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왕과 사는 남자'가 인기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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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숫자 1500만명을 넘겼다.
이 영화는 착하고 순박한 어린 왕 단종의 일화를 약삭빠르나 인간미 넘치는 엄흥도의 이야기와 겹쳐 씀으로써 긴장과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쿠데타를 일으킨 세조와 한명회는 사악하고, 그 패악에 쫓기다 죽은 단종은 선량하다.
정의가 패배하고 버림받는 자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이 든든한 어른의 존재가 1500만명의 관객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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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숫자 1500만명을 넘겼다. '명량' '극한직업'에 이어 세 번째다. 단종의 폐위와 영월 유배, 억울하고 무참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익숙하고 흔한 이야기를 낯설고 신선하게 고쳐 쓰는 게 인기 있는 이야기의 문법이다. 이 영화는 착하고 순박한 어린 왕 단종의 일화를 약삭빠르나 인간미 넘치는 엄흥도의 이야기와 겹쳐 씀으로써 긴장과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영화에서 단종은 성장소설의 주인공 같다. 계유정난으로 지고한 지위를 잃은 그는 처음엔 무력한 울보에 불과하지만, 민중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각성해 호랑이와 맞서고 복위를 꿈꾸며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인물로 변한다. 그러나 그 죽음은 눈물을 자아낼 뿐, 심오한 도덕적 갈등을 통한 인간적 성숙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성숙이란 미지의 결과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아직 알 수 없을 때, 주체적으로 선택해 상황을 만들고, 그 결과를 당당히 받아들일 때 생겨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악이 뚜렷하다. 쿠데타를 일으킨 세조와 한명회는 사악하고, 그 패악에 쫓기다 죽은 단종은 선량하다. 단종에게 주어진 건 자기 안에 내장된 선함을 일으켜, 그 힘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밖에 없다. 그는 주어진 현실을 미지로 바꾸지 않는다. 운명의 홈을 따라 구슬처럼 굴러갈 뿐이다.
'왕과 사는 남자'라는 제목은 적확하다. 이 작품은 단종보다는 엄흥도의 이야기다. 처음에 그는 유배객을 유치해 마을의 부를 일구려는 촌장으로 나온다. 여기엔 어떤 존엄함도 없다. 잘살고 싶어 버둥대고 출세하려고 몸부림치는 원초적 욕망이 있을 뿐이다. 영화는 이 보잘것없는 인간이 버림받은 단종과 만나면서 정의를 고민하고 의리를 아는 사람으로 변하는 이야기다.
장면들은 쇼츠 콘텐츠를 연이어 보는 듯 산만하다. 관객이 서사를 놓치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건 웃음과 비애를 넘나드는 엄흥도의 변화무쌍한 활약이다. 그와 함께 살면서 우리는 신분을 뛰어넘는 우애, 불평등에 대한 분노, 정의에 대한 감수성, 법을 뛰어넘는 인간적 연민을 겪고 원초적 이기심이 고귀한 이타성으로 바뀌는 기적을 경험한다.
단종의 비장한 죽음이 아니라 엄흥도의 인간적 각성이 영화적 감동의 진짜 원천이다. 절망적 고난에도 희망의 실 끝을 놓지 않는 강인함, 폭압적 현실에도 순간순간 웃을 일을 챙기는 낙천성 등 엄흥도가 없다면 이 영화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듯하다. 정의가 패배하고 버림받는 자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이 든든한 어른의 존재가 1500만명의 관객을 만들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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