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진짜 엘리트들은 다 알았어, 반쪽 정부는 안 된다고”

한형진 기자 2026. 3. 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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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번째 증언본풀이 개최...1935년생 고창선, 1948년생 현정욱 

"네가 결혼허영 육지 강 살멍 비행기 타고 내릴 땐 절을 허라, 제주공항에. 공항 저 활주로 아랠 보멍 아버지한티."

제주공항 활주로 아래에 숨죽이던 아버지를 만난 나이든 딸은 기억했다. 제주에 갈 때마다 절하는 것을 잊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을 기억했다. "신원이 밝혀진 그 순간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며 유해에 빛이 깃든 2018년 11월을 잊지 못한다.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는 27일(금) 오후 2시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스물다섯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 '4.3과 기억-2003 하귀에서 1948 조천으로'를 개최했다.

이번 증언본풀이 마당은 1935년생 제주시 애월면 하귀리 출신의 고창선 씨, 1948년 조천면 신흥리 출신의 현정욱 씨를 초청했다.
고창선(왼쪽), 현정욱 씨. ⓒ제주의소리

고창선 씨는 친형(고창만)이 외도지서 장작사건으로 연행돼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뒤에 행방불명됐다. 특히 4.3희생자 뿐만 아니라 하귀리 출신 항일운동가, 4.3과 한국전쟁을 전후해 희생된 민보단원, 군인, 경찰, 교사 등 호국영령까지 함께 모신 추모공간 '영모원'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현정욱 씨는 조천중학원장을 지낸 현보규의 딸이다. 현보규 교장은 1949년 2차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그해 10월 2일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총살됐다. 2014년 4.3정립연구유족회가 4.3평화공원 앞에서 불량위패 소각사건을 저질렀을 때, 현보규 교장 위패도 포함돼 있었다. 현보규 교장 유해는 2018년 11월 발굴됐다. 현정욱 씨는 아버지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절차를 밟고 있다.

고창선·현정욱 씨는 증언본풀이에서 자신이 기억하는 4.3의 순간을 떠올렸다. 

고창선 씨는 5월 10일 선거 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이틀 간 산에 머물렀던 때부터, 외양간 땅굴에서 숨어 지낸 형님의 모습, 자신의 아들을 형수가 키워주면서 사후양자로 입양시킨 사연, 하귀1리와 2리 사이에 갈등이 깊어져 위령탑을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 등을 들려줬다.
고창선(왼쪽), 대담자 장윤식 ⓒ제주의소리

특히 경찰이 자수하면 살려준다고 청년들을 속이고 결국 죽인 외도지서 자수공작사건, 경찰과 군인이 하귀리 개수동 주민 33명이 동시에 학살한 비학동산 학살사건, 군인이 주민을 하귀초등하교로 집결시켜 마을 남자 다수를 집단학살한 자운당 학살사건, 무장대가 민보단장과 가족을 살해한 무장대 습격 등 1948년 12월 하귀리에서 벌어진 끔찍한 순간을 증언했다.

현정욱 씨는 두 살 때인 1949년에 딱 세 가지 장면만 기억난다고 강조한다. 집에 빗물이 빠지지 않고 가득 차 있는데, 그 바닥에 누워 몸부림치는 할머니, 활활 불에 타는 할머니의 집, 어머니 등에 업혀 손수레에 이삿짐을 싣고 가는 장면이다. 첫 번째는 바로 아버지 현보규 교장이 경찰에 끌려가면서 할머니가 막아서는 장면이다. 

또한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부터 신흥리 마을에 가면 동네사람들이 "보규 딸 왔구나"라고 반겨주던 기억도 생생하다며, "빨리 재심해서 우리 아버지가 재심이 돼야 한다. 그 생각만 하면 잠이 안 온다"고 밝혔다.

이번 증언본풀이 마당에서는 4.3 당시 도민들의 생각과 여론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도 확인됐다. 

고창선 씨는 "1948년 5월 10일 총선거 때는 마을 선거관리위원만 남고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산에 올라갔다. 극락사라는 절에 갔는데, 다른 마을사람들도 많았다. 고성리 문씨라는 사람이 연설을 했다. 3.1절 관덕정 앞에서 경찰의 발포사건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조선은 단일국인데 5.10 선거는 조선을 둘로 갈라서 남한에서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를 하게되면 조선이 반쪽이 된다. 때문에 5.10선거는 반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말이 타당하게 들렸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 형님 이야기가 '칼자루 쥔 사람하고, 칼날 쥔 사람하고 누가 이기겠느냐. 이건 지금 위에 산 쪽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부님도 '난리는 오래 가지 않는다. 난리엔 숨어있어야지, 난리에 나섰다가는 억울하게 당한다'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현정욱(왼쪽), 대담자 김창후 ⓒ제주의소리

현정욱 씨는 "산에 들어간 사람들이 군사훈련을 했다고? 그럴 정신이 어디 있냐. (경찰, 군인이) 다 쏴 죽이니까 할 수 없이 산에 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한라산으로 간 것이다. 그걸 두고, 또 빨갱이라고 하면서 죽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때만 해도 제주도 진짜 엘리트, 선각자들은 '반쪽 정부는 안된다', '전쟁이 난다'고 했다. 다 알았던 것이다. 동네 반쪽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권력을 잡은 세력은 반쪽이라도 좋다고 한 것이다. 못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특히 "조천파출소 앞에 세운 표지석도, 산에서 내려와 조천지서를 불태운 것만 이야기 하고 있다. 왜 태웠는지는 생각도 안한다. 경찰, 서청(서북청년회) 그놈들이 지서에 앉아서 명단을 보면서 사람들을 죽이니까 불태운 것 아니냐. 그걸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