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유족' 강순희 여사가 있는 힘껏 살아낸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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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붙잡혀 간 후 강순희 씨는 바빠졌다.
남편 우씨는 1975년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하루 만에 사형당한 8명 중 한 사람이다.
강씨에게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묻자 스물한 살 한국은행 다니던 시절 군인이었던 남편을 만나 범어사에서 데이트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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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가 인터뷰…"주어진 운명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살았다"
![2012년 인혁당 희생자 추모 전시회에서 남편 초상화 앞에 선 강순희 여사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7/yonhap/20260327142827169bxgt.jpg)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남편이 붙잡혀 간 후 강순희 씨는 바빠졌다. 대학 도서관에 가서 남편의 무고함을 증명할 자료를 뒤지고, 구명운동을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 만나고, 남편에게 옷이든 뭐든 넣어주기 위해 형무소를 찾았다. 정보부에 불려 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강씨는 양장을 쫙 빼입고 선글라스를 썼다.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당당하게 하려고" 강씨는 밤마다 다음 날 입을 깨끗한 옷을 준비해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대한민국 현대사 최악의 사법살인으로 꼽히는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으로 숨진 고(故) 우홍선 씨의 부인 강순희(93) 씨가 구술 자서전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를 내놨다. 강씨의 요청에 따라 유시민 작가가 지난해 세 차례 인터뷰를 하고, 강씨의 기억력이 더 또렷했던 2011년의 구술 기록을 보완해 정리했다.

남편 우씨는 1975년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하루 만에 사형당한 8명 중 한 사람이다. 훗날 법원이 우씨를 비롯한 당시 관련자들 모두의 무죄를 선고하며 국가기관의 조작에 의한 무고한 희생자임이 인정됐다.
뒤늦게 명예는 회복됐지만, 강씨와 같은 유족들이 보낸 잔인한 세월은 되돌릴 도리가 없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이 남편에게 사형을 선고한 날 갖고 있던 양산이 다 망가질 정도로 내리치며 울부짖었던 그는 세상을 원망하며 몇 달을 누워 있었다.
"남편 죽고 나니까 이놈의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 같지가 않았지. 사건을 조작해서 죄 없는 사람들을 결국 죽였잖아요. 이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 거야. 얼굴에 화장하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뭐 좋다고 저러고 다니나 싶고, 사람들이 다 이상해 보이고…."
남편 산소에 가면 '박정희 살인마! 천벌을 받아라' 세 번씩 외치고, 신문에 박정희 사진이 나오면 찢어서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집 안에서 문을 열어 놓고 '박정희 살인마', '민복기(당시 대법원장) 살인마'를 외쳤다. 악에 받쳐 싸움도, 생떼도 늘었다.
30년간 억울함을 안고 살다 재심 법정에서 울분의 증언을 하기도 했던 강씨는 2007년 재심 무죄 판결 후 "죄 없이 산 사람을 그렇게 죽였구나, 죽으러 갈 때 마음은 어땠을까, 그 사형 자리에 갈 때 어땠을까" 생각하며 또 울었다.
![2007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32주기 추모제 당시 강순희 씨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7/yonhap/20260327142830680jtyw.jpg)
그가 선글라스로 당당함을 무장한 채 남편 옥바라지와 구명활동에 매달린 힘도, 남편이 억울하게 숨진 후 저주하던 세상과 타협하고 네 아이를 키우며 살아낸 힘도 모두 '사랑'에서 나왔다.
강씨에게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묻자 스물한 살 한국은행 다니던 시절 군인이었던 남편을 만나 범어사에서 데이트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당시 그가 남편을 그리며 냈던 광고와 남편을 잃고 써 내려간 글들도 절절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일제시대 만주에서 태어나 전쟁과 현대사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강씨지만, 사는 동안 행복했고 오늘 밤에 죽는다고 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한다. "주어진 운명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며 살았다"는 데 대한 만족이다.
"자기한테 주어진 것을 극복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잖아요. 나한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내 힘껏 노력하고 살았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남편 죽었을 때는 막 같이 죽고 싶었지.(중략) 그렇지만 아이들 위해 살아야겠다 싶어서 고비를 넘겼어요.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유시민 작가는 후기에서 "오늘의 강순희를 나는 철학자로 여긴다. 인생과 세상사에 대한 세부 정보를 거듭거듭 잃으면서도 삶의 큰 원칙은 더 확고하게 다져나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철학자 말고 어떤 단어를 쓰겠는가"라며 "나도 아흔세 살까지 산다면 '아흔세 살의 강순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은빛. 280쪽.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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