 동작을 크게 만들어보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유해진은 공릉천 ‘개인 연습장’에서 건져 올린 연기로 대중의 환호를 얻었다. ‘왕의 남자’(2005)의 육갑이도, ‘타짜’(2006)의 고광렬도 으슥한 곳에서 정진하듯 연습해 만들어낸 캐릭터들이다. 정겨운 수다쟁이 면모를 지닌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실제 성격은 조용하고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유해진으로서는 연습이 더 많이 필요했을 역할들이리라.
유해진은 공릉천 둑방 뿐 아니라 거주하던 아파트 근처 논두렁에서도 연기 연습을 했다. KBS드라마 ‘토지’(2004)에서 1인 2역으로 친일파 부자(父子) 악역을 맡았을 때다. 중산동은 고양시 외곽 쪽이라 주변에 산과 논밭이 제법 있다.

유해진이 연습을 바탕으로 명연을 펼친다고 하나 순발력 역시 빼어나다. 시나리오에 없던 장면이 촬영 현장에서 추가됐을 때도 그는 탁월한 연기력을 발휘하곤 한다. ‘타짜’에서 고광렬이 고니(조승우) 어머니와 중국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 이 기사는 한국일보의 프리미엄 기사입니다. 더 자세한 기사 내용은 한국일보닷컴에서 로그인 후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링크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 넣으세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2621090001229
시크릿 시네마
-
① 당신이 잘 몰랐던 박찬욱 감독
- • 초보 감독 박찬욱에게 주연 배우가 던진 질문 "영화 줄거리가 뭐죠?"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91502520001939) - • “내가 추천한 영화 재미없다고 발길 뚝” 비디오점 운영 실패에 유학 고민 ‘박찬욱의 시련’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92512130001927) - • ‘JSA’ 대신 ‘아나키스트’ 메가폰 잡았다면… 박찬욱 운명 가른 일주일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93012450005344) - • 단편영화 한 편이 '히치콕 숭배자' 박찬욱의 영화인생을 바꿨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01311000000538) - • “트랜스젠더 영화 만든 그 친구 없었다면”… 박찬욱을 흔든 한국 감독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11300590001796) - • 한국 영화 최초 205개국 수출… '기생충' 기록 깬 '월드클래스' 박찬욱의 존재감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12001090004144)
- • 초보 감독 박찬욱에게 주연 배우가 던진 질문 "영화 줄거리가 뭐죠?"
-
② 당신이 잘 몰랐던 연상호 감독
- • “첫 장편 애니로 오스카 가겠다”… 무명 신인 감독 연상호의 패기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12715050001783) - • 야외 상영 '19금 애니'에 뛰쳐나간 관객...연상호 이름 알린 첫 작품 '지옥'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0416540003544) - • “나 안 해!” 잠수 탄 연상호 감독… 처음엔 만들 생각 없었던 ‘부산행’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1100540003689) - • 만화방 '중딩'이 칸에 가기까지...연상호 인생 바꾼 비디오 한편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1823190000357) - • “주인공이 왜 감독이랑 똑같이 생겼나요?"...'연기의 달인' 연상호 캐릭터의 비밀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2520240000087)
- • “첫 장편 애니로 오스카 가겠다”… 무명 신인 감독 연상호의 패기
-
③ 당신이 잘 몰랐던 배우 안성기
- • '연기 천재'로 불렸던 안성기…"한심한 놈아" 호통에 밤새 울었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0123410002373) - • 거지옷·승복·군복…안성기의 옷차림에 담긴 연기 철학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0820490004981) - • 안성기와 박중훈의 첫 만남…30m 높이 철제 구조물에서 목숨 걸고 연기했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1423240000516) - • 감독 체포돼 촬영 중단된 '남부군'…그래도 안성기는 포기 안 했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2204420004247) - • 살인범 역할 안성기의 대사는 딱 한마디…빗속 혈투로 명작이 된 영화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2919020001489) - • 감독 믿고 노개런티 출연한 안성기…흥행 성공으로 잭팟 터뜨렸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0601360001340) - • 펑펑 눈물 쏟은 안성기의 명연기...입안의 금니 때문에 영화에서 잘렸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1301260005038) - • 장관도 국회의원도 거절…"영화 외에 한눈팔지 않겠다"던 안성기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1921580001869)
- • '연기 천재'로 불렸던 안성기…"한심한 놈아" 호통에 밤새 울었다
-
④ 당신이 잘 몰랐던 배우 박정민
- • 중3 때 만난 인생영화...결국 박정민은 고려대 중퇴하고 한예종에서 연기 배웠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2701120001893) - • "연기 때려치우고 유학 가겠다" 방황하던 박정민을 붙잡은 한 통의 전화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0601300001170)
- • 중3 때 만난 인생영화...결국 박정민은 고려대 중퇴하고 한예종에서 연기 배웠다
-
⑤ 당신이 잘 몰랐던 배우 유해진
- • "진짜 양아치 데려오면 어떡해"…유해진 모습 보고 영화 제작자가 화낸 이유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1300050004456) - • '촬영 중 배우 사망' 비극…고난 속에 끈끈해진 유해진과 감독 장항준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1923460004581)
- • "진짜 양아치 데려오면 어떡해"…유해진 모습 보고 영화 제작자가 화낸 이유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2508550005269)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2612340000730)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2515120003790)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2318390000450)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2215420002679)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종량제 봉투 많다는데 어디 가서 사나요?"... 과도한 사재기에 구매 제한-사회ㅣ한국일보
- 오세훈 "빨간 점퍼 입고 싶다" 당권파 "격 떨어뜨려"… 국힘, 공천 난맥 지속-정치ㅣ한국일보
- [단독] 배우 이상보 사망… 현재 경찰 수사 중-문화ㅣ한국일보
- "야, 또 터진다"... 韓대사관, 매일 새벽 폭음 속에서도 이란서 버티는 이유-정치ㅣ한국일보
- 주차장서 흉기 찔린 채 발견된 남녀… 20대 여성 심정지-사회ㅣ한국일보
- 장동혁 "우리 당은 왜 대표 중심으로 못 뭉치나"... 박민영 재임명 반발에 격노-정치ㅣ한국일보
- '국힘 심사위원 논란' 이혁재, 룸살롱 폭행 사건에 "법적 책임 다해"-정치ㅣ한국일보
- '캡슐호텔 화재' 중상 입은 50대 일본인 끝내 사망-사회ㅣ한국일보
- 일산서 실종된 50대 남성... 3개월 만에 김포서 숨진 채 발견-사회ㅣ한국일보
- 18세 고교생, 시의원 출사표 던져… 최연소 예비후보-정치ㅣ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