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은 왜 최고의 '프로' 감독인가

김용 2026. 3. 2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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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KBO리그 미디어데이&팬페스트. LG 트윈스 히트상품 소개하는 염경엽 감독. 잠실=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6.03.26/

[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왜 최고의 '프로' 감독인가.

프로야구 감독, 정말 멋진 직업이다. 국내로만 한정해도, 1군 기준 단 10명의 사람만 '감독' 호칭을 들을 수 있다. 정치 권력보다 더 큰 중독성을 자랑한다. 자신의 지휘 아래 선수단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얻어내는 승리의 희열, 직접 맛보지 않고는 그 짜릿함을 알 수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 권위가 중요하다. 카리스마로 표현된다. 프로야구 감독들은 냉철하고, 무서운 이미지다. 그런 이미지가 아니면, 통솔력을 잃는다는 게 전통적인 마인드였다.

LG 트윈스 염경엽 감독도 엄청나게 '무서운' 감독으로 꼽힌다. 야구에 있어 타협이 없다. 그를 거쳐본 코치, 선수들이라면 다 안다.

하지만 26일 열린 미디어데이 시작부터 염 감독은 그 권위를 완전히 내려놓은 모습. 선수들과 등장할 때부터 상의에 인형을 대롱대롱 달고 나왔다. 그러더니 캐릭터 홍보에까지 나섰다. 무슨 사연일까.

이번 미디어데이를 주관한 방송사는 그동안의 식상한 틀을 깨기 위해 감독들에게 '히트상품을 소개해달라'는 코너를 마련했다. 야구 외적 상품이나 이슈를, 감독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로 재밌게 풀어보고자 하는 의도.

26일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KBO리그 미디어데이&팬페스트. 포즈를 취하고 있는 LG 박해민, 염경엽 감독, 임찬규. 잠실=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6.03.26/

하지만 그 의도대로 할 감독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걸 하라고?'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딱히 소개할 게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애매하게 상품이든, 선수든 원하는 걸 소개하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다들 이적해온 선수, 유망주들 얘기를 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염 감독은 달랐다. 몸에 달고 나온 작은 인형을 들어올렸다. '먼작귀' 캐릭터 인형. LG가 올해 처음 콜라보래이션을 진행한 인기 캐릭터였다. 염 감독도 아마 이 행사 전에는 이 캐릭터가 뭔지 잘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행사 코너 취지를 듣고, 나름의 준비를 했다. 이런 컨셉트가 아니었는데, 염 감독 혼자 튀려고 인형을 들고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름을 까먹을까봐 손바닥에 컨닝 페이퍼까지 만들었다.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문보경 얘기도 꺼냈지만, '먼작귀' 홍보에 열을 올렸다.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도 올해부터 주말마다 입기로 한 '검빨 유니폼'을 홍보했지만, 염 감독의 '먼작귀'에 밀리고 말았다.

LG 염경엽 감독 손에 적힌 커닝페이퍼.

프로 구단은 야구로만 모든 게 이뤄지지 않는다. 선수단에 돈이 나가는만큼 돈을 벌어야 한다. 팬 서비스도 해야 한다.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감독들이 신경쓸 영역은 또 아니기도 하다. 그런데 감독이 나서주면 훨씬 좋은 것도 분명하다. 팀의 상징인 감독이 하는 말 한 마디, 손짓 하나에 많은 게 달라진다. 실제 기자도 '먼작귀'가 뭔지 궁금해서 검색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무미건조한 미디어데에 행사 속 염 감독의 '먼작귀' 홍보가 관심의 대상이 됐고, LG 구단 내부에서도 염 감독의 열정적 홍보에 매우 고무된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롯데호텔 월드에서 열린 2026 KBO 리그 미디어데이&팬페스트. LG 염경엽 감독이 출사표를 밝히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6.03.26/

염 감독은 일찍 선수 은퇴를 하고 프런트 생활부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예산이 부족한 팀, 넉넉한 팀 다 거치며 프런트로 코치로, 감독으로 일했다. 우승 단장 겸 우승 감독이다. 야구단이 돌아가는 생리를 그 누구보다 잘 안다. 행사 취지도 살려주고, 자신들의 마케팅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딱딱한 권위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런 깜짝 퍼포먼스(?)가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해 우승팀 감독이고, 좋은 대우를 받고 재계약 했으니 저런 걸 할 여유가 있지 않느냐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똑같은 조건이라도 하기 쉽지 않은 일인 게 분명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프로야구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야구지만, 최근 트렌드는 분명 바뀌고 있다. 팬들은 오로지 성적에 목숨 걸지 않는다. 야구라는 문화 자체를 즐긴다. 현장도 그에 발맞춰 변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염 감독이 이를 잘 보여줬다. 야구까지 잘하니 더 할 말이 없다. 진짜 '프로' 감독의 모습이었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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