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日 히타치 가전 사업 매각 결국 불발…삼성·LG도 손 뗐다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6. 3. 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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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유력 후보들 전부 중도 이탈
일본 재진출·사업 확대 기대했지만
까다로운 조건·높은 가격 등에 포기
韓기업들, AI 앞세워 글로벌 성과 확대
가전 매장 쇼륨에 전시돼 있는 일본 히타치 글로벌 라이프 솔루션즈(GLS) 제품들. [사진 출처 = 히타치 홈페이지]
일본 전기·전자 기업 히타치제작소의 백색가전 자회사 매각 시도가 불발됐다. 일본 가전 시장을 상징하는 매물로 글로벌 기업들이 큰 관심을 보이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들도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됐지만 일본에만 국한한 낮은 브랜드 가치 대비 높은 가격과 고용 승계 등 까다로운 조건에 발목이 잡혀 사실상 최종 인수로는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히타치제작소는 일본 내 백색가전 사업을 담당하는 히타치 글로벌 라이프 솔루션즈(GLS) 매각을 추진했지만 유력 후보들이 이탈하면서 결국 거래가 성사되지 못했다. 앞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 8월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며 1차 입찰에 참여했지만 협상 과정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모두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전에는 한국 기업 외에도 튀르키예와 중국 기업 등 7~8곳이 참여했다.

히타치 관계자는 히타치 GLS 매각 건을 두고 “당사는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지속해서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히타치 GLS는 2024 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기준 매출 3676억엔(약 3조4516억원), 영업이익 392억엔(약 3681억원)을 기록하며 일본 가전 시장 내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총 직원 수는 약 5100명 규모로 당시 예상 매각가는 약 1조5000억~2조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히타치 측은 디지털 중심 포트폴리오 재편 전략을 위해 비핵심 자산인 가전 부문 매각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가격에도 한국 기업들이 히타치 GLS 인수에 관심을 보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일본 가전 시장의 상징성이다. 성장률만 놓고 보면 일본 가전 시장은 이미 성장이 최대치에 다다른 성숙기에 접어들었지만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가전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높은 브랜드 충성도를 보유하고 있어 ‘아시아의 가전 왕국’이라는 상징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소비자들이 한국 기업들이 집중하는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지출을 늘리는 등 관심이 커진 것도 인수 시도 이유 중 하나다. 일본 전기공업회(JEMA)에 따르면 주요 백색가전 중 하나인 냉장고의 대당 평균 판매 가격은 2014년 10만5338엔(약 99만원)에서 2023년 15만6960엔(약 150만원)으로 49% 상승했다.

같은 기간 세탁기 평균 판매가 역시 4만8845엔(약 46만원)에서 8만8964엔(약 84만원)으로 82% 올랐다. 한국과 중국 기업 등과의 경쟁 심화 속에서 프리미엄 제품 수요가 늘면서 일본 기업들이 시장 방어를 위해 프리미엄 중심 차별화 전략을 펼쳤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2007년 일본 가전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했지만 히타치 GLS 인수를 발판 삼아 약 18년 만에 다시 현지 백색가전 사업 기반을 재구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만약 이번 인수가 성사됐다면 삼성전자는 생산·유통·브랜드 접점 확보를 통해 일본 가전 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LG전자 입장에서는 히타치 GLS 인수가 TV와 일부 생활가전에만 국한됐던 일본 사업을 냉장고와 세탁기 등 전통 백색가전으로 확장하는 동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본입찰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기업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공식 이탈 사유가 공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일본 내 백색가전 사업을 재건하는 데 필요한 투자와 통합 비용, 매도자 조건 등을 전부 고려했을 때 히타치 GLS 인수가 사실상 전략적 의미는 있지만 기대 수익 등 경제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LG전자는 자문사로 글로벌 투자 은행 모건스탠리를 선정하고 적극적인 인수 검토에 나섰지만 히타치 측과 인수 조건을 두고 난항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히타치 측은 ‘기존 직원들 고용 유지’, ‘5년간 히타치 브랜드 사용’ 등과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실사 기간 연장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약 2조원에 달하는 가격 부담이 커져 결국 중도 이탈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인공지능(AI)을 앞세운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굳이 히타치 GLS를 직접 인수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대로 일본 가전 기업들은 줄줄이 사업을 중국에 넘기며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 중국 하이센스는 2015년 일본 샤프 멕시코 공장을, 메이디 그룹은 2016년 일본 도시바 백색가전 사업을 인수했다. 일본 소니는 올해 초 중국 TCL과 TV 합작사를 설립하며 사실상 TV 사업에서 철수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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