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승리 기정사실화?…당권 두고 ‘갈라치기 덫’에 빠진 與
‘공천권’ 달린 8월 당권 두고 때 이른 내전…둘로 갈라진 지지층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2016년 미국 대선 막바지,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는 상대였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지지층을 두 부류로 나눴다. 절반은 인종·성별·외국인 혐오에 이끌린 "개탄스러운 집단(basket of deplorables)", 나머지 절반은 현 정부와 경제에 실망해 변화를 갈망하는 집단이었다. 메시지의 의도 자체는 외연 확장이었다. 트럼프 지지자 가운데 비교적 온건한 이들을 분리해 접점을 형성하고, 자기편으로 끌어오겠다는 전략이었다.

명-청 갈등→ABC론→친문 척결까지
결과는 어땠을까. 취지가 무색하게도 이 발언은 '갈라치기'의 위험성을 상징하는 대표 사례로 남게 됐다. 클린턴의 발언 직후 트럼프 지지자들의 반발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이들은 해당 표현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오히려 더 강하게 결집하기 시작했다. 지지자들은 '개탄스러운 자라서 자랑스럽다(Proud to be a deplorabl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SNS에서는 해당 문구가 자기소개의 상징이 됐다. 클린턴이 곧장 수습에 나섰지만, 두 달 후 선거 패배를 막긴 어려웠다. 아무리 상대 진영이라 해도 지지자를 직접 폄하하거나 낙인찍는 행위가 결국 역풍을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①명-청 갈등 ②뉴이재명·뉴수박 논쟁 ③ABC론 ④친문 척결 논란으로 이어지는 충돌의 흐름이 심상치 않아서다. 계파 갈등이 단순한 노선 다툼을 넘어, 지지층 전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누는 갈라치기로 변질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그 갈등의 진원지가 클린턴의 사례와 달리 당 내부에 있다는 점이 뼈아프다. 여권 모두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외치고 있지만, 8월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한 당내 권력 재편을 염두에 둔 권력투쟁의 신호가 벌써부터 감지된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여권 내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초기에는 이를 단순한 권력 다툼이나 감정 충돌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이라는 특수한 정치 환경에서 비롯된 '노선 충돌'로 해석하는 쪽이 많았다. 검찰 개혁 등 핵심 국정과제를 둘러싸고 이재명 정부는 비교적 중도·실용 노선을 택한 반면, 정청래 지도부는 전통적인 민주당 이념에 기반한 강경론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이 간극에 대한 의원 개개인의 입장도 첨예하게 갈렸고, 당내 곳곳에서 조직적인 엇박자와 잡음이 반복됐다. 이른바 '명-청 갈등'(이 대통령과 정 대표 간 갈등)이라는 말이 여의도에서 들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여권은 "민주당엔 친명만 있지 친청은 없다"는 해명을 앞세워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이 같은 봉합 시도도 오래가지 못했다. '친명 대 친청'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더 세분화된 갈등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결정적 계기는 정 대표가 1월22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을 전격 제안하면서였다. 당내에서 사전 논의가 부족했다는 반발이 쏟아진 상황에서 정 대표가 당권 연임을 염두에 두고 혁신당과 공천 지분 등을 논의했다는 이른바 '밀약설'까지 불거지며 당 안팎의 비판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합당 제안으로 인한 갈등이 표면화하고, 지지층 여론도 악화하자 의원들도 노선 문제를 넘어서는 비판을 제기했다. 계파색과 가치관을 한층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친명계인 이언주 최고위원은 지난 2월 합당 시도와 관련해 정 대표 면전에서 "민주당의 주류 교체 시도이자 이재명의 민주당을 정청래·조국의 민주당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라며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고 직격했다.
합당 무산 이후에도 내홍의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민주당의 전통적 주류에 대한 반감으로 느슨하게 연결돼 있던 일부 지지자는 스스로를 '당에서는 멀리, 대통령에게는 더 가까이' 두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 대통령 개인만을 지지하는 이른바 '뉴이재명'이라는 깃발 아래 빠르게 결집했다. 그 반작용도 즉각 뒤따랐다. 친청계와 민주당 전통 지지층은 이들을 '뉴수박'(새로운+배신자)으로 규정했다. 그렇게 지지층 분열이 가속화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유시민 작가가 던진 'ABC론'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유 작가는 3월18일 진보 성향 유튜브에서 여권 지지층을 세 부류로 나눴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가치를 지탱해온 핵심 지지층 A, 이익과 생존이 우선순위인 B, 그리고 이 둘의 교집합인 C다. 유 작가는 진영 전체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타협점을 찾는 C가 가장 이상적인 집단이라고 봤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가치만 앞세우면 현실과 괴리되고, 이익만 좇으면 정체성이 흔들리는 만큼 두 요소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는 논리 자체는 일반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지층에 올라타 8월 당권 노리나
문제는 유 작가가 이를 공론장에 던진 방식이었다. 그는 B그룹을 "대통령 인기가 떨어지면 가장 먼저 돌을 던질 사람들"로 규정하면서 사실상 정청래 지도부와 각을 세우는 뉴이재명 흐름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나아가 B그룹을 두고 "친명계를 자처하면서도 A그룹을 향해 '반명 몰이'를 하는 집단"이라고 언급하면서 후폭풍은 한층 거세졌다. 결국 'C를 키우자'는 취지와 달리 '그래서 누가 B인가'를 가려내는 새로운 잣대만 제공했고, 지지층 분열은 더 가속화한 것이다.
