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MBTI

2026. 3. 2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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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단순하지만 명확한 방식으로 규정짓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혈액형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아주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MBTI는 과학적인 방식이라는 믿음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그렇구나, 누군가를 알고 싶을 때, 상대의 MBTI를 물어보는 것보다 더 손쉬운 방법은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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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타인을 알아간다는 건
칭찬할 일 곰곰이 생각하고
치부는 가만히 바라보는 일
모두를 알파벳 네개로 규정
진심으로 이해할수 있을까
손보미 소설가

최근에 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단순하지만 명확한 방식으로 규정짓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혈액형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아주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MBTI는 과학적인 방식이라는 믿음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흠, 물론 MBTI가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안다. 이를테면 내 친구 중 한 명은 대학 병원의 간호사인데, 병원 프로그램으로 직원들이 각자 자신의 MBTI를 검사하고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내가 평소에 정말 이해하려야 할 수 없는, 그런 후배가 있었거든? 일을 진짜 이상한 방식으로 하는 거야. 걔만 보면 화가 나고…근데, 그 후배 MBTI를 알게 되니까, 뭔가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 나는 친구에게 그전보다 후배에게 화가 덜 나냐고 물어보았다. "뭐 그런 것도 같아. 후배가 일하는 방식이 여전히 싫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화가 나진 않아. 뭐랄까 그냥 아, 쟤는 그냥 저렇게 생겨먹었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달까."

대학 강의 첫 시간, 학생들 조를 짜주고, 조원들끼리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주면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자신들의 MBTI이다. 예전에는 MBTI가 뭐예요? 이런 질문이 오고 가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그건 마치 이름처럼 기본 정보가 된 것 같다. 심지어 내 MBTI를 궁금해하는 학생들도 있다. 언젠가는 강의가 끝나고 한 학생이 아주 진지한 투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 MBTI가 뭔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그런 건 잘 모른다고 하자, 그 학생은 공손하게 말했다. "그럼 검사를 해보시고 다음 시간에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평소라면 얼른 가라고 핀잔을 주었겠지만, 그때는, 그렇게까지 내 MBTI를 알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뭔지 너무 궁금해졌다. "그게 왜 궁금한데요?" 그 학생은 시종일관 아주 진지하고 공손했다. "제가 사회학과인데, MBTI를 통해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나는 이 대답을 오랫동안 곱씹어보았다. 그렇구나, 누군가를 알고 싶을 때, 상대의 MBTI를 물어보는 것보다 더 손쉬운 방법은 없겠구나. 그럴 것이었다. 그건 너무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과정이었다. 시간을 특별히 들일 필요도 없이, 누군가를 단숨에 설명하는 알파벳 네 개의 조합.

흠, 좋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너무 손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때가 있다. 내가 나 자신을 알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되는 것? 물론 나 자신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 더 중요한 건, 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동안, 그러니까, 스스로 칭찬할 만한 부분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치부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동안,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과거의 어떤 선택들을 돌이켜보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까?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기회를 얻는 게 아닐까? 혹은,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기회를 얻는 게 아닐까?

타인을 알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를 몇 개의 알파벳으로 설명하는 일은 분명 편리하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조금은 느리고 번거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알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또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손보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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