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숄티의 원픽, 세기의 디바 조수미…40년째 ‘천상계 공연’
한정호의 클래식 수퍼스타즈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 대통령궁에서 열린 문화 행사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조수미. [중앙포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8/joongangsunday/20260328000305095bqnw.jpg)
1962년생 조수미가 지난 40년간 걸어온 발자취는 재능 있는 성악가 개인의 성취만으로 설명할수 없다. 그는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구축한 음반 중심의 클래식 권력 구조에 편입된 마지막 세대다.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함께 공식 오디션을 통해 이 체제에 진입한 두 사람의 재능은 클래식의 고전적 흥행 시스템과 결합해 공연과 음반의 상업적 역량으로 증폭됐다. 지금도 올림픽급 빅이벤트에 호출되는 두 사람은 르네 플레밍과 더불어 ‘거장 지휘자·음반 산업·오페라 극장’이 삼각 구조로 작동하던 시대의 마지막 주자다.
![1986년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역으로 국제 무대에 데뷔한 조수미. [중앙포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8/joongangsunday/20260328000306440llwm.jpg)
인스타그램 이미지와 팔로워 수가 자본과 기회를 견인하는 시대에, 조수미는 지금도 무대 전선에 현역 가수로 서 있다. 10대 시절 우상으로 삼고 직접 만나 독일 가곡을 익힌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가 조수미의 지금 나이 무렵 모든 무대에서 물러난 것에 비하면 조수미의 현재는 끊임없는 쇄신의 결과다. 202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바리톤 김태한에게 건넨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말은, 오페라 극장 시스템 속에서 그가 겪어온 고단함이 응축된 충언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다잡는 주문처럼 들린다.
1980년대 후반, 메이저급 오페라 극장에 이름이 오르내리기 전의 ‘조수경’ 시절부터 해외 소식으로 전한 ‘음악동아’와 ‘객석’의 영향력에 힘입어 조수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축전으로 고국 무대에 데뷔했다. 서울에서 그의 전성기 기량을 가장 또렷하게 확인한 자리는 1993년 9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중앙일보 주최 리사이틀이다. KBS교향악단을 파트너로,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흰색과 민트색 드레스를 1·2부에 나눠 입은 만 31세의 조수미는 카라얀, 게오르그 숄티, 로린 마젤로 이어지는 오페라 지휘자들이 왜 그를 격찬했는지를 무대로 증명했다.
이날 공연은 선곡, 절정의 테크닉, 곡목 배열, 앙코르에 이르기까지 초일류 성악가 리사이틀의 전형을 보여준 ‘웰메이드 콘서트’였다. 돌이켜보면 조수미의 서양 활동사를 압축한 축소판 같았다. 모차르트 미사곡으로 정통 성악가의 자질을 제시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리릭 레퍼토리로 벨칸토의 정체성을 드러낸 뒤,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와 번스타인의 ‘캔디드’로 비르투오소 콜로라투라의 기량을 극대화했다. 앙코르에서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배치한 선택은 향후 비올레타 계열로의 확장을 시사했고, 멘델스존 ‘노래의 날개 위에’에서 드러난 내향적 표현은 메조소프라노적인 중음대의 안정감을 응축해 보여주었다. 명궁이 모든 화살을 엑스텐에 꽂아 넣듯, 놀라움의 연속이 비현실에 가까운 밤이었다.
카라얀 오디션 영상에서도 확인되듯, 20대 중반의 조수미에게 오페라 극장과 음반사는 ‘밤의 여왕’을 표준 레퍼토리로 요구했고, 이 작품만으로 세 장의 음반을 내며 단기간에 이름값을 끌어올렸다. 초경량에서 리릭, 벨칸토를 거쳐 드라마틱까지 확장 가능성을 탐색할 시기였지만, 이탈리아 유학 과정에서 체득한 초고음 중심 기교는 밤의 여왕, 올림피아(호프만의 이야기), 제르비네타(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활동에 집중됐다. 음색은 가볍지만 명료한 발음과 정확한 인토네이션은 1970년대 서울의 말맛을 연상시켰다. 언어와 음정이 분리되지 않는 선형적 발성이 한국가곡 녹음에 그대로 이식되며 미학적 논쟁을 낳기도 했다.
오페라 가수로서 조수미 보이스의 코어는 벨칸토를 기반으로 한 리릭 콜로라투라에 있다. 아미나(몽유병의 여인), 엘비라(청교도), 루치아(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아디나(사랑의 묘약), 노리나(돈 파스콸레)가 좌표의 중심을 이룬다. 여기에 나탈리 드세이 계열의 가볍고 밝은 질다가 더해지며 조수미의 다층성이 완성된다. 콜로라투라로 출발해 리릭으로 확장되고, 마지막에는 스핀토의 그림자를 스치는 ‘경계형 질다’가 서구 오페라 극장 시스템이 기억하는 조수미의 본색이다.
![지난해 5월 한국계 플뢰르 펠르렝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최고 등급인 코망되르를 받는 모습. [중앙포토]](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8/joongangsunday/20260328000307768vhle.jpg)
조수미가 오페라 가수로 맞은 가장 큰 고비는 2003년이었다. 연초 시드니 오페라에서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마지막 공연을 취소하고 로마 거처로 돌아가는 과정이 호주 일부 언론에 ‘잠적’으로 보도되며 파문이 일었다. 2001년 디트로이트에서 자궁 수술을 받은 상태로, 공연 중 출혈로 무대에서 내려와 의상을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도 겪었다. “아이를 가질 수만 있다면 노래를 당장 그만두겠다”는 어려운 고백은 비행기를 갈아타며 호텔을 집처럼 삼고 극장만 오가는 오페라 가수의 삶이 얼마나 가혹한지 보여준다. 자신이 이용한 국제 항공편이 불과 며칠 간격으로 추락 사고를 연거푸 겪은 사례까지 겹치며 조수미는 2010년대를 기점으로 서유럽 오페라 시스템에서 한 발 물러섰다. 오랜 매니저의 건강이 악화되며 출연 섭외가 원활하지 않은 시기도 있었지만, 끝까지 신의를 지키며 매니저를 교체하지 않았다. 이후 매니저는 세상을 떠났으나 사람을 우선하는 그의 품성은 음악계에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지난해 6월 제1회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 수상자들과 포즈를 취한 조수미. [중앙포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8/joongangsunday/20260328000309062gnuq.jpg)
오래 전 시사 월간지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정치를 해보고 싶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공인으로서 명분에 맞게 나서 공연하고 수익금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라 밝힌 대목은 공공 기여에 대한 평소 인식을 드러낸다. 지난해 대통령실 행사에서 선화예고 4년 후배인 김혜경 여사를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 역시 문화예술계가 오랫동안 주목해 온 공적 소통 역량을 보여준다. 조수미는 각고의 노력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했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오래 유지해 온 드문 성악가다. 10년 후 데뷔 50주년 즈음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설지, 앞으로의 행보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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