균열은 온라인 공간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계파별로 갈린 민주당 지지자들의 주요 커뮤니티는 같은 당 지지층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인 언어가 오간다. 친명 커뮤니티 '재명이네마을'에서는 민주당 전통 주류를 '문조털래유'(문재인·조국·김어준·정청래·유시민)로 비꼬고, 친청 커뮤니티로 꼽히는 '딴지 게시판'에서는 친명계로 분류되는 한준호·이언주 의원을 'B준호' 'B언주'로 부르며 맞불을 놓는 양상이다.
파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갈등의 축은 과거로까지 뻗는 모습이다. 당 복귀 후 보폭을 넓히고 있는 송영길 전 대표의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그는 3월23일 경향신문 유튜브에 출연해 "친문계 의원들 상당수가 대선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고, 이재명 후보의 낙선을 바랐다"고 말했다. 2022년 대선에서 친문이 이재명 당시 후보 대신 이낙연 후보를 밀기 위해 대장동 사건을 터뜨리는 등 오히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고, 0.73%포인트 차이의 대선 패배 책임을 자신과 이 대통령에게 뒤집어씌운 뒤 당권을 잡으려 했다는 주장이다. 송 전 대표는 그래서 자신의 정치 인생이 부정되는 '존재론적 위기'까지 느꼈다고 했다.
여권 내 후폭풍은 거셌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고민정 의원은 "대선 패배 이후 이 대통령은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 말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의 실패는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며 "후배들은 선배들을 보며 배운다. 롤모델의 길을 가시겠느냐, 반면교사의 대상이 되시겠느냐"고 꼬집었다. 윤건영 의원도 "친문 폐족 척결론 유의 말을 들을 때마다 참여정부 후반에 모든 것이 다 노무현 대통령 탓이라고들 했던 시절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섬뜩하다"며 "선거를 코앞에 두고 내부를 갈라치고, 분열시키는 일은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대립의 배경에 '당권'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6·3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인천 계양을 재·보궐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송 전 대표는 유력한 차기 당권 주자로도 거론된다. '친문 책임론'을 들고나온 것 자체가 세를 불리고 있는 뉴이재명에 소구하면서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주류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지선 후 보완수사권 두고 與 갈등 폭발할 수도
실제 송 전 대표는 복당한 지 2주여 만에 이언주 의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에 참석해 이들과의 접점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그는 축사에서 "뉴이재명이 분파·정파 싸움이 아니라 새로운 외연 확장을 통해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조국의 주권을 지켜낼 토대가 될 것"이라며 뉴이재명 세력을 치켜세웠다. 이 토론회에서는 '민주당 지지율이 이 대통령 국정 지지율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에 "정청래 때문"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민주당 전통 주류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송 전 대표의 행보가 원조 친명으로서의 복귀가 아닌, 뉴이재명 세력의 구심점으로 복귀하겠다는 신호로 읽히는 이유다.
송 전 대표는 오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보궐선거에서 인천 계양을 지역을 노리고 있다. 그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내려놓았던 이곳에서 화려하게 복귀할 경우 당권 경쟁에서도 한층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다만 김남준 전 청와대 대변인이 이미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사무실까지 마련한 데다, 재보선 전략 공천을 선언한 정 대표가 잠재적 당권 경쟁자인 송 전 대표에게 이 자리를 내주며 힘을 실어줄지는 불투명하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송 전 대표와 현 지도부의 관계를 향후 당내 갈등의 향방을 가늠할 '리트머스시험지'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6월 선거 이후 성적표를 둘러싼 평가와 개혁 과제 논의가 이어지고, 8월 전당대회 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지금보다 훨씬 거센 당권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특히 차기 당권이 2028년 총선 공천권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계파 간 충돌은 한층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지방선거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그 이후 당권 싸움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라며 "당권파 쪽에서 정 대표 지지를 위한 전초전을 벌이고 있는 만큼 지선 직후 갈등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갈등의 단초 중 하나인 '노선 갈등'도 남아있다. 관건은 검찰 개혁의 불씨다. 공소청 설치법과 중수청 설치법이 당·정·청 협의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 범위를 둘러싼 논쟁 등은 형사소송법 개정 국면에서 다시 터질 가능성이 크다. 원조 친명으로 평가받는 김영진 의원은 "ABC 등급으로 나눠버리니 '나는 어디일까'라는 논쟁으로 비화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분열과 갈등의 소지를 주는 분석이었다"며 "별로 적절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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