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쪽방’②] “죽음이 놀랍지 않은 곳”… 동자동 쪽방촌의 멈춰선 5년

이민지 기자 2026. 3. 2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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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후암로에 위치한 A교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은 화재가 발생한 교회의 외부와 내부 모습이다. / 사진=이민지 기자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2021년 정부가 발표한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실상 멈춰 있다. 당초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됐다면, 쪽방촌 주민들은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낡은 건물을 벗어나 보다 안정적인 공공임대주택에 입주를 시작했을 시점이다. 최근 서울 용산구 후암로 A교회에서 발생한 화재가 더욱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 "한 달에 1~2명씩"… 멈춰선 공공주택, 동자동 쪽방촌의 '생존싸움'
2021년 정부가 발표한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은 현재까지 멈춰 있다. 사업의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 지정(지구지정)' 조차 진행되지 못한 상태다. 사진은 동자동 사랑방 한켠에 마련된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 응원글이 포스트잇으로 붙여있는 모습이다. / 사진=이민지 기자

동자동 쪽방촌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서울역 인근에 여인숙‧여관이 밀집해 있던 지역에 홈리스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형성됐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곳은 5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을 여러 개의 방으로 쪼개 만든 구조로, 대부분의 방 크기는 1.5평 남짓에 불과하다. 여러 명의 주민이 하나의 샤워실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취사 공간조차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3~4m에 불과한 좁은 골목과 노후 건축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구조 탓에 쪽방촌은 화재 발생 시 불길이 빠르게 번지고 건물 붕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 인명 구조에도 제약이 따른다. 실제 쪽방촌 화재는 그간 여러 차례 발생하며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해 왔다. 지난 1월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화재로 주민 500여 명이 대피했고, 2024년에는 서울 중구 후암로 쪽방촌에 불이 나 50대 남성이 숨지고 70대 남성이 얼굴에 3도 화상을 입기도 했다.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5년 동안 동자동 쪽방촌 주민 165명은 공공주택 입주를 기다리다 세상을 떠났다. 26일 김우진 동자동 사랑방 활동가는 "한 달에 1~2명씩 계속 돌아가신다"며 "죽음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은 곳"이라고 말했다.

◇ '주민' 빠진 주민간담회… 공공주택사업, 공공성 후퇴 우려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주택사업이 멈춰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민간 개발을 통해 더 큰 이익을 기대하는 건물주들의 반발이다. 현재 사업은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 지정(지구지정)'조차 진행되지 못한 상태다.
시사위크가 동자동 쪽방촌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서울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주민간담회' 자료에 따르면, 이날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건물주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안으로 '현물보상 제도 도입'과 '전매제한 완화'를 제시했다. / 사진=이민지 기자

동자동쪽방촌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서울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주민간담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일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건물주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안으로 '현물보상 제도 도입'과 '전매제한 완화'를 제시했다. 현금‧대토 외에 현물 보상(주택 분양권)을 도입해 보상 선택권을 확대하고, 전매 가능 시기를 '소유권 이전 등기 후'에서 '현물보상 분양계약 체결 후'로 앞당겨 조기 재산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날 간담회에서는 동자동에서 살아가는 쪽방촌 주민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주민간담회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소유주들을 주 대상으로 한 자리였다"며 "소유주들은 세제 감면 혜택 등을 묻는 등 수익을 더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냈다. 공공개발 발표 이후 개발 진행이 안 된 것에 대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있었다며 이에 대한 보상이 없냐는, 이윤 확대를 요구하는 압박성 질의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공공임대 물량을 줄이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 활동가는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발표 이후 건물주들이 노골적으로 방치하고 있는 상태다. 사업 발표 당시 약 1,000명이던 주민 수가 현재 800명대로 줄었다"며 "국토부 역시 비슷한 입장으로 보였는데, 임대주택을 줄여도 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이야기가 나왔다. 사업 지연이 오히려 공공주택의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일부 소유주들은 노골적으로 '쪽방 주민들이 이곳에서 계속 살아야 하느냐'는 발언까지 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오랜 기간 사업이 지연되면서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 점차 흔들리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 공공주택사업지구 내 임시이주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김이탁 차관의 발언은 이러한 불신을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됐다.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영등포 공공주택사업지구 임시이주시설 점검 당시 동자동 주민이 저희와 함께 면담을 요청했고, 면담요청서도 전달했다"며 "차관은 저희를 보자마자 '제일 먼저 (공공주택사업)이 됐어야 했는데 안 됐네요. 3월에 꼭 뵙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3월이 다 가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20일 주민 간담회 때도 국토부 과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3월 중에 만나자고 한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토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며 "2021년 사업을 발표한 뒤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정부가 어떤 방향을 갖고 있는지 현재 상황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자리면 된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고만 하지 말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